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원은 판매 고수였을지도 모른다.

40대 회사원의 이야기 - 17. 쉬어가는 이야기

by Heosee

"어머 비비디하다~"

"와~ 이거는 20대 젊고 하얀 사람이나 입을 수 있겠다."


온 세상이 행복한 크리스마스

40대 독거 직장인 아저씨들은 "한해를 수고한 나를 위한 셀프 선물"을 사기 위해 아울렛으로 향했다.

오픈 시간에 맞춰가면 사람도 없을뿐더러 조금 덜 창피할까 해서 서둘렀지만

벌써 수많은 연인과 가족들로 가득 찬 아울렛.


"야!"

"얼른 사고 집에 가자"




"우와 이거 봐 와 되게 이쁘다."

합리적 소비자 아저씨답게 아울렛 에서도 매대에 놓인 빅 세일 찬스 아이템에 눈길이 간다.

그중에서도 아주 알록달록. 비비드 한 색상의 니트에 나는 눈이 꽂히고 말았다.

어느 누구도 소화하기 힘들만한 왜 빅세일을 하는지 알 거 같은 비비드 한 색상.

"이쁘지 않냐? 한번 입어볼까?"


매대 앞에 옷을 살포시 집어 아무도 모르게 입어보고 후다다닥 거울 앞에 서 보지만.

역시나 배는 나오고 머리는 빠지고 피부는 생기를 잃어가는 아저씨가 소화할 만한 옷은 아니다.


"어때 잘 어울려?"

같이 갔던 일행은 차마 말을 못 하고' 아 나도 옷 봐야지' 하며 돌아선다.

"와 옷은 너무 이쁜데~ 그런 건 20대 청년이나 입는 거 같아요."

'나도 안다 알아'


그때 멀리서 지켜보던 점원 한분이 다가오면서 말을 건다.

"참 색깔 이쁘죠? 근데 소화하기 정말 힘든 옷이에요"



얼랏?

나도 안 어울리는 거 아는데 왠지 객관적 사실로 들으니 속으로 발끈하게 된다

"그래요? 그럼 이거 주세요"


짐짓 당황한 점원

"아? ~ 아 네~. 이쪽으로 오세요.."


같이 갔던 일행조자 당황하긴 마찬가지

"과장님 저거 입을라고요? 농담이죠?"

"저거 과장님이 입으면 완전히 영포티예요"


어떤 오기가 들었을까? 나의 카드는 벌써 긁히고 핸드폰으로 띠딩 하고 결제 문자가 도착했다.

이게 머라고 지고 싶지 않을 걸까.


그렇게 카드를 긁고 돌아서면서 나는 저걸 입을 용기가 생길까? 머릿속으로 혼란스러웠다.

허나 살 좀 빼고 피부에 팩도 붙이고 좀 가꾸고 나면 한 두 번은 입을 수 있을 거야.

다이어트한답시고 작은 치수의 바지를 사는 거 같은 기분이 든다.




한 바퀴 돌고 와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하고 취소할까?

그래 아무리 그래도 내가 늙어가지 앞으로 나아지는 게 있겠어?

한두 군데 돌아다니다 다음에 와서 사겠다고 취소해야겠다


그렇게 머릿속을 굴려가며 매장을 나서는 나에게 점원은 불현듯 한마디를 건넨다.

"손님 그거 드라이인 건 아시죠?"


쑥 사라졌던 오기가 다시금 생긴다.

"네 알아요! 내가 그것도 모르고 샀을까 봐요?"

"아니예요~ 그냥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친절한데 왜 나는 작아지는 걸까?

취소하려던 생각을 물리고 내가 보란 듯이 입겠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내가 이 깐 것 얼마나 한다고.'


"(방긋방긋)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

.

.


후일담.

몇 주째 뜯지도 않은 비닐에 쌓인 니트를 보며 왜 샀을까란 생각이 든다.

입기 위해 하려고 했던 다이어트 와 피부 관리. 운동은 싹 다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


환불 교환 기간도 모두 지나버린 지금.. 나는 왜 그때 그랬을까.

엄한 오기를 엉뚱한데 부린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냐 아냐 어쩌면 아마 혹시

어쩌면 이건 점원은 판매 전략이 아니었을까?

그 점원은 아마도... 판매 고수였을지도 모른다.




"당근에 올리까? 미개봉이라고.."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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