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이해하지 못하기를 바란다.

외로움 : 공감으로써 깊어지는 몹시 쓸쓸한 마음

by 그늘의 끝



추석이면 우리는 할머니댁 커다란 뒷방에서 놀았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우르르 뛰어놀고, 말뚝박기를 하고 어른들 몰래 성냥을 가지고 불장난도 했다. 밤이 깊어 바람소리, 나뭇잎 소리 들리면 누가 먼저랄 새 없이 이불속으로 뛰어 들어가 숨을 죽였다. 그러면 건넌방 어른들의 왁자한 술자리 소리 뒤로 멀리 부엌에서 설거지거리 부시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웃음소리, 이야기 소리가 잠잠해지면 보다 선명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는 이따금 무언가를 생각나게 했지만, 금세 나는 다시 뛰어 놀기 바빴다. 추석 연휴 끝날 즈음 집에 가는 차에서 성씨 다른 엄마만 잠을 잤다. 열린 창문으로 드는 가을바람에 엄마의 파마 풀린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아빠는 전화 끝머리에 말을 덧붙였다. “추석에 어른들께 잘하고. 우리 딸은 예쁨 받을 거야, 그렇지?” 아빠는 무엇이 걱정이신 걸까. ‘잘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명절날의 엄마를 그렸다. 엄마는 일을 잘하는 며느리였지만 그다지 예쁨 받지 못했다. 엄마는 엄마와 다른 성씨로 가득한 할머니 댁에서 늘 소리를 냈다. 부당하고 불편한 것, 납득할 수 없어서 화가 나는 것들에 대해서 말했다. 물론 그건 엄마가 5번 중 4번을 참다 마지막에 터뜨리는 것이었지만, 아빠는 참으라고 하거나 침묵했다. 엄마가 납득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할머니와 아빠는 적응하고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엄마도 여자가 도맡는 명절 음식 준비와 설거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건 엄마에게 이상하거나 부당한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내 결혼 소식에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첫마디는 “시집가면 이제 오기 힘들겠구나”였다. 물론 나 역시 명절 전후로 1년에 두어 번 찾는 양 조모 댁에 더 자주 들르기는 어렵겠다 생각했다. 그럼에도 ‘시집을 간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놓아야 하는 마음이 할머니들께 있다는 것이 서글펐다. 손녀가 보고 싶은 마음은 달라질 리 없지만 시댁이 생긴 손녀가 명절에 자신을 찾기 어려워질 것임은 너무도 뻔하였던가. 두 할머니가 살아왔던 삶에 비추어보면 그건 손녀의 친정식구로서 당연히 가다듬어야 할 마음가짐이었을까.



‘여자는 머리 말린 자리를 꼭 치워야 한다.’ 엄마는 늘 나와 여동생에게 말했다. 아마 긴 머리카락은 짧은 머리카락보다 눈에 잘 띄니 더 주의하라는 의미가 컸을 것이고, 덕분에 우리는 머리 말린 주변을 늘 말끔하게 치우는 습관을 길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여자는’이란 조건이 필요한 교육은 아니었다. 꽤 근래까지도 그 조건부 설교가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여자는 바르게 걸어야 한다’, ‘여자는 단정해야 한다’, ‘여자는 밤늦게 다니면 안 된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말들은 ‘여자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같은 말과는 다른 뉘앙스를 풍겼다. 엄마는 더 이상 내게 그 조건부 설교를 하지 않지만 다 큰 나는 알아서 ‘여자는’ 하고 조건을 달아 생각하고 행동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생경해지는 날이 오기 전까지, 덕분에 나는 예쁨을 받으며 잘 지냈다.




옛 기억의 엄마처럼 명절날 나는 시댁에서 설거지를 한다. 그 시절 엄마도 종종 외로웠을까? 이는 남편이 설거지를 대신해주어 달래지는 것도, 시부모님이 내게 설거지를 하지 말라 손사래 쳐 달래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스스로 손들어하겠다고 나선 일에도 종종 조그만 후회와 의문을 느낀다. 당연하게 범주화했던 ‘며느리의 일’이란 것들이 있다.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에게로 그 범주의 일들은 전가되어, 어머님의 몸이 편치 않으면 내 몫을 다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집에서 성씨 다른 두 사람만이 온전히 느끼고 짊어지는 책임에 마음이 쓸쓸해진다. 나의 시어머니도 어느 시절에 외로웠을 테고, 지금도 종종 어느 틈에선가 외로울 것 같다. 대게 외로움은 공감으로 치유되지만 공감으로써 깊어지는 류도 있다.



시부모님과 나의 부모님은 달가워하지 않을 생각들을 해 본다. 예쁨 받지 못한다면, 이해받지 못한다면 분명 불편하고 속상할 사람들이지만 그분들이 내 외로움을 심화시키는 사람들로 남는 건 더 괴로운 일이다. 달라져야 할 것들이 천천히 떠오른다. 품에 안은 딸아이를 바라보니 이것이 생각에서 그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성장하는 아이처럼 나의 용기도 씩씩하게 자라주기를.


훗날 내 딸이 나의 고민에 대해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기를 바란다.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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