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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Dec 17. 2018

첫째와 함께 할 수 없는 시간들

둘째 출산의 기록 -3-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정확히 얘기하면 처가로 온 것이지만 어쨌든, 병원과 산후조리원을 거쳐 약 3주 만에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를 안고 아내와 함께 집으로 들어섰을 때, 가장 반가워했던 건 첫째였다. 그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으로 달려와 엄마에게 안겼다. 매일 엄마 품에서 잠들던 녀석이 오랫동안 엄마 없이 자야 했으니,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둘째 출산이 첫째 때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첫째 아이와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 




산후조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은 출산을 경험해보지 않았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실제로 여성의 몸은 임신과 출산을 통해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출산 후 건강 관리를 잘하지 못하면 몸 어딘가에 지병이 생겨 그것이 평생을 괴롭히기도 한다.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출산을 한 경우 산후조리에 더 각별히 신경을 쓰게 된다. 자연분만보다 몸이 회복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인위적인 방법으로, 몸에 칼을 댄 것이니까.


입원 기간만 해도 길다. 자연분만의 경우는 대개 2박 3일 입원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4박 5일을 병원에서 보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첫째 아이가 있었다. 병실에서 첫째와 함께 지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출산과 함께 아이와 잠시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다.


첫째는 장인어른, 장모님께서 돌봐주시기로 했다. 처가댁이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평소에도 많은 도움을 받아왔는데 이번에도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양가 부모님 모두 다른 지방에 계시는 경우는, 아이를 갖는 것에 정말 큰 결심이 필요할 것 같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걱정거리가 완전 사라진 건 아니었다. 첫째도 그래 봤자 겨우 세 살짜리 꼬맹인지라, 엄마와 5일씩이나 떨어져 지내야 하는 현실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우려가 됐다. 나도 아내의 옆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술 첫날, 아내는 갓 태어난 둘째보다 첫째 걱정을 더 많이 했다. 나도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둘째를 낳고 실제 눈으로 확인하기까지 했지만 그 존재는 여전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반면, 첫째의 얼굴은 계속 눈 앞에 어른거렸다. 불과 몇 시간 전, 집을 나서는 우리에게 "동생 잘 낳고 와~"하며 예쁘게 손을 흔들어주던 첫째. 아내도 아마 그런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밤, '금식의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 아내에게 장모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첫째가 엄마를 많이 보고 싶다고 한다며 영상 통화를 하신 것이었다. 밤 9시, 아이가 잠자리에 들 시각이었다.


전화를 받았을 때, 아이는 이미 울상을 하고 있었다. 입술을 삐쭉거리며 훌쩍대는 게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내는 덤덤한 척, 울지 않으려 애쓰며 아이와 대화를 나눴다.


울지 말라고, 내일 어린이집 갔다가 엄마 만나러 오라고 첫째에게 말했는데, 아이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내일 만나요..."하고 답해주었다. 전화기 너머로 간간이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이는 울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울음을 참고 있는 듯했다. 


"이제 끊어~"하고 통화를 마무리하려는데 결국, 아이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꾹꾹 참고 있다가 "엄마~"하고 우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떠나는 우리에게 보여준 어른스러운 모습에 조금은 안심했던 내 마음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바로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을 만큼 애처롭게 우는 아이를 보고 아내도 나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마음 한 편이 찢어질 듯 아팠다.


아내와 나는 우리만큼,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마음고생하고 있을 아이를 위해 작은 이벤트를 열어주기로 했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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