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원준 Jan 17. 2019

미세먼지가 싫은 또 다른 이유

최근 며칠간 미세먼지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했다. 포털 사이트도 관련 뉴스로 도배가 됐다. 특히 수도권은 2015년 미세먼지 관측 이래 최악의 수준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출근길 풍경도 낯설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마스크를 쓰고 걸어 다니는 걸 본 적이 있었던가.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먼 미래에나 있을 법한 모습이었다.


한편,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는, 나에겐 조금 다른 의미에서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나는 안경을 쓴다. 마스크를 하게 되면 금세 안경에 김이 서린다. 숨 쉴 때마다 시야가 흐려진다. 마스크 위쪽에 있는 클립을 아무리 코 모양에 맞게 눌러보아도 소용이 없다. 입김은 아주아주 미세한 틈 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20년 넘게 써왔으니, 안경은 이제 그냥 나와 한 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딱히 불편을 느끼는 일이 없다.


그런데 마스크를 쓸 때만큼은 안경이 정말 귀찮은 것이 된다. 앞이 잘 보이라고 안경을 쓰는 것인데, 마스크를 쓰면 안경을 써도 앞이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어이없는 상황인가.


그렇다고 마스크를 벗어 버리기에는 하늘이 말도 안 되게 뿌옇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안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앞은 보고 살아야 하니 렌즈라도 껴야 하는데, 나는 렌즈를 꼈을 때의 느낌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눈동자를 뭔가가 덮고 있는, 그 뻑뻑함이 싫다.


라식 또는 라섹 수술을 받아야 하나?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예전부터 멀쩡... 하진 않지만 어쨌든 자연(?) 그대로의 눈에 손을 댄다는 게 영 찜찜했다. (아내를 비롯) 주변에 수술을 한 당사자들은, 하고 나면 신세계가 펼쳐진다며 강력 추천을 하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부작용, 후유증이 걱정됐다. (이런 얘길 하면 아내는 내가 '쫄보'라서 그렇다고 한다. 휴.)


결국 마스크와 안경, 둘 중 어느 한쪽도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답답한 마음에 포털사이트 검색창에다가 '마스크 안경'이라고 쳐본다.


오! 안경 김서림 방지 마스크라는 게 있다. 그 외에 안경 세척법에 대한 정보도 나온다. 어떻게 어떻게 안경을 씻으면 마스크를 써도 김이 서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꿀팁을 찾아 여기저기 클릭질을 한다. 한참을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본다.


미세먼지 때문에 이게 뭐하는 짓이지.


왜 매일 아침 출근길, 원치 않는 마스크를 써야 하는가.

왜 20년을 아무 탈 없이 잘 써왔던, 이제는 나와 한 몸이 된 내 안경을 원망하게 하는가.

왜 마스크를 썼을 때 안경에 김이 서리지 않게 하기 위해 내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여야 하는가.  


사실 이런 사소한 것 외에도 우리는 많은 것을 감수하며 살아간다. 집집마다 공기 청정기를 마련하기 시작했고, 조막만 한 자녀들의 얼굴에도 마스크를 씌운다. 날씨가 포근해 외출을 하려다가도 미세먼지가 걱정돼 결국 집에 있거나, 실내에서 놀 수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다닌다.


뉴스를 보니 이달 23~24일, 서울에서 한·중 환경협력 공동위원회가 열린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대기 오염의 주된 원인으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제 좀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려나?' 하고 기대를 하게 되는 건 당연할 것이다.


당장은 나아질 수 없겠지만 언젠가는, 매일같이 파란 하늘을 보며 살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더 이상 안경 김서림 방지 마스크 같은 것을 찾아보지 않아도 될 날이 오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나쁜' 습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