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경험

탈모 : 익숙치 않은 상실에 자존감까지 하락하여 우울해 지는 현상

by 그늘의 끝




머리카락이 또 한 움큼빠졌다.

이젠 앞머리 근처는 휑해졌고, 외출을 하려면 근처 머리카락으로 빠진 부분을 슬쩍 감춰야 하는 것이 마치 대머리가 되어 가는 중년남자가 된 느낌이다. 출산 3개월 차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다더니 나 역시 3월부터 머리가 이리도 빠진다. 남편이 병원엘 가보란다. 빽빽하게 들어찬 검은 모발의 신랑 머리를 보니 괜히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출산의 고통을 겪던 시간에 남편 머리채 좀 잡았어야 했나. 걱정해 주는 소리에 심술이 나는 것이 아직 예민함을 벗지 못했나 보다. 이깟 머리에 그러지 말자, 일 년이면 회복된다는데 속 좁은 사람처럼 이러지 말자 싶어 일그러지던 표정을 폈다. 내겐 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



작년 3월, 나는 회사를 그만 두었다.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조산 위험성이 있다는 의사의 말에,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 몸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바쁜 시즌이었다. 일을 하며 몸을 아낄 자신이 없었다. 곧잘 정신력까지 체력으로 끌어다 쓰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자주 앓았기 때문이었다. 뒷받침 되지 않는 욕심만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긴 더 싫었다. 무엇보다 아이는 내가 직접 키우고 싶었기 때문에 병가를 내라는 회사 선배의 설득에도 결국 난 사직서를 냈다. 나는 무척 단호했고 이후의 시간에 자신이 있었다.


임신 초기에 입덧은 심했다. 집에 혼자 있는 일은 무료할 새가 없었다. 점점 임신한 몸의 신호에 적응해 갔고 그 해 여름, 굉장한 무더위 때문인지 모든 일에의 의지를 잃었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시간은 많았고 목적은 없었다. 몸에 가득했던 의욕이 대상을 잃고 막연하게 부유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내 머리가 조금씩 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머리가 빠지는 일에 훈련되어 있지 못했다. 내겐 인생의 첫 불안이었다.


눈에는 잘 띄지 않았지만 머리카락은 매일 밤 바닥에 떨어졌다. 뱃속 아이의 태동으로 잠 못 드는 밤 휴대폰 불빛을 비추며 침대 아래로 떨어진 머리카락을 모았다. 느지막이 일어나면 어젯밤 떨어진 머리카락을 주워다 버렸다. 흐트러지고 싶지 않았다. 더욱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고 매일 뉴스를 보고 책을 읽었다. 이전의 나와 다르지 않음을 매일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날들이었다. 머리카락은 자꾸 빠졌지만다행스럽게도 그 속도는 새로 자라나는 것에 미치지 못했다.



회사원 시절, 마음 맞는 동료들과늘 ‘주체적인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 했었다. 내가 세운 목적과 내가 내린 결정에 의한 삶이라 자위했지만, 그 삶이 회사를 위한 일상으로 채워졌음을 모를 리 없었다. 내 목표는 회사에서 세우는 연간계획이나 월별계획 그 하단에 이어지는, 업무를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해 내기 위한 자기훈련 같은 것들이었다. 그렇기에 보다 주체적인 삶에 대한 동경이 있어왔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그러한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기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소속이 없는 나에게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시간은 생각보다 잔인했다.


‘모 유통회사 3년차 대리’라는 명찰을 위해 지난 5년 간 힘들여 일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명찰이 떨어지자 뭐라 나를 증명할 길이 없었다. 회사에선 제법 인정받는 일꾼이었다. 덕분에 나는 늘 당당했고 매사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퇴사와 함께 그 단단한 마음부터 모래성 무너지듯 주저 않기 시작했다. 대단치 않은 명찰이 지켜주고 있던 것들이 너무도 내 전부인 양 느껴져 그것을 잘라내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고통스러웠다. 자존감은 머리카락보다 더 거센 속도로 떨어져 나갔다. 나는 너무도 초라했다.


매일 밤 침대아래 머리카락은 더 수북하게 쌓였다. 몸이 헌 머리카락을 버리고 있듯, 가슴에서도 무언가를 나누고 버리는 일이 계속되었다. 버려야 했다. 퇴사자인 내게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라면 주저없이 그래야 했다. 나에겐 새로운 가치와 기대가 생겼고 비워진 시간이 생겼다. 온전히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면서동시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전의 나에게 목을 맬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가르는 선 하나가 지나갔다.



출산을 하고 나는 여전히 탈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떨어진 머리카락을 집착적으로 줍지 않는다. 부단히도 붙잡고자 했던 것들이 무의미하단 것을 깨달았다. 아이를 낳은 것도, 회사를 그만 둔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머리는 다시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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