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 헤어짐의 순간에 내뱉는 믿을 수 없는 인사말
아이는 매일 밤 잠자리 들자는 소리에 운다. ‘깜깜한 밤이지. 지금은 모두 코코한대. 내일 해님 반짝반짝 하면 다시 신나게 놀자. 안녕-’ 침대 머리맡에서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수십 번 들려주지만 아이는 쉬이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아이는 내일을 믿지 못하는 듯 오늘의 끝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 우는 아이를 한숨 속에 바라보다 속으로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한다. 나는 다시 도닥도닥, 아이에게 내일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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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내 눈물샘은 이별에 유난히도 예민해 종종 속수무책 터졌다.
유치원 졸업을 앞두고 노란 병아리 같은 우리는 '작별'이란 노래를 배웠다. 악보와 가사가 프린트된 종이를 받았는데 노래 시작도 전에 사단이 났다. 노랫말 하나하나가 내겐 눈물의 지뢰밭이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 간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 정,
다시 만날 그 날 위해 노래를 부르자'
오래 사귄 벗과의 피할 수 없는 이별이라니, 이미 그것만으로 슬프고 서러워 코가 시큰거렸다. 가사를 곱씹을수록 이 헤어짐이 영원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다시 만날 그날을 노래’한다는 문장이 자꾸만 거슬렸다. 친구들의 노랫소리 커질수록 깊어지는 비애감, 증폭되는 재회에 대한 의심과 불안에 내 눈물샘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그날 난 노래는 한 구절도 제대로 부를 수 없었다. 한참을 운 덕에 졸업식 당일엔 열창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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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 각별했던 유치원 친구들과 만나는 모임에선 내 울음이 말미를 장식하는 의식 같았다. 꽤 정기적인 모임이었음에도, 엄마들이 안녕의 순간이라 언질을 줄 때면 예외 없이 요란한 눈물바다를 만들곤 했다. 엄마들의 안쓰러워하면서도 난감해하던 얼굴이 기억난다. ‘또 만나면 되지’, ‘다시 볼 거잖아’, ‘다음에 더 오래 놀자’. 다시 만날 거라는 어른들의 말은 내게 너무도 가벼웠다. 오늘의 안녕은 아쉽지만 내일 다시 볼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내게는 ‘작별’의 마지막 구절처럼 믿기 어려웠다. 다음이란 그저 순간을 위로하는 막연한 약속 같았다. 나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매번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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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장례식에서 할머니를 보자 눈물이 쏟아졌다. 연세도 많으셨고, 오래 아프셨기에 기간을 두고 마음의 준비를 꽤 단단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따라 더 작아 보이는 체구와 빨개진 눈의 할머니를 보니 가슴 가득 밀려오던 파도가 작은 두 개의 눈구멍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이제까지 흘렸던 눈물이 초라해졌다. 늘 마음으로만 느꼈던 불안을 처음으로 체감한 날이었다. 이젠 누구도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할머니와 난 한참을 부둥켜 안고 울었다. 인생에서 처음 만난 영원한 안녕 앞에 나는 참 오래도록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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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의 노랫말은 아직도 내게 처연하고 애처롭다. 한 때 내게 모든 안녕이 그랬듯, 여전히 나는 어떤 헤어짐 앞에서 작별을 처음 배우던 날의 내가 된다. 누구도 다음을 이야기 할 수 없고, 어떤 재회도 약속할 수 없는 안녕,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기도, 때론 어떤 끝과 시작 사이에 있기도 했다. 나이와 반비례 한 눈물샘은 이전보다 말랐지만 여전히 나는 그런 안녕 앞에서 몹시 울보가 된다.
오늘이 가는 게 싫어 우는 이 아이가 매우 공감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