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채 : 외침이나 박수는 없지만 따뜻한 포옹으로 전하는 환영
어떤 장소는 지나간 한 때의 푸근함을 온전히 떠올리게 한다.
내게 '외식'이라고 하면 당연한 듯 따라오는 풍경이 있다. 두툼한 나무 문, 붉은 빛의 어두운 조명, 흰 테이블보와 이색적인 식기들, 조용한 노랫소리와 차분한 구두굽 소리, 달콤하고 진한 소스 냄새.
우리 네가족은 종종 외식을 했다. 내 동생이 자장면에 눈 뜨기 전, 우리가 외식보다 덜 수고로운 치킨에 익숙해지기 전, 내게 경양식집 외식은 두 볼 발그레 해져 손 모으고 현관을 서성이게 하는 일이었다. 이름도 기억난다. '갈채' 자주있는 일이 아니어서 그 이름만 들어도 설렜다.
주문은 늘 함박스테이크 하나에 돈가스 세 개. 냅킨을 무릎에 깔고 포크와 나이프를 조물거리고 있으면 식전빵과 스프가 나왔다. 후추도 뿌리지 않는 어린시절 이었음에도 누가 알려줬는지 스푼이 그릇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 않게, 가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그 불편한 스푼질로 스프를 먹었다. 양이 아쉬워 쉬이 스푼을 내려 놓지 못한 채 다음 서빙을 맞곤했다. 인스턴트 쇠고기 스프를 알았더라면 매번 그렇게 아쉬워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서버가 기묘한 손재주로 여러접시를 한 손에 모아들고 몇 번만 다녀가면 메인이 차려졌다. 모두 각자 샐러드 조금과 동그란 접시에 얇게 편 밥, 돈가스 접시를 받았다. 테이블은 무려 12개의 접시들로 꽉 찬다. 마음까지 꽉 차는 벅찬 기분으로 나이프와 포크를 쥐고 돈가스를 썰었다. 아빠는 늘 앞에서 칼질을 잊어버린 내게 사용법을 다시 알려주시곤 했다. 엄마는 엄마 접시든 아빠 접시든 함박스테이크를 잘라 먼저 우리 접시에 몇 절음씩 올려두셨다. 나는 빨갛게 혹은 하얗게 버무려진 마카로니를 특히나 좋아했는데 그게 파스타라는 건 한 참이 지나 더 이상 그곳에서 돈가스를 먹지 않게 되고서야 알았다. 음식은 따뜻했고 마음은 풍요로웠다. 행복과 바꿔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우리 가족의 외식을 담당하던 '갈채'는 꽤 오래전에 사라졌다. 화려한 박수나 외침은 없지만 언제든 다시 찾을 나를 위해 따뜻한 공간과 음식을 준비한 채로 갈채는 늘 그곳에 있다. 그 시절을 품에 꼭 끌어안으면 그날처럼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