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렁하게 동시에 엄숙하게

본질 : 평생 두고두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

by 그늘의 끝


그들은 헐렁하게 살며 동시에 엄숙하게 산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작가는 예술가를 이야기 하며 형식은 자유로워야 하지만 그것에 담기는 삶의 내용은 처절하고 엄숙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단 예술가뿐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 역시 그렇지 않은지.




회사를 다니던 시절,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팀장 아래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녀는 회사에서도 소문난 능력가였다. 무엇을 들고 들어가더라도 상사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지혜로운 태도, 폭넓은 지식, 대단한 말솜씨 등을 칭찬했다. 곁에서 본 바로는 그녀의 무기는 통찰력과 유연함이었다. 그녀는 어떤 일이든 핵심을 꿰뚫고 그것을 누구에게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표현들을 환영했다.


그녀는 상사의 개똥같은 말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실현시키고자 하는 바를 잘 가려냈다. 우린 우리의 핵심을 도출해 내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그것이 진정성을 가질 수 있는지, 납득할 수 있는 바탕을 그려낼 수 있는지 고심했다. 어떤 일이든 우리의 곁에서 동떨어진 소리가 되지 않도록 핵심의 주변부를 메우고 또 메웠다. 그녀 덕분에 알맹이를 만들고 이해하며 일할 수 있었고, 피곤하지만 늘 새로운 전달방식을 고민하고 생산해내며 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규모가 크고 체계화 되어있는 조직구조에서 겪기 쉽지 않은 경험이었기에 더욱 감사한 일이었다.


그녀와 내가 상사와 부하직원, 회사라는 이익집단에서 필요에 의한 관계였음을 부정할 순 없지만 분명한 건, 오늘 다리를 치며 감명받은 책의 구절을 나는 그녀로 인해 일찌감치 배웠다는 점이다.

인생선배라는 다소 촌스러운 수식어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녀는 내게 상사 이상의 의미였다.



무엇에도 국한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겉'과

치열하고 지독하게 고뇌하며 담아낼 '속'을 만드는 일,

그것이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할 본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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