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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늘의 끝 Oct 24. 2022

잔잔한 레드와 한 통의 부고




입사 2년이 채 못 되었을 때 부서로 부음이 전해졌다. 몇 달 전 퇴사한 신입사원의 부고였다. 상가에 가겠다고 나선 사람은 가장 막내 사원이었던 나와 내 동기뿐이었다. 겉으론 부서를 대표해서 가는 듯했지만 부서 내에 그녀의 죽음이 그다지 화제가 되지 못한 만큼 우리가 부탁 받은 조의금은 없었다.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그녀가 석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꾸렸던 부서 내 관계는 그 정도였던 듯싶었다. 우리 역시 그녀와 그리 친분이 있진 않았다. 그저 하루 한 두 번 이야기를 나눌까 하는 사이였다. 막상 가기로 하니 회사 체면에 막내들보단 팀장이나 적어도 대리급 선배 하나라도 가 준다면 유가족에게 더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상갓집으로 향하는 동안에는 그녀에 대한 애도보다 사내 최하급으로서의 동질감이 나를 움직였다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내 아무렴 어떠랴, 일말의 책임의식이나마 내게 남아있음이 최소한의 위로가 되었다.



자살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를 힘들게 했던 모든 대상이 꺼내어져 음식과 함께 상에 올라 씹히고 먹혔다. 우리 부서 이야기도 올랐는데, 도움 주는 상사가 없었다 더라, 마음 편히 이야기 나눌 동료가 없었다 더라, 야근이 잦았고 어려운 일도 많았다 더라 등등의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그룹 옆에 앉은 덕에 나와 동기의 고개는 떨구어졌고 젓가락은 우리 앞 접시들만 배회할 뿐이었다. 상사나 동료 이야기는 몰라도 몇 달 되지 않은 신입에게 야근이나 소화하기 어려운 일은 없었을 거라 확신하면서도 몸은 굼벵이처럼 쪼그라들었다.

그 밖에도 퇴사 사유였던 유학기간 그녀를 힘들게 했다는 여러 고민과 좌절들이 어떠한 검증도 없이 우리 테이블까지 쏟아졌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에 생전의 고통이 되었을 모든 이야기가 신뢰를 얻었다. ‘그랬었대’하는 식의 비화들이 그렇게 몸집을 부풀려갔지만 아쉽게도 진실을 답해 줄 그녀는 이제 없었다. 예상했냐는 말에 끄덕이던 고갯짓을 황급히 바꾸는 이들만이 남아있었다. 세차게 위아래로 흔들리던 머리들이 천천히 절래절래 거렸다. ‘아무것도 몰랐어요. 나랑은 어떤 관계도 없어요’라고 말이라도 하는 듯.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나 온전히 애도의 마음만 있었다면 거짓이었다. 그녀가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나와 동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지독히도 마음에 걸렸다. 떨치려 할수록 불편한 감정은 커졌다. 떼는 걸음마다 더해지는 무게에 나는 천천히 압도되어 갔다.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도 길고 힘겨웠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시자 입 안에서 이제 막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살짝 피 비린내가 나는 붉은빛 와인이 그린 풍경은 지금이 한낮임에도 다소 서늘하고 스산하다. 봄날 중에서도 드문 투박하고 어두운 날씨 때문일까? 실내에 조명을 켜본다. 벌써 십 년도 더 된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도 길 잃은 아픔이 여기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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