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채우는 자율학습

달밤 : 달이 떠서 일탈에 밝아지는 밤

by 그늘의 끝



그녀의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를 보노라니 나의 달밤들이 떠오른다. 먼지가 내려 앉은 추억들을 볼바람으로 후후 불어내고 탈탈 털어 끄집어내 본다. 어두웠고 그래서 달이 더욱 빛났던 밤들이었다.


나도 그녀처럼 선생님들의 야간 감시가 덜한 장소에서 공부하던 복받은 학생이었다. 일반 교실에서 우리의 야간자율학습 교실로 이동하는 통로는 실내 계단과 낮은건물 옥상을 통한 경로 두 가지가 있었다. 난 주로 후자를 이용했는데 이동통로뿐 아니라 야자시간에 몰래 나와 달을 감상하는 나의 핫플레이스였다. 외부의 야간조명과 옆 건물 복도조명만 피하면 상대적으로 더 어두운 공간. 덕분에 비석처럼 하늘만 보고 서 있는 작은 체구의 나 따윈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야자 담당이 그리 무섭지 않은 날엔 귀에 노래가 흘러나오는 이어폰까지 달고 대담하게 달밤을 즐겼다.

아주 작은 일탈이지만 짜릿함이 있었고, 고요한 밤이 주는 안정감과 뭉근하게 나를 감싸는 달빛엔 위로가 있었다.



가슴 답답하고 괴로운 고등학생 시절이라지만 이후 대학시절 동안 겪은(그리고 현재에도 겪고있는) 혼돈에 비하면 그 시절은 방향과 의지가 명확했던 시기였다. 다만 답과 오답, 논리와 비논리 같은 것들 사이에서 낭만과 감성, 흐트러진 시간을 채우고자 하는 고등생의 절실함이 있었다. 어두운 달밤 아래에서 난 결핍되었던 낭만에의 자율학습을 홀로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 시간 더 공부하면 남편 얼굴이 바뀐다는 우스갯 이야기에 겁 먹으며(?) 시간에 쫓기는 고등학생에게 나 홀로의 달밤은 도닥였다. 지나가는 이 시간을 때론 느긋하고 별 생각없이 그저 흘려 보내도 된다고. 바람을 느끼고 별과 달빛을 바라보며 편히 마음 놓는 시간도 괜찮다고 달밤은 말했었다.



어젯밤 신랑과 저녁산책을 나가, 자욱한 구름뒤로 숨던 슈퍼문을 구경하고 들어왔다. 달빛 아래에서 봐서 그런지 남편 얼굴이 꽤나 만족스럽다. 자율학습 째고 홀로 달밤에 그리 안 놀았으면 얼마나 엄청난 외모남편 만났을지 겁이 난다. 지금 딱- 좋다.(여기선 웃는 게 좋겠다)

모쪼록 고등학생 시절 그 달밤과의 일탈 덕분에 지금 내 마음 속 낭만의 불씨가 남아 있지 않나 생각한다. 감사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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