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한 문장

진정 : 애틋하고 참된 마음으로 다른 감정에 의해 뒷전으로 밀리기 쉬운

by 그늘의 끝



“꼬치다 쓸 때, 그거 받침이 지읃인가, 치읃인가?”


점심을 먹고 소파에 퍼져 있다가 전화를 받았다. 맞춤법 문의 전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국문과를 나온 동생이 전담이었는데 동생의 취업과 때마침 내 퇴직이 겹치면서 맞춤법 콜센터는 내가 맡게 되었다. 유사한 발음의 단어가 여럿 있어 나는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무슨 말을 쓰고 싶은 거야? 피는 꽃을 말하는 거야? 아님 내가 너에게 꽂혔다 이런 거?”

돌아오는 대답에 맞춰 나는 답을 한다.

“그게 꼬에는 받침이 지읃이고, 치가 쓸 땐 히야. 히읃에다 이.”


복잡하지 않은 깔끔한 대답. 상대는 아까보다 톤을 높인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에 몇 마디 덧붙인다. 누구에게, 무슨 일로 이 단어를 써야 하는지, 왜 그런 대화를 하게 되었는지, 대화 상대의 근황 같은 것들. 그런 이야기들엔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상대에겐 중요한 일 인 듯 하여 귀 기울여 듣는다. 통화하는 두 여자의 목소리 톤이 제법 비슷해져 간다. 난 이 여자의 딸이다.




“지영아, 분이긴가, 분위긴가? 위지? 위?”

해가 누울 쯤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응, 우에 이.”


엄마는 늘 당당한 사람이다. 매사에 자신감 넘치는 그녀가 유일하게 어려워하는 일, 두려운 일, 그 앞에 서면 한 없이 작아지는 일이 문자를 보내는 것이었다. 휴대폰을 만지는 게 익숙하지 않아 쓰는 중간에 휙 가버릴까 무섭고, 갑자기 전화가 걸릴까 무섭고, 무엇보다 틀린 단어를 써 보낼까 무섭다 했다. 특히나 예전에 아빠가 보낸 ‘실랑 아니고 신랑’이라는 아주 짤막한 답장에 부끄럽고 속이 상해 이후론 아예 문자하는 일을 그만 두었다. 그까짓 것 그냥 하라는 딸들의 말에, 민망하고 겸연쩍은 듯 ‘잘 몰라서’하고 답지 않게 눈을 피하면 난 가슴께가 무거워졌다. 그때마다 그런 소리 말라는 내 목소리엔 날이 한껏 서 있었다. 두고두고 엄마에게 생채기 냈을 그 소리는 사실 엄마를 향한 건 아니었다. 문자, 정말 별 것 아닌데 하고 속으로 생각할수록 내 가슴이 따가워졌다.




나는 종종 나를 들춰 안고 버스를 타고 꼬부랑 길을 따라 할머니댁에 가는 엄마를 생각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차를 타면 멀미를 많이 했다고 했다. 많이 울었고 보챘다고도. 지금도 차만 타면 찾아오는 잦은 울렁증은 그 말을 뒷받침한다. 학교를 다녀오면 엄마가 해 준 간식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떠올린다. 엄마는 어제 한 간식을 주는 일도, 그제 한 것과 같은 간식을 주는 일도 없었다. 덕분에 친구들은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고, 엄마는 그때마다 내 친구들에게 살갑고 상냥했다. 엄마는 늘 내 교복을 깨끗하게 빨고 다려주었다. 그 교복을 입고 엄마가 해 준 도시락 가방을 들고 난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다녔다. 엄마는 옷 다루는 솜씨가 좋았다. 새내기로 상경한 딸이 산 싸구려 옷가지에 먼지가 앉을께면 들고 내려가 오리고 붙여 새 옷이라고 몇 번이고 입었다. 그런 딸이 학교 방학이면 집에 내려와 여전히 엄마가 해 준 밥을 먹고 엄마가 빨고 손질한 옷을 입고 지냈다. 어김없이 방학이 끝나면 시골기 탈탈 털고 서울에 가는 딸이었다. 취업도 하고 결혼도 했지만 그 딸은 아직도 엄마가 해 준 김치와 밑반찬을 먹는다. 엄마는 어느 즈음에 딸 위한 일 아닌 다른 일을 배울 수 있었을까.



감수성 예민하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수학여행에서 난 엄마를 떠올리며 매번 울었다. 깜깜한 밤에 활활 타는 불은 우리의 어떤 감정도 극대화 시키는 재주가 있었는데,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웃고 떠들다가도 누가 앞에서 준비된 말투로 ‘엄마’ 한마디를 흘리면, 코가 시큰거리다 일렁이는 눈 앞 풍경에 고개 푹 숙이고 울었다. 이어지는 엄마의 노고와 희생을 기리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왠지 엄마에게 사과하고 싶어졌지만 엄마가 감내한 무수한 것들이 나와 맞바꾼 거라 인정하기엔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엄마가 손가락질하며 네 탓이라고 할까봐 나는 많이 무서웠다.


고등학생 이후로, 나는 때때로 엄마가 여자로 보였다. 그녀의 색 바랜 꿈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인지, 그녀의 실패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의 빛나던 눈동자 때문이었는지, 흔들리던 눈빛 때문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늘 든든하고 강건하게 느꼈던 그녀의 뒷모습은 여느 여자들보다 여리고 왜소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위로하고 싶어졌지만 그녀를 연민하는 것이 낮추어 보는 것 같아 죄스러웠다. 엄마이기 이전의 한 당신이 혹여 어린 내 말에 건방지다 노여워할까 겁이 났다. 아니면 스스로를 동정하게 돼 우울해하진 않을까. 그런 걱정 속에 나는 하려던 말을 그만두었다.




엄마는 카톡을 시작했다. 주변에 모임 연락도 카톡으로 오고, 오랜만에 카톡으로 연락을 해 오는 옛 친구들도 있어, 답장이라도 해야겠노라며. 늘 마음속에, 머릿속에만 있던 문장들을 쓰기 위해 엄마는 천천히 휴대폰 자판을 두드렸다. 둔탁한 손 움직임에 자주 글씨를 틀렸고, 몰라서도 틀렸다. 서툰 손은 카톡 대화의 즐거움 덕에 점차 어색한 기운을 벗었다. 까무룩 잊었던 단어를 써야 할 때면 전화할 딸들이 있었다.


엄마가 우리를 낳고 기른 게 30년이다. 엄마의 인생이었다. 행복하다 웃는 이면에 어떤 설움과 후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현재에 내 눈에 보이는 것 만으로 그녀의 지난 시간들이 어떠하다 가늠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지 생각한다. 엄마라서가 아니라 한 여자로서 그녀가 선택하여 살아온, 치열하고 고되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론 즐겁고 행복했을 그 시간들을 나는 알 수 없다. 엄마의 그간의 선택들을 난 진심으로 존중했던가? 생각이 그에 미치자 내 온 마음을 대변함에도 항상 뒷전에 두었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사실 미안함도 연민도 늘 그 다음이었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귀하게 여기고 아끼며, 당신이 지금껏 내게 베푼 모든 것에 진심으로 행복해하는지 당신은 알까. 지금껏 몇 번이고 전했을 그 문장을 오늘에서야 제대로 써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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