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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Apr 23. 2019

TV를 치워버릴 수 없다면

요령껏 아이의 관심을 끌어보자

첫째는 요즘 TV를 꽤 많이 본다. 뽀로로에만 보이던 관심은 타요, 폴리, 콩순이를 거쳐 옥토넛, 구름빵, 따개비 루에 이르기까지 넓어졌다.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이토록 무궁무진한지 몰랐다.)

사실 첫째는 한때 TV를 거의 끊은 적이 있었다. 두 돌이 되기 전까지는 우리 부부도 TV를 적절히 육아에 활용(?)을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가 동영상에 집착 증세를 보여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고, 곧장 집에 있는 TV 전원 선을 뽑아버렸다. 스마트폰도 웬만하면 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었다. 아이가 각종 영상물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었다.

그런 노력은 꽤 성공적이었다. 아이는 더 이상 뽀로로를 찾지 않았고, TV를 보던 시간은 놀이 시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라고 쓰고 '점점 떼를 부리기 시작함에 따라'라고 읽는다), 우리는 그러한 방식을 고집할 수만은 없었다. 겪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육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순간, TV가 한줄기 빛이 되어준다는 것을.

하지만 아이가 쉽게 빠져드는 만큼, 부작용도 따른다. 아이를 TV에서 떼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왕 보여주는 거 맘 편히, 아이가 질릴 때까지 보여주겠노라 마음먹으면 부모 속도 편하겠지만 그게 어디 쉽나. 아이의 TV 시청 시간이 1시간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부모는 불안해진다.

'너무 넋을 다 빼놓고 보네. TV 속으로 들어갈 기세야. 저러다 진짜 중독되겠어. TV만 보다가 머리가 굳어버리면 어쩌지.'

슬슬 아이에게 말을 걸어 본다. "이게 마지막이야~ 이것만 보고 아빠랑 놀자. 알았지?" 고개를 끄덕이는 첫째. 하지만 시선은 TV에 고정돼 있다. 재차 확인하며 아이와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까지 받아내 보지만, 보고 있던 게 끝남과 동시에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약속을 파기한다.

"다섯 개만 더 볼래~"

물론 약속을 지켜줄 때도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더 보겠다고 조른다. 이럴 땐 정말 난감하다. 아빠와 한 약속은 지켜야 하는 거라며 섣불리 TV 전원을 꺼버릴 수도 없다. 그랬다간 아이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이가 알아들을 때까지 계속 말로 구슬려야 할까. 뭐 시도는 할 수 있겠지만 성공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 세 돌쯤 되면, 아이에게는 '부모 말을 안 듣는 존재'라는 확고한 정체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가 TV에서 눈을 떼지 못할 때, 그만 보게 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지난 주말, TV에 빠져 있는 아이를 떼어내기 위해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방법을 써보았다.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겠다는 걸 느낀 뒤,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평소 아이가 잘 가지고 놀던 레고 블록들을 가지고 아이 앞에 보란 듯이 앉았다.


그리고는 아이가 TV를 보든 말든 나 혼자 블록을 쌓으며 놀기 시작했다. 아이의 관심을 끌어야 하니 최대한 재미있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기한 모양을 만들거나, 평소에 하던 것보다 더 높이 블록을 쌓아 보였다.

곁눈질로 아이를 힐끗 보며 반응을 살폈다. TV에 고정돼 있던 시선이 조금씩 나를, 아니 내가 가지고 노는 레고 블록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이 놀까?" 하고 섣불리 묻지 않았다. 침착하게 블록을 계속 쌓으면서, 조금 더 기다려보았다. 블록이 내 앉은키만큼 쌓였을 때, 아이의 시선은 TV가 아닌, 내가 쌓은 블록에 완전히 꽂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곧 스스로 리모컨을 집어 들어 TV 전원을 껐다. "나 그만 볼 거야." 라며 기특한 말도 남겼다. 그리고 내 앞으로 다가와 블록 쌓기 놀이에 동참하는 아이. 작전 성공이었다.




아이가 TV를 보는 모습이 영 못 마땅하다면 아예 보지 못하도록, TV를 집에서 치워버리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TV는 그렇게 한다고 쳐도, 육아 중 모든 순간을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대응할 수는 없는 일이다.

때로는 요령껏 상황에 맞게,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면서 육아 스킬을 하나 둘 늘려갈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 과정은 녹록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자연스럽게 아이를 더 관찰하게 되고, 아이에 대해 더 많이 알 수도 있다. 시행착오를 겪을 순 있어도 이런 게 바로 육아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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