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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Dec 21. 2018

"누나가 된 걸 축하해!"

둘째 출산의 기록 -4-

둘째 출산 바로 다음날, 첫째가 병원에 오기로 했다. 수술 직후 아내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조심스러웠지만, 전날 밤 엄마가 보고 싶다며 훌쩍거리는 모습을 보고도, 아이를 또 하루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졌다. 아이가 처음 병문안 오는 날 파티를 열자고, 출산 전부터 아내와 이야기한 것이 있었는데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병원 주변에 케이크 파는 데가 있는지 찾아봤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카페가 있었다. 케이크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도 좋았다.


다음은 꽃집. 역시나 병원 근처에 있는 꽃집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한 뒤 병실을 나섰다.


먼저 찾아간 곳은 꽃집이었다. 오피스텔 건물 1층에 있는 곳이었는데 특이하게 카페를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어느 것이 주 종목인지 모를 정도로, 둘 다 비슷한 규모로 세팅되어 있는 작은 규모의 가게였다. 꽃의 종류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조금 둘러보다가, 아이에게 줄 장미 한 송이를 먼저 골랐다. 


아내와 내가 준비하자고 했던 파티는, 첫째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 누나가 됐다는 걸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분간 엄마와 함께 생활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만 꽃을 줄 수는 없는 일. 출산 축하 선물도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아내에게 줄 꽃다발도 하나 골랐다. 파란 빛깔의 드라이플라워였다.


‘꽃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케이크를 사기 위해 카페로 갔다. 검색하다가 봤던 딸기 생크림 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망설임 없이 바로 주문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번에는 마들렌이 보였다. 먹음직스러웠다. 2주 전쯤인가 아이에게 우연히 마들렌을 준 적이 있었는데, 맛있게 먹던 그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것도 사주면 좋아하겠지? 생각하며 마들렌 2개를 집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양손 가득히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꽃다발 하나를 아내 몰래 뒀다가, 첫째가 오면 손에 쥐어주고 아이가 엄마에게 주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병실에 숨길 곳이 없었다.


어떡하지, 갈팡질팡 하는 사이 병원에 도착했다. 일단 아내에게 줄 꽃은 현관에 두고 병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거동이 불편해서 잘 움직이지 못하니, 현관에 두면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케이크와 장미 한 송이만을 들고 나타난 나를 보고 아내가 물었다.


"꽃은 누구 줄 거야?"

"이거? 첫째 줘야지~"

"......"

"자기 꽃은 첫째가 사 올 거야~"

"...애기가 어떻게 사와..."


대충 말을 얼버무리며 넘어가려는 내 모습에 아내가 조금 서운해하는 게 느껴졌다. 꽃다발을 하나 더 사놓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후 4시 반쯤, 장모님께 연락이 왔다. 어린이집 하원한 첫째를 데리고 병원으로 출발하셨다는 거였다. 얼추 도착 시간을 계산하고, 시간이 됐을 때 아내에게 마중 나간다는 핑계를 대며 병실을 나섰다. 현관에 놓았던 드라이플라워를 소리 나지 않게,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병원 입구로 익숙한 차 한 대가 들어섰다. 자동차 문이 열리고 아이 얼굴이 보였다. 딱 하루 떨어져 있었던 건데도 아주 오랜만에 본 것처럼 반가웠다. 기분 탓인지, 하루 만에 부쩍 큰 것 같기도 했다. 차에서 내리는 아이를 안아주며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랑 잘 있었어~?"

"네-!"

"이거 꽃이야, 꽃~"

"우와~ 예쁘다~"

"이거 엄마한테 축하드려요~ 하고 드리자. 알았지~?"

"네~"


첫째를 안고 아내가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눈물의 모녀 상봉... 이 있을 줄 알았는데 둘은 생각보다 덤덤하게 서로를 맞았다. 아내 입장에서는 격하게 환영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야 했을 것이다. 수술한 지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아 몸을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으니, 아이를 안아주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테니까. 아이는 어땠을까. 엄마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었는데, 병원복에, 팔에는 주삿바늘을 꽂고 있는 엄마를 보고 참았던 건 아닌지, 딸의 마음이 궁금했다.  


아이가 엄마에게 꽃을 건네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 나는 조촐한 파티 준비를 했다. 케이크에 초 3개를 올리고 불을 붙인 뒤 딸에게 가져갔다. 그리고 노래를 불러줬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우리를 따라 박수 치며 좋아하던 아이의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케이크를 바라보다가, 노래가 끝나자 있는 힘껏 '후~'하고 촛불을 불었다. 한 번에 잘 꺼지지 않아서 아내와 나도 힘을 보탰다. 불이 다 꺼진 초를 보고 아이는 또 한 번 배시시 웃어 보였다.


케이크와 마들렌을 다 같이 나눠먹고 아이와 놀아주다 보니 금방 저녁시간이 됐다. 아이가 집에 안 가겠다고 울고 떼쓰면 어쩌지, 하고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집에 가기 싫은 티를 내면서 장난도 치며 시간 끄는 모습을 보였지만 오래가지는 않았다. 스스로 옷을 입고, 현관으로 가서 신발까지 신었다. 그리고 배웅하러 나온 나에게 말했다.


"엄마 아프니까 아빠는 엄마랑 있다가 와~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갈게~"


참, 아이가 이런 말을 해줄 때는 너무 고마운데, 금세 뭔가 짠한 마음이 든다. 우리 앞에서 말은 저렇게 하지만 속으론 얼마나 엄마 생각이 많이 날까 싶어서다. 한창 어리광 많이 부릴 나이에 (그럴 리는 없지만) 벌써, 조금씩 철이 들어버리는 건 아닌지.


물론,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동생이 태어난 이 순간을 또렷이 기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갓 태어난 둘째를 돌보는 과정에서 첫째 마음이 다치는 일은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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