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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an 04. 2019

"첫째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둘째 육아에 한창인 요즘, 아내와 유독 많이 하게 되는 말이 있다.


"첫째 때도 이랬나...?"

"첫째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내와 함께 집에 있던 어느 날, 종잡을 수 없는 둘째 때문에 진이 다 빠진 일이 있었다.


신생아는 먹고, 자고, 싸고, 또 먹고, 자고, 싸며 하루를 보낸다. 부모는 아이가 자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쉬면서 에너지를 보충한다. 그런데 둘째가,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안아줘도 도무지 깊은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모유를 먹고 나서 조금 자는가 싶던 아이는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잠에서 깨 울어댔다. 수유량이 좀 적었나 싶어서 분유를 좀 더 먹여 보았다. 늘 그랬던 건 아니지만 분유를 먹였을 때 좀 더 깊이 자는 경향을 보였던 아이였다. '이제는 좀 자겠지...?' 하며 한숨 돌리고 있었는데, 또 1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안아줘도 소용이 없었다. 품에 안고 조금씩 흔들어주면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는 게 분명 졸린 것 같기는 한데, 잠들었다 싶어서 내려놓으면 금세 두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먹이고, 안아서 토닥거려 주고, 눕혔다가 깨면 또다시 먹여보고, 다시 안아주고.


그러다 보면 금세 또 수유 시간이 다가온다. 단 3시간이라도 깊이 자주면 좋으련만 영 호락호락하지 않은 둘째다.


아내에게 얘기했다.

"첫째는 그래도 먹고 나서는 바로 잘 자지 않았었나? 얘는 왜 이렇게 잠을 못 자지..."

"기억이 안 나... 그런데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내는 아니었을 거라고 했지만, 내 기억에는 그랬다. 모유, 분유 가리지 않고 막 잘 먹었고, 먹고 나서 3시간은 꼬박, 그것도 둘째처럼 끙끙거리지 않고 차분하게 잘 자는. 신생아 시절의 첫째는 그런 순한 이미지로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런데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보면, 신생아가 그랬을 리가 없다. 처음부터 주는 대로 잘 먹고, 잘 자는 아이가 과연 있을까. 아내의 말대로, 내 기억이 틀렸을 확률이 높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찾아보니 독일 철학자 니체의 말인데, 망각은 인간의 본성이며 또 그것이 바로 삶에 필요하고, 삶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첫째 신생아 시절 힘들었던 일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첫째와의 관계가 안 좋아졌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고, 둘째는 낳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러 잊으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망각은 지금까지 육아를 계속 할 수 있었던 원동력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앞으로 부모로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들게 한다. 평소 별 관심없었던 철학자이지만, 니체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첫째가 막 태어났을 당시의 기억이 또렷하지 않은 건, 그때의 일을 글로 써놓은 것이 별로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에 비해 둘째 출산 직후 육아에 대해서는 많이 쓰고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쓰여 있는 것들이 온전히 기억에 남을지는 모를 일이다. 초등학교 때 쓴 일기를 보고도 '이런 일이 있었나...?' 하며 낯설어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힘들었던 일에 대해 소상히 기록했다 하더라도 나는 결국, 또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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