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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혜영 Jan 15. 2022

우리 회사를 불매운동한다니…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밤 9시가 넘어가는 시간, 전화가 걸려오는 건가 착각할 만큼 핸드폰이 책상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뭔가 싶어 보니 알람은 문자나 카톡이 아닌 포털의 블로그에 댓글이 달리는 소리였다. 비난과 욕으로 도배된 댓글 창에는 심지어 댓글 다는 사람들끼리 격한 표현으로 싸우고 있었다.     




집단 따돌림, 강간, 조현병, 자살 미수를 모두 겪은 저자가 일본 청소년들의 카운슬러가 되어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본 번역서가 세상에 나온 건 2019년 6월이었다.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2쇄를 찍을 정도로 좋은 책이라는 칭찬을 많이 받았고, 실제 위로가 많이 되었다는 인사말을 많이 들었던 따듯했던 책. 



‘이제는 우리 출판사도 잘 풀릴 건가 봐’ 나름 기대감을 가득 안고 있던 때에 일본의 아베 총리가 쏘아올린 일본의 수출규제는 우리 모두를 충격과 분노로 휩싸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곧이어 우리 국민들의 분노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아마도 그 시기에 일서를 출간했던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당혹감 속에 홍보는커녕 숨죽이기 바빴을 것이다. 그 살벌했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 누가 일본책을 사달라고 홍보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불매운동의 최고점을 찍고 있던 때에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우리 책이 모바일의 최상단에 소개가 되었다. 하필 그 시기에 우리 책이 왜?     




보통의 출판사들은 책이 나오기 전, 혹은 출간 직후부터 홍보에 대한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한다. 돈을 들이지 않으며 홍보 효과가 가장 좋은 건 포털에 포스팅 된 글이 소개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출판사의 몫이 아니다. 해당 포털 담당자의 권한이니 제안 후 소개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소개된다 한들 그 시기를 결정하는 것도 출판사의 몫은 아니다. 그저 간택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잘 포스팅 되도록 만들 뿐이다.

책이 나오고 두 달이 지났을 무렵이고, 그것도 광복절을 앞둔 예민한 때에 포털의 메인에 우리 책이 소개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밤의 쉴새없는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는.   

  

‘지금 일본인이 쓴 책 소개할 때냐!’

‘이 출판사는 앞으로 불매운동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 만큼 많은 악플이 달렸고, 게시물의 소개는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인기 게시글이 되어 포털 상단에 계속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었다. 이때만큼 간절히 게시글이 내려가길 기도했던 때가 있었나 싶다.



이런 전후 사정을 모르는 독자 입장에서 욕을 하고 돌을 던져도 뭐라고 나서서 말을 할 수 있을까. 다만, 생전 겪어보지 못한 악플과 계속 이어지는 알람 소리에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작은 출판사의 편집자로 살았던 내가 이슈의 중심에 설 수도 있음을 깨달았던 최초의 경험이자, 세상 무서움을 다시 배웠던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소심한 졸보가 사장이 되는 험난한 과정 중 하나였지만 잘될 듯 한번식 무릎이 꺾이는 상황들이 이어지면서 책을 만드는 것이 부질없게만 느껴졌다. 덤으로 찾아온 우울함과 불안함 속에 침잠해지는 시간이 꽤 길어지면서 무너진 자존감을 끌어올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들도 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성장하는 걸까? 여전히 아직도 어렵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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