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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an 01. 2019

"지금은 첫째의 감정이 더 중요해요"

둘째를 낳고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 산후조리 담당 직원 한 분이 병실로 들어오셨다. 집으로 가게 되면 유의해야 할 점에 대해 설명해주기 위해서였다.


첫째 출산 직후, 아이를 돌볼 때 어떻게 했었는지 떠올려 봤다.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도 그런 것 같았다.


아이를 품에 안는 자세부터 기저귀 채우는 법, 속싸개 하는 법, 수유할 때 주의할 점 등 모든 게 처음인 것처럼 새롭고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산후조리사의 설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집중해서 들었다.


그런데 당시 들었던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둘째가 아닌 첫째에 대한 것이었다. 


"첫째랑 놀아주고 있는데 둘째가 운다, 그렇다고 바로 첫째에게서 등을 돌리고 수유하러 가버리시면 절대 안 돼요. 제일 나쁜 거예요.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니까 마음이 급해져서 그러기 쉬운데, 첫째부터 먼저 챙기셔야 해요."


"첫째에게 먼저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동생이 우네~ 우리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럼 첫째가 아마 무슨 대답을 할 거예요. '안아주세요.'라든지 '우유 주세요.'라고요. 조급해할 필요 없어요. 첫째에게 충분히 이야기한 후 둘째에게 가도 늦지 않아요."


"둘째 육아는 첫째도 함께 참여시킨다는 생각을 하고 임하셔야 해요. 그래야 첫째가 둘째를 미워하지 않고, 누나로서 잘 돌봐줄 수 있을 거예요."


둘째보다 첫째 걱정이 더 컸던 터라 그 말만은 꼭 명심하고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첫째가 먼저다.'


산후조리원을 거쳐 둘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당시의 조언을 떠올리며 하라는 대로 해보았다.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수유를 하기 위해 둘째가 있는 방에 들어갈 때면, 첫째에게 꼭 한 마디 씩이라도 하려고 애썼다.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 마치 상관에게 하듯 보고(?)를 철저히 했다.


"동생이 쉬 많이 했나 한 번 보고 올게~ 잠깐만 여기 있어~"


"동생이 배가 많이 고픈가 봐. 어떡할까? 아빠가 가서 우유 좀 주고 올까?"


이렇게 얘기했을 때 첫째는 싫은 내색을 한 적이 없었다. 흔쾌히 "네~"라고 대답해주거나 자기도 같이 가보겠다며 둘째가 있는 방으로 따라 들어오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첫째가 둘째에게 다가가려고 할 때 무작정 막지는 말자는 것.


아내나 내가 둘째와 함께 있으면 첫째가 그 주위를 돌면서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들 때가 많다. 특히 둘째 목욕을 시킬 때나 수유할 때. 자기도 동생을 씻겨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다가오거나, 분유를 직접 먹여보겠다고 한다. 아니면 그 주변을 방방 뛰며 아내와 나의 관심을 끌어보려고도 한다.


혹시나 첫째 움직임이 서툴러서 둘째가 크게 다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주변에서 장난까지 치는 날에는 욱하는 감정이 올라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감정을 꾹꾹 눌러본다. 부정의 말은 최대한 하지 않기로 한다.


"씻기는 건 아빠가 할 테니까~ 그럼 네가 동생 귀에 물 안 들어가게 귀만 막아줘~"


"동생 우유 주고 싶어? 아빠가 먼저 먹이고 있을 테니까 일단 엄마랑 손 씻고 올래? 아빠도 손 씻고 왔어~"


이런 긍정의 말들로, 시간을 끌거나 우회적인 방법으로 아이의 요구를 들어준다. 


둘째 얼굴을 향해 갑자기 손을 뻗거나, 아기를 안아보겠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 절대로 "안돼!"라며 무조건 막아서지 않는다. 둘째가 첫째 때문에 다치지 않도록, 내가 잘 지켜보면 되는 거니까.


한 달 가까이 첫째에게 이렇게 했던 게 나름 효과가 있었던 건지 며칠 전 저녁, 둘째가 우는 소리를 듣고 첫째가 이렇게 말했다. 


"동생이 울어요, 엄마~  엄마가 가서 동생 우유 주세요~"


엄마 아빠가 안 볼 때 동생 볼을 꼬집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는 첫째들도 있다는데, 이만하면 나름 순항하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완전히 순조롭다는 것은 아니다. 어제 저녁엔 작은 사고가 있었다. 첫째가 둘째 머리맡에서 장난을 하다가 발로 둘째 머리를 치고 만 것이다.


다행히 큰 일은 없었지만 아내와 나는 끝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첫째를 크게 나무랐다. 위험하게 장난을 치는 첫째에게 이미 몇 번의 경고를 했음에도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신생아 하나만 있어도 손이 많이 가건만, 그 와중에 첫째 감정 상하지 않게 배려도 해야 하고, 부모로서 감정조절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이래서 둘째 육아는 첫째 하나 있을 때보다, 2배가 아닌 4배쯤 힘들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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