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려도 됩디다. 아저씨 혼자 여행해도 괜찮더라고요 - 푸껫, 끄라비 5
틀려도 아무 상관없었던, 아저씨 혼자 여행해도 괜찮았던
남자 아저씨 혼자 끄라비에 도착하다!
여행 5일째.
정오가 되기 전 배는 끄라비 아오낭 항구에 무사히 도착했다.
"헤이 브로~ 나중에 또 봐~"
"그래 너희도 즐거운 여행하고 또 보자!"
역시나 끝까지 이름도 성도 모르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는 프랜드였던 잠깐의 시간~
이제는 남남이다!
배에서 내리면 바로 육지에 닿을 줄 알았는데 육지가 저 멀리에 있다.
"어떻게 가야 하는 거지?"
앞에서 선원이 "컴온컴온" 하며 어딘가를 가르친다.
몇 척의 배들이 연결 연결 되어 있다. 이것은 삼국지에 나오는 연환계인 건가!
쇠사슬은 아니지만 바다 위에 몇 척의 배들이 좁고 기다란 판때기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육지까지 가기 위해선는 남의 배를 타고 넘어가야 한다.
연결연결 아슬아슬한 이 길을 캐리어를 들고 이동.
"헥헥 헥헥~"
"헥헥~ 그래도 도착했다 끄라비에!"
부두에서 아오낭 비치까지는 거리가 조금 있었는데 썽태우 비슷한 차로 호텔까지 데려다준다.
배 하나 탄 것만으로도 지치는 몹쓸 몸을 다독여가며
아고다에서도 가성비와 평점 좋기로 소문난 끄라비 첫 숙소 "아오낭 듀공"으로 향했다.
아직 체크인 시간까지는 멀었지만 무거운 캐리어라도 맡겨놓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가장 밝은 말투로~) 하이 아이원트 체크인"
"물론이지. 여권 줄래?"
"어 정말? 가능해요 지금?"
까랑까랑한 여사님이 아주 정확한 영어 발음으로 친절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이야기 해준다.
"자 체크인은 했고, 원래는 2시지만 한 시간 뒤쯤 오후 1시쯤이겠네. 그때는 방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오 고마워요~"
짐도 맡기고 1시간만 지나면 숙소에 들어갈 수 있으니 끄라비 첫 느낌부터 좋다.
이젠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아직은 멀미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으니 커피 한잔 하면서
속도 맘도 진정시켜 보기로 한다.
"크으 이 바다를 보면서 커피 한잔 때리면 너무 좋겠네.
남자 혼자 멋지게 아주 럭셔리하게 즐겨보자"
어떤 커피숍을~ 가야 잘했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왠지 한적하고 여유로운 듯한 느낌의 아오낭 거리.
푸껫 파통이 명동 한복판이라고 느껴진다면 이곳은 강원도 어느 시골 바닷가 같은...
먼가 또 다른 세상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예약 요청 사항에 쓰여있지 않았잖아요"
아까는 엄청 친절했던 여사님이 까랑까랑 목소리 높여 이야기한다.
"아 제가 예약할 때 선택하는 부분이 없어서 요청을 못했어요. 다만 아까 이야기했었는데..."
"내가 못 들은 거라고요?"
방이 트윈 베드로 배정되었다기에 침대 두 개가 외롭기도 하고 침대가 좀 더 큰 더블 베드로
변경해 달라고 했더니 친절하신 여사님께서 살짝 격앙되셨다.
"아까 내가 발음을 확실하게 했는데 내 영어가 잘못인 건가요?"
영어를 못한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여사님은 조금 기분이 상하신 거 같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가능하면 바꿔달라는 이야기였어요."
"확실하게 이야기를 했어야죠. 휴~ 그럼 한 시간 더 있다 와요. 그땐 방을 바꿔드릴게요"
"네 정말 고맙습니다."
왜 혼난 거 같은 느낌이 드는지 그래도 주인장 심기를 건드려서 좋은 건 없으니..
로비에 앉아있는 것도 눈치가 보여 다시 밖으로 나섰다.
"그냥 트윈 베드 쓸걸 그랬나.."
갑자기 또 한 시간이 늘어나자 막상 갈 때는 없고.. 햇살은 따갑고 커피는 벌써 먹었고
지금 할 수 있는 건? 밥이나 먹자 생각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봤을 때 바로 앞에 보이는 "FAMILY RESTAURANT"
"가게 이름이 패밀리 레스토랑이네. 신기하네. 귀찮다 바로 여기서 한 끼 때우자.
똠양꿍이나 먹지 머~"
"어서 오세요~ 이곳에 앉으시면 됩니다"
"네"
로컬 식당답게 꾸며진 분위기. 그래도 사람들은 빨간 유니폼 티를 입고 친절하게 맞아준다.
생각보다 저렴한 메뉴에 부담은 없다. "저렴하니까 이것도 시키고 저것도 시켜서 먹어볼까?"
"어??"
지금까지 로컬 식당 다니면서 수저와 포크가 이렇게 비닐에 쌓여있는 것은 처음 본다.
"이런 위생 서비스는 와.. 벌써 맘에 드는데"
나름 질서 정연한 종업원의 응대와 수저통에 놓여있던 식기만 봐도 맘에 들었다.
"어? 어? 이것은?"
많은 메뉴들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는 까르보나라!
"아 진짜 패밀리 레스토랑이네~"
수많은 태국 음식들 사이에 메뉴에 양식들이 섞여있다.
피자는 수없이 보긴 했는데 까르보나라 라니.. 이 로컬 식당에.
문득 궁금했다. 태국 로컬 식당이 하는 까르보나라는 무슨 맛일까?
며칠 동안 똠양꿍, 팟타이, 카오카무 태국 음식 속에서 살다 보니 양식의 느끼함이 당겼다.
"주문하시겠어요?"
"그럼 까르보나라 하고 오징어 튀김하고 파인애플 볶음밥하나 주세요~"
"까르보나라요?"
점원은 다시금 내게 묻는다
"네"
이윽고 시간은 지나고 우선 양식 그릇이 아닌 그저 이가 빠진 접시에 턱 하니 올라온 크림 까르보나라~
왠지 반가우면서도 낯설다.
"어디 맛 좀 볼까~
.
.
이 집.. 맛집이다!"
이 먼 태국까지 와서 까르보나라라니.. 근데 맛있다.
이름이 패밀리 레스토랑인 이유가 있었네~ 혹시 내가 모르는 태국의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의
프랜차이즈 분점일까? 아저씨 혼자 와서 한낮에 끄라비에서 까르보나라라니..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풉" 하고 그냥 웃음 짓게 된다.
"아 이 오징어 튀김. 바삭바삭하다.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고 싶다."
매콤한 떡볶이 국물이 생각날 만큼 만족했던 사이드 디시~
그렇게 남은 파인애플 볶음밥까지 해치우고 나니.. 배가 또 뚱뚱.
후식으로 수박 몇 조각과 캔디도 건네준다~ 완벽한 식당이다.
친절하고 가격 저렴하고 무엇보다 양식도 잘한다.
예상치 못한 메뉴에 예상치 못한 만족도.
끄라비의 TGIF!
낯선 도시에서 내가 알던 익숙한 것을 만날 때의 반가움!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게 또 여행인 것을 문득 느끼게 된다.
하지만 또 내게 익숙했던 일상을 못내 그리워하고 있던 걸까.
어찌 됐건 나의 행복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끄라비 아오낭에서 첫끼는 완벽했다.
P.S : 아오낭에 있는 동안 매일 하루 한 번은 들리게 되었던 마법의 패밀리 레스토랑.
친절했던 식당 사람들, 맛있었던 음식. 무엇보다도 그 왁자지껄 했지만 즐거웠던 분위기.
다시금 먹고 싶다. 까르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