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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원준 Jun 13. 2019

"조금 늦어도 괜찮다"

아이에겐 일생일대의 도전일 수 있으니

아이가 하루하루 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끔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아이가 의외의 기특한 모습을 보인다거나, 나의 말을 잘 들어주었을 때, 나보다 오히려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오며 코 끝이 찡해진다. 그때의 감정은 '이런 게 행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꽤 임팩트 있게 다가온다.

어떤 순간 그렇게 느꼈는지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사실, 좀 웃길 때도 있다. 그만큼 사소하고,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일에서 부모는 성장하는 아이를 보며 행복감을 느낀다는 얘기다.

대표적 사례는 아이의 배변활동에 관한 것이다. (개인차가 있는 것이지만) 아이들은 보통 네 살이 되기 전 서서히 기저귀를 떼기 시작한다. 평상시 생활할 때 소변 가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낮잠 잘 때, 그리고 밤에 잠을 잘 때 기저귀를 차지 않는 것으로 조금씩 확장해나간다. 그러다 변기에 앉는 것이 익숙해지면 큰 것(?)으로 넘어간다.

첫째의 경우 소변 가리는 단계는 무난히 넘겼다. 돌이켜보면 우여곡절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잘 해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다음 단계였다. 첫째는 언젠가부터 기저귀를 하고 커튼 뒤에 숨어 대변을 보는 습관이 들었는데, 그 익숙함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듯 보였다.

어찌어찌 커튼 밖으로 나오게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저귀 없이 배변을 하게 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떤 말로 설득해도 아이는 요지부동이었다. 배변할 때가 되면 반드시 기저귀를 찾았고, 없다고 하면 잔뜩 떼를 썼다.


하루에 한 번은 꼭 그렇게 실랑이를 하게 되니 아내는 점점 지쳐가는 듯했다. 독하게 마음먹은 아내가 더 이상 기저귀를 주문하지 않는 강수를 두었지만, 첫째는 기어이 둘째 기저귀를 스스로 찾아 입으며 응수했다.


아이에게 겁이 많고 예민한 면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그럴 리는 없겠지만) 초등학교 가서도 기저귀를 찾는 게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내는 답답함을 토로했지만, 우리는 첫째의 템포에 맞춰 조금 더 천천히 배변을 유도해보기로 했다.


아이가 거부하는 상황에서 부모가 계속 강요하기만 한다면, 아이는 도전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점점 담을 더 높이 쌓기만 할 것이라는 한 아동심리 전문가의 글을 읽었던 게 도움이 됐다.
https://m.blog.naver.com/dbwlsl0307/221121237617

며칠 전 밤, 씻고 잘 준비를 하려는데 첫째에게 신호가 왔다. 어김없이 기저귀를 달라고 조르는 아이. 혹시나 싶어 변기에 앉아서 세 번만 힘을 줘보자고 얘기해보았지만 역시나 통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기저귀를 입혀주었고 그 대신, 그 상태로 변기에 앉혔다. (우리의 단계적 접근은 먼저 기저귀를 하더라도 변기에 일단 앉아서 일을 보게 하는 것. 그게 익숙해지면 그 상태에서 기저귀 밴드를 풀고 그 이후엔 완전히 떼는 순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기저귀를 한 채로 변기에 앉아 배변하는 건 사실 몇 달 전부터 해왔던 일이었다. 거기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을 뿐. 아내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매번 아이에게 물어봤다. 며칠 전 그날도 그랬다.

"기저귀 안 벗길 테니까 여기 옆에만 한번 뜯어볼까?"
"싫어~ 싫어~"
"안 벗겨져~ 살짝만 뜯어볼게~"
"그러면 응가가 물에 빠지잖아~"
"아냐~ 이건 아기 변기라서 물 없어~ 안 빠지는 거야~"
"그래도 싫어~ 싫어~"

우리가 보기엔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아이는 여전히 두려운 것 같았다. 한참 동안 실랑이가 이어졌다. 아내와 아이 둘 다,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내가 슬쩍 가서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럼 우리 오늘은 한쪽만 뜯어볼까? 양쪽 다 하면 네가 무서워하니까 여기 한 군데만 해보자~ 그럼 내일 엄마가 맛있는 거 사주신대!"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오, 내 말이 먹혔나?' 싶었는데 아이가 곧 스스로 기저귀 한쪽을 찌지직 하고 뜯어내는 것이 아닌가! 기저귀를 아예 벗어버린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이가 한 단계 나아가는 순간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와 나는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응원해주었다. 쑥스러운 듯 멋쩍은 듯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이는 아이가 예쁘고 기특해 보여 괜히 코 끝이 찡해졌다. 참, 이게 뭐라고.

볼 일을 다 보고 난 아이에게 말했다.

“어때? 해보니까 별 거 아니지?”
“응. 나 케이크.”
“(기억력도 좋네.) 오늘 잘했어! 다음번에 또 해보자~”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이는 아이만의 템포가 있다. 서너 살 어린아이라고 해도 말이다. 부모가 아무리 손을 잡고 끌고 가려고 해도 아이가 내키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는다.


그럴 땐 아이의 페이스에 발을 맞춰 주는 게 결국은 최선책인 것 같다. 조금 느리더라도 그렇게 해야 아이도 낯선 환경을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스스로 행동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또 무언가 성취해내는 경험도 맛볼 수 있다.


지금은 그게 변기에서 배변하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반복해서 쌓이면 아이가 좀 더 성장했을 때,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원동력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마지막 한 줄 평 : 아이가 볼 일 보는 순간 나는 별 생각을 다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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