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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Dec 27. 2018

둘째 출산의 기록 -아내 편-

내가 남긴 둘째 출산의 기록들을 보고, 아내도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 글로 써주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자세히는 알지 못했던 수술 과정과, 당시 아내의 감정들이 잘 드러나 있다.


덤덤한 투로 써내려 간 글이 오히려 더 짠하게 느껴진다.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아래부터 아내의 글)



남편의 브런치 글을 보며 나도 그 날의 기억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서둘러 한 글자 씩 적어본다.


출산 전날

12:00 a.m.


수술 12시간 전부터 금식을 해야 해서 이때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금식을 시작함과 동시에 갑자기 ‘정말 내일 출산하는구나’ 실감이 나 두려웠다. 엄마가 된다는 건 당연히 기쁜 일이지만 원체 겁이 많은 나는 역시나 무서웠다.


“차라리 밤을 새우면 내일 출산할 때 졸려서 잠들지 않을까?”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수술받는 사람이 컨디션 조절해야지.”라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출산 당일

09:05 a.m.


5층 분만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간호사 한 분이 수술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준다.


첫째 때는 진통제만 맞았는데, 이번에는 ‘페인부스터’라는 것이 새로 생겼다며 추천해준다. 수술 부위에 연결하는 추가 진통제인데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17만 원이란다. 단, 수술하는 동안만 연결할 수 있어, 수술 후에는 원해도 맞을 수 없단다.


“페인부스터 하면 덜 아파요?”

“아무래도 진통제 두 개를 맞으시는 거니 확실히 덜 아프다곤 하시더라고요.”

“해주세요.”


내가 이렇게 단호했던 적이 있던가.


09:20 a.m.


수술 전 작은 병실에 들어가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속옷까지 죄다 탈의했다. 침대에 올라가 천장을 보고 있으니 남산만큼 부푼 배 탓에 숨이 막힌다. 간호사가 들어와 수술 부위를 제모해주고 항생제 검사를 한다며 팔에 주사를 놓는다.


‘멍-’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극한의 상황에 놓이면 해탈한다던데 이런 걸까?


항생제 검사를 통과하고 왼쪽 팔에 항생제가 꽂혔다.    


10:50 a.m.


남편과 같이 있다가 드디어 혼자 있어야 할 시간. 침대에 눕혀 수술실에 들어가는 걸 상상했는데 걸어서 수술실에 들어갔다.


남편과 인사하고 들어가는데 울컥-. 혼자서 잘 견딜 수 있을까, 무서웠다. 아기 만나러 가는데 왜 자꾸 겁이 나는지 나 자신이 참 미웠다.


“올라가서 누우신 후 옷 탈의해주세요.”


수술대에 올라가 옷을 벗고 누워 있자니, 의료진 다 여자인데도 갑자기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것도 잠시... 마취과 의사 선생님이 하반신 마취에 대해 다시 설명해주신다. 옆으로 누운 후 새우처럼 다리를 최대한 가슴 쪽으로 당겨 등을 동그랗게 말라고 하셨다. 자세가 제대로 안 나오면 수면 마취를 해야 한다며 신신당부하신다.


다리를 접어 가슴으로 당겼는데 너무 나온 배 탓에 숨이 턱- 막혔다. 간호사가 다가와 내 다리와 등을 잡고 힘주어 내 몸을 폴더폰처럼(?) 꽉 접었다.

  

“마취약 들어가요. 따끔합니다.”

척추를 통해 물 같은 것이 들어오는 느낌이 들며 찌릿찌릿했다.


“마취되기 전에 얼른 다시 천장 보고 누우세요.”   

수술대에 대자로 눕고 내 앞에 초록색 작은 커튼이 쳐졌다.


점점 다리가 저린 느낌이 들며, 힘을 주어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수술 부위를 꼬집었는데, 힘껏 꼬집히는 느낌은 났지만 아프진 않아 신기했다.


“5분 안에 아기 나와요. 아기 나오고 수면 마취 다시 안 해도 괜찮겠어요? 이번에 결정 안 하면 기회 없어요”


겁에 잔뜩 질린 내 표정을 읽으셨는지 마취과 선생님이 한 번 더 물으신다. ‘마취하는 게 더 무서워요.’라고 차마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의사 선생님이 칼로 수술 부위를 자르는 느낌이 났다. 찰흙을 칼로 자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첫째 때 워낙 흉터가 심하게 생겨 이번에는 예쁘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며 우스운 생각도 했다.


11:02 a.m.


“아기 이제 나와요. 몸이 좀 흔들릴 거예요. 놀라지 마세요.”

배를 막 흔들어 대고 무언가 쑥- 끄집어내는 느낌이 난다.


“11시 2분, 아기 나왔어요. 아들입니다.”

태지에 쌓여 하얗고 쭈글쭈글한 모습의 아들. 보자마자 갑자기 첫째 생각이 났다. 아침에 “엄마~ 동생 잘 낳고 와요”라고 했던 모습이 떠오르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기가 밖으로 나가고도 울음이 그칠 기미가 안 보이자 “계속 울면 배가 흔들려서 수술하기 힘들어요. 이제 진정해요.”라며 의사 선생님이 나무라셨다. 거짓말같이 눈물이 쏙 들어갔다.


40~50분 정도 걸리는 후처치 시간 동안 천장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12:00 p.m.


“수술 잘 끝났어요. 회복실에 있다가 1시간 후에 병실 갈게요.”

의사 선생님이 나가시자 간호사 두 분이 몸을 닦아주신다.


“다리 잠깐 들 거예요. 놀라지 마세요.”

그 순간 마치 정육점에 걸려있는 돼지고기처럼, 내 다리가 천장까지 쑥 올려졌다. 등, 엉덩이 쪽을 다 닦아주시더니 번쩍 나를 안아 침대로 옮겨주신다.




출산 당시 수술실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생생한 글이다. 수술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브런치 활동은 내가 아니라 아내가 해야할 것 같다.)


어쨌든, 둘째 보느라 많이 피곤할 텐데, 틈틈이 글을 써서 보내준 아내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다음 편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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