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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한 마리의 애잔함(파리 목숨)

40대 회사원의 이야기 - 12. 회사 생활에 신뢰라는 건 없다.

by Heosee

왜앵~~ 왱~~~

"아니 어디서 똥파리 한 마리가 들어왔네"


왜앵~~ 왱~ 왱~ 왱

"똥파리"

퇴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반갑지 않은 손님이 집안을 서성이고 있다.

"너라도 날 반겨주는 거니?" 하다가도 눈앞에 알짱알짱거리니 짜증이 난다.


창문은 열어놨지만 방충망은 분명 다 닫고 갔는데 어떻게 들어온 거지?

더군다나 제법 사이즈가 크다. 도대체 어디로 들어온 걸까?


돼먹지 못한 거짓말쟁이들에게 시달리고 온 오늘 하루가 너무 피곤한데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똥파리 한 마리가 더욱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먼 놈의 에너지는 저리 활발한지, 이리저리 왜앵왜앵 거리며

나의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네 이놈. 오늘 너 잘 걸렸다"

애꿎은 스트레스를 이입하기 시작했다.

"그" 똥파리 한 마리 잡기 위해 온 신경이 곤두선다.


1단계. 날아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손바닥으로 박수를 쳐본다. 이렇게 잡히면 쟤가 파리인가? 택도 없다.

2단계. 씻고 나와서 수건을 야무지게 손에 돌려 매고 휘둘러 본다. 파리는 애써 코웃음만 치며 더 쌔앵 쌩 날아다닌다.

3단계. 몇 번 수건을 휘둘렀더니 지쳤다. 나도 모르게 소파에 털썩 앉았더니. 저놈도 보란 듯 멀지 않은 벽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지금이 기회다" 소파에서 엉덩이를 띄워서 필살 수건을 휘둘러 보지만 저러다 잡히면 로또 사이지. 택도 없다.


반칙이지만 마지막은 사두었던 에프킬러를 들고 나온다.

"내가 살살하려고 했는데 그러니까 너도 한 번에 끽하면 너도 편하고 나도 편할 건데

굳이 이 독한 살충제까지 맞아가면서 최후를 맞이해야겠니?"

전등불 및에 아무것도 모르고 자리를 잡은 똥파리 한 마리.



파리목숨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적어도 우리 사이에서는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매번 평가를 받는 자리에서 듣는 신뢰. 정직. 성실.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결과로 날라온건 불신뢰이다.

누군가 보다 네가 못했으니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그래서 그건 또 신뢰의 영역이라고.

이 사람은 이런 이유로 저 사람은 저런 이유로 나보다 잘했다고 한다.

몇 년간 몸을 갈아 넣으면서도 일을 해왔는데 이제는 그런 이득이 될 이유 하나 없는 걸까?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불순분자처럼 찍혀 버린 회사 생활은 마치 검은색 볼펜 점이 찍힌 A4용지 같다.

다시는 흰색 도화지로 돌릴 수는 없다. 어딜 가던지 흰 도화지 하나 위에 찍힌 검은

점은 약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복사 용지로 사용할 수 없으니까.

낙서장이나 되는 폐급으로 이면지로 그때부터는 살아가야 한다.


흰색 도화지에 점을 찍은 건 내가 아닌데.

어느 하나 모나게 살지 않았는데. 흰색 도화지 모아놓은 곳에서도 충실하게 살아가려 노력했는데

누군가에 맘에 들지 않았단 이유로 점이 찍히고, 불량품으로 찍혀나간다.

결국엔 점을 찍은 건 그들인데 그 점의 이유도 알 수 없다.

신뢰의 영역이라고 하니..




"걔도 살려고 그러는 거야. 현관문이랑 창문을 열어놔"

살충제를 뿌리려고 하는데 엄마가 기어코 말린다.


"그 똥파리도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들어왔는데 나가지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겠니?

그저 살려고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보고 살려고 그렇게 왱왱 대며 애를 쓰는데 너는 머가 잘났다고

그런 애를 죽이려고 드는 거니. 그저 잠깐 현관문이랑 창문을 다 열어 놔 봐."


어딘가에 헤매고 있는 작은 삶. 그저 살려고 살다 보니 저 녀석도 여기까지 온 것뿐인데.

내가 "똥파리"라고 단정 짓고 죽이려고 했던 건 아닐까..

누군가 내게 검은 점을 찍고 명분을 만든 것처럼..


잠시 문을 열어두고 기다렸다.

어느새 그 친구는 날아가버리고 다시금 내 공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 나도 한낱 살아가는 똥파리일지도 모르겠다. 뭣도 모르고 지들 살기 위해 살충제를 뿌리는 사람들이 나쁜 거지 살고자 했던 내가 나쁜 건 아니니까. 어디 가서든지 피해 끼치지 말고 잘 살길 바란다 똥파리야."




위잉... 위잉..

하...

고새 모기가 들어왔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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