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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Apr 15. 2019

잘 때만 되면 왜 이렇게 우는 걸까

밤 10시 즈음, 첫째를 재우는 시간만 되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씻고 잘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쯤은 이제 어느 정도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의 일이다.


아빠랑 잔다고 했다가, 또 엄마랑 잔다고 했다가, 다 같이 잔다고 했다가. 그렇게 떼쓰는 아이를 달래다 보면 30분, 길게는 1시간이 그냥 흘러간다.


지난 토요일 밤에도 첫째는 그렇게 한참을 떼를 쓰며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왜 잘 때만 되면 아이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둘째가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장인어른, 장모님 댁으로 들어왔다. 처음엔 두 달 정도 지낼 것을 예상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둘째가 100일이 되는 날까지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첫째가 어린이집을 갑자기 옮기게 되면서 등하원을 차로 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아내가 혼자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곧 그 근처로 이사를 갈 예정이긴 했지만, 그때까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했다. 결국 다시 장인, 장모님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났다.

둘째가 태어난 후 넉 달이라는 시간. 아내와 나에게는 조금이나마 육아의 짐을 덜 수 있는 기간이었는지 모르지만 첫째에게는 꼭 좋은 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깨어있는 동안만 보면 첫째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 아빠의 관심을 듬뿍 받는다. 하지만 잘 때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내는 수유를 해야 하기 때문에 꼭 둘째와 함께 자야 하는데, 이때 나와 첫째는 같은 방을 쓰지 못한다. 방 하나하나의 크기가 네 가족이 다 같이 자기에는 조금 어중간해서 불편하기도 한 데다, 둘째가 새벽에 깨면 모두 다 깨게 되니 방 3칸에 뿔뿔이 흩어져 잠을 자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자는 방이 각자 고착화된 채로 4개월이 지났다. 아내와 둘째가 한 방을 쓰고, 나와 첫째, 또는 장모님과 첫째가 또 다른 방을 쓰는 식으로 말이다. (장인어른은 너무 죄송하게도 거실에서 주무시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엔 첫째도 엄마와 따로 떨어져 자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아내가 둘째와 함께 자러 들어가면, 첫째는 나와 다른 방 침대로 와 책을 몇 권 읽고 장모님과, 또는 나와 잠을 청했다. 엄마와 자겠다고 떼를 쓰거나 우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의 빈자리는 할머니 또는 아빠인 내가 충분히 메울 수 있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4개월이 지난 지금, 첫째는 이렇게 계속 엄마, 동생과 다른 방에서 자야 하는 상황을 더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스트레스를 터뜨리기라도 하는 듯이 잘 때마다 떼를 쓰고, 바닥에서 뒹굴며 울어버린다.

아이를 달래 겨우 재우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든다. 불을 끄고 누웠을 때, 아이에게는 엄마가 필요한 게 아닐까. 아니, 굳이 엄마가 옆에 있고 없고를 떠나서 자는 시간만큼은 온 가족이 함께 해야만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

가끔 육아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펼쳐보는 책, 오은영 박사의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를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보통 아이가 자기 싫어하는 이유는 눈을 감으면 무섭기 때문이고, 자는 동안 못 놀기 때문이다. (중략) 불이 꺼지면 무서워하는 아이들은 부모가 옆에 있어 주어 정서가 안정되도록 하면 도움이 많이 된다.


우리 어른들에게는 달콤한 휴식인 '자는 시간'이 어쩌면 아이에게는 아직 힘든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떼를 쓴다고 마냥 힘들어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아이 입장에 서서 이 상황을 같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아이도, 부모인 우리도 이 힘든 기간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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