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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Dec 26. 2018

영화는 엔딩 크레딧까지 보는 게 예의 아니냐?

<보헤미안 랩소디>를 뒤늦게 봤다. 8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나는 퀸을 잘 몰랐다. 그나마 알고 있었던 부분은 보컬의 이름이 프레디 머큐리였다는 것 정도였다. 누구나 알만한 곡들 외에는 그들이 어떤 음악을 해왔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감동적이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라이브 에이드(1985)' 공연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영화관이 아니라, 공연장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시각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거기다 그 장면이 있기까지, 영화에서 보여줬던 퀸과 프레디 머큐리의 우여곡절 스토리는 마지막 씬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영화가 끝이 났을 때, 바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여운이 그만큼 길게 남아서였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 영화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보기 드문 일이었다.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한 PD 선배가 엔딩 크레딧에 대해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는 게,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예의 아니냐?"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관객들은 보통 영화가 끝나면 밖으로 나가기 바쁘다. 까만 화면에, 아래에서 위로 흐르는 하얗고 조그만 글씨들을 굳이 읽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나 또한 사람들이 웬만큼 빠져나가면 엔딩 크레딧이 눈 앞에서 아직 흘러가고 있더라도 그냥 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엔딩 크레딧에 대한 무관심은, 제작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달갑지 않을 것이다. 배우들이야 스크린에 직접 얼굴 내비치니 무명의 단역 배우라도 눈썰미 좋은 사람에게는 기억에 남을 가능성이 있지만, 스텝들은 다르다. "내가 저 영화 조명감독이었다니까?!"라고 스스로 홍보하고 다니지 않는 이상 관객들은 그의 존재를 알 길이 없다.


영화 한 편을 만드는 데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간다. 영화감독을 중심으로 스텝과 출연자 몇 명만 있으면 해낼 수 있는 그런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그래서 제작 스텝들의 노고를,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넣고, 엔딩 크레딧의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관객을 끝까지 붙잡아 두기란 쉽지 않은 일. 그래서인지 요즘은 '쿠키 영상'으로, 영화가 끝난 뒤 잽싸게 나가려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경우가 많다. '쿠키 영상'은 후속편에 대한 예고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전할 목적으로 만든 영상이다. 엔딩 크레딧이 흐를 때 예고 없이 등장해 사람들에게 영화 본편 외에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보헤미안 랩소디>에는 그런 '쿠키 영상'이 없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힘에 이끌려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던 걸까.


바로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선곡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먼저, 엔딩 크레딧과 함께 실제 퀸이 부른 'Don't stop me now'의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영상 속 프레디 머큐리와 그의 노래는, 밝고 힘차고 경쾌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그의 운명과 대비되며,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프레디 머큐리에 대해 잘 몰랐음에도, 그가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퀸의 전성기를 함께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반면, 'Don't stop me now'에 이어 흘러나온 노래 'The show must go on'에서는 왠지 모를 비장함이 느껴졌다. 'Show must go on'이라고 외치는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는 한 인간의 절규처럼 들렸다. 영화의 결말이, 실제 프레디 머큐리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나중에 영화에 대해 검색해보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Don't stop me now(1979)'와 'The show must go on(1991)'은 각각 프레디 머큐리가 건강하던 시절과 그의 마지막을 상징한다고. 특히 'The show must go on'은 1991년,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하기 전 퀸이 발표한 마지막 앨범 중에서도 마지막 순서로 수록된 곡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한다.  


제작진이 어디까지 의도했는지 모르겠으나, 선곡은 성공적이었다. 특별한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닌 엔딩 크레딧에서 힘이 느껴지게 했으니 말이다. 그 힘은 다른 어떤 영화의 쿠키 영상들 보다도 강하게 관객을 끌어당겼고,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관에서 발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엔딩 크레딧은, 이 영화가 800만 관객을 돌파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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