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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늘의 끝 Oct 24. 2022

달콤한 레드와 어느 家에서의 외로움




추석이면 우리는 할머니댁 커다란 뒷방에서 놀았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우르르 뛰어 놀고, 말뚝박기를 하고 어른들 몰래 성냥을 가지고 불장난도 했다. 밤이 깊어 바람소리, 나뭇잎소리 들리면 누가 먼저랄 새 없이 이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 숨을 죽였다. 그러면 건넌방 어른들의 왁자한 술자리 소리 뒤로 멀리 부엌에서 설거지거리 부시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웃음소리, 이야기소리가 잠잠해지면 보다 선명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는 이따금 무언가를 생각나게 했지만, 금세 나는 다시 뛰어 놀기 바빴다. 추석연휴 끝날 즈음 집에 가는 차에서 성씨 다른 엄마만 잠을 잤다. 열린 창문으로 드는 가을 바람에 엄마의 파마 풀린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아빠는 전화 끝머리에 말을 덧붙였다. “추석에 어른들께 잘하고. 우리 딸은 예쁨 받을 거야, 그렇지?” 아빠는 무엇이 걱정이 되시는 걸까. ‘잘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명절날의 엄마를 그렸다. 엄마는 일을 잘하는 며느리였지만 그다지 예쁨 받지 못했다. 엄마는 엄마와 다른 성씨로 가득한 할머니 댁에서 늘 소리를 냈다. 부당하고 불편한 것, 납득할 수 없어서 화가 나는 것들에 대해서 말했다. 물론 그건 엄마가 5번 중 4번을 참다 마지막에 터뜨리는 것이었지만, 아빠는 참으라고 하거나 침묵했다. 엄마가 납득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할머니와 아빠는 적응하고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엄마도 여자가 도맡는 명절 음식준비와 설거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건 엄마에게 이상하거나 부당한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 결혼 소식에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첫 마디는 “시집가면 이제 오기 힘들겠구나”였다. 물론 나 역시 명절 전후로 1년에 두어 번 찾는 양 조모 댁에 더 자주 들르기는 어렵겠다 생각했다. 그럼에도 ‘시집을 간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놓아야 하는 할머니들의 마음이 서글펐다. 손녀가 보고 싶은 것이야 달라질 리 없지만 결혼 한 손녀가 명절에 자신을 찾기 어려워 질것임은 너무도 뻔하였던가. 두 할머니가 살아왔던 삶에 비추어보면 손녀의 친정식구로서 당연히 가다듬어야 할 마음가짐이었을까.


‘여자는 머리 말린 자리를 꼭 치워야 한다.’ 엄마는 늘 나와 여동생에게 말했다. 아마 긴 머리카락은 짧은 머리카락보다 눈에 잘 띄니 더 주의하라는 의미가 컸을 것이고, 덕분에 우리는 머리 말린 주변을 늘 말끔하게 치우는 습관을 길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여자는’이란 조건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도 그 조건부 설교가 불편하지 않았다. 그 외에 ‘여자는 바르게 걸어야 한다’, ‘여자는 단정해야 한다’, ‘여자는 밤늦게 다니면 안 된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말들은 ‘여자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같은 말과는 다른 배경을 가졌다. 엄마는 더 이상 내게 그 조건부 설교를 하지 않지만, 다 큰 나는 알아서 ‘여자는’ 하고 조건을 달아 생각하고 행동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생경해지는 날이 오기 전까지, 덕분에 나는 예쁨을 받으며 잘 지냈다.


옛 기억의 엄마처럼 명절이면 나는 시가에서 설거지를 한다. 그 시절 엄마도 종종 외로웠을까? 이는 남편이 설거지를 해주어 달래지는 것도, 시부모님이 내게 설거지를 하지 말라 손사래 쳐 달래지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손들어 하겠다고 나선 일에도 종종 의문을 느낀다. 당연하게 범주화했던 ‘며느리의 일’이란 것들이 있다.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에게로 그 범주의 일들은 전가되어, 어머님의 몸이 편치 않으면 내 몫을 다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집에서 성씨 다른 두 사람만이 온전히 느끼고 짊어지는 책임에 마음이 쓸쓸해진다. 나의 시어머니도 어느 시절에 외로웠을 테고, 지금도 종종 어느 틈에선가 외로울 것 같다. 대게 외로움은 공감으로 치유되지만 공감으로써 깊어지는 류도 있다. 훗날 내 딸이 나의 고민에 대해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이 곳에서 오늘의 나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 아이를 앞에 두니 물음표는 나를 향한다. 돌아온 질문에 다시금 외로워진다.




명절이 지나고 돌아온 집에서 나는 잘 익은 검은 베리향으로 가득 찬 잔에 얼굴을 오래 묻는다. 복잡한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나는 입으로 흘러 들어오는 몹시 진하고 푹 익은 검은 과실의 달큰한 맛을 한참 동안 음미한다. 신선한 단맛에 취해있자니 잊지 말라는 듯, 다크초콜릿의 씁쓸하고 후추의 매운 향이 조금씩 올라온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그 뒤에 발견한 이 은은한 꽃향을 놓치지 않고 싶다. 천천히 처음부터 다시 느껴본다. 다시 생각해본다. 복잡하고 알기 어려운 나의 혀 끝의 감각과 내 마음의 소리에 기꺼이 시간을 들여본다. 이 수고로움으로 나는 내일 보다 원하는 맛의 와인을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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