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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Feb 07. 2019

설 연휴의 다섯 가지 단상

1. 명절 기차표 구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내 고향은 부산이다. 그래서 명절 때마다 기차표를 예매하느라 애를 먹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설 연휴에는 기차표 수요가 폭발적으로 많아 코레일에서는 이 기간의 승차권 예매일을 따로 지정해둔다. 보통 연휴 한 달 전쯤이다.


나는 이때 표를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연휴 2주 전부터 온라인에서 '새로고침 신공'을 발휘해 예매를 시도했다. 부산행 KTX는 어떻게 잘 구했는데, 서울로 다시 올라오는 표 찾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대학생 때는 나 혼자 탈 자리 하나만 있으면 되니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이와 함께 가게 돼 붙어있는 두 자리를 예매해야 해서 상황이 달랐다. 연휴가 임박했는데도 감감무소식.


이러다 진짜 안 되겠다 싶어 눈에 불을 켜고 2시간 동안 '새로고침 신공'을 다시 불태웠다. 끝내 SRT 예매에 성공. 부산으로 출발하기 이틀 전이었다.


서울역 KTX 외에도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SRT까지 새로 생겼건만, 왜 이렇게 여전히 명절 기차표는 구하기 힘든 건지.


물론 그동안 서울역까지 가기 힘들었던 사람들의 수요가 수서역으로 몰린 것도 있겠지만, 서울·경기 지역 인구가 날로 늘어가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2. 공공장소에서의 육아


명절 때 기차를 타면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단위 승객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KTX의 경우에는 좌석 간 거리가 가까워서 다른 집 부모들은 육아를 어떻게 하는지, 이런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자연스레 보게 된다.


우리 자리 바로 앞에, 한 아버지와 아들이 앉았다. 둘이서 귀성길에 오른 모양이었다. 아이는 초등학교 1, 2학년쯤 돼 보였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이에게서 조금이라도 장난기가 보이면 짜증 섞인 말을 내뱉는 아버지. 나중에는 급기야 "맞을래?"라는 말까지 나왔다. 아이의 행동이, 그런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통제하는 건 육아 중에서도 고난도에 속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단호할지언정 아이가 무서워할 정도의 말은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공공장소에서 생각보다 그런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한편, 옆에서 코까지 골며 자던 우리 첫째. 어찌나 예뻐 보이고 고맙게 느껴지던지.



3. 부산역에 내리면


대학생 때부터 서울에 살아서 기차를 타고 참 많이도 들락날락했던 부산역.


부산역에 내리면 특유의 냄새가 난다. 바로 옆에 바다가 있어서 그런지 서울과는 확실히 다른 공기가 느껴진다. (짠내인가?)


냄새의 정체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어쨌든, 부산역에 내리면 항상 친근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고향에 왔다는, 그런 기분 탓도 있겠다.



4. 국민소득 3만 달러면 뭐하나.


부산역에 마중 나오신 아버지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차창 밖으로 부산의 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부산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부산진역이라는, 지금은 사실상 간이역이 된 곳이 있는데 거기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길게 늘어선 줄이 200m는 족히 돼 보였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현수막에 이렇게 쓰여 있다.


"설 연휴 급식 지원"


명절을 맞아 복지 시설, 또는 지자체에서 무료 급식을 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나라 1인 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했다는, 최근의 언론 보도가 생각났다. '30-50 클럽'이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느니.


그럼 뭐하나. 설 명절에도 밥 한 끼 해결하기 위해 무료 급식을 찾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5. "택시기사들도 조상님은 모셔야 안 되겠십니꺼?"


설 전날인 월요일 밤. 온 가족이 함께 해운대에 있는 콘도에 갔다. 식구가 꽤 많아 한 집에서 다 같이 잠을 자기가 어려 모로 곤란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대신 다음날 아침 차례를 지내러 가야 하니 일찍 일어나야 한다.


여덟 시 반쯤, 체크아웃을 하고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나름 유동 인구가 많은 해운대니, 택시쯤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2분 거리, 4분 거리, 점점 멀리 있는 택시를 찾는가 싶더니 결국 호출에 실패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몇 번을 다시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호텔 안내데스크에 물어 받은 콜택시 전화번호에 연락을 해봐도 근처에 택시가 없다는 문자 메시지만 올뿐이었다.


별 수 없이 택시가 잡힐 때까지 카카오택시 앱을 물고 늘어졌다.


손에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2분 거리에 택시가 잡혔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잠시 후 도착한 택시에 몸을 실었다.


반가운 마음에 택시기사님께 말을 걸었다.


"이 동네는 택시가 잘 안 다니나 봐요. 겨우 탔네요."


"이 시간에는 잘 없지예. 저도 어젯밤부터 일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콜 들어와서 잡은 겁니더."


"아이고, 고생 많으시네요."


"오후 되면 택시가 좀 많아지긴 할낀데... 택시기사들도 조상님은 모셔야 안 되겠십니꺼?"


택시가 너무 안 잡혀 살짝 짜증이 났었는데, 택시기사님의 말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누군가는 희생하고 있다. '당연히' 누릴 수 있는 편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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