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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늘의 끝 Oct 25. 2022

양심을 판 공짜 밥과 마구간 냄새의 레드




'안녕하세요.

전화 드린 주문자입니다. 쿠팡이츠 쪽에서는 시스템상 취소번복 되지 않는다고 해요. 방법이 없다고.. 배달미스로 불편은 있었으나 마크업 노력해주셨는데, 이렇게 되는 줄 몰랐네요. 본 주문취소로 인한 지불비용 생기시면 보존해 드리고 싶습니다. 연락주세요.'


여차저차 알아낸 연락처로 문자를 보내고 입이 말라 꺼내 놓은 와인을 마셨다. 좀 전엔 매력으로 느껴지던 마구간 냄새가 너무 지독했다. 입 안에 퍼지던 벨벳처럼 부드러운 감촉도 느낄 수 없었다. 우아하고 섬세하다 여겨졌던 여러 향과 맛들도 덜 익은 자두의 떫은 맛에 모두 묻혔다. 불편하고 역한 맛. 나는 더 이상 따라 둔 와인을 마실 수가 없었다.



옵션은 둘이었다. 취소 또는 재 주문. 그런데 재 주문은 아니잖아, 난 일단 밥이 왔다. 밥이 더는 필요하지 않고, 중요한 건 못 먹을 것도 아니었다. 배달을 보낸 음식점 주인이 말한 대로 옵션에 쿠폰 같은 중간이 있었다면 나는 피해갈 수 있었을 거다. 오늘 같이 내 바닥을 보는 그런 일을 마주하지 않았어도 될 일이다. 하지만 상황은 갑작스럽게 다가왔고, 내게 질문을 들이밀었다. 손바닥 양면처럼 네 양심과 바닥 중 어느 것을 볼 것인지를 물었다.


 바닥은 공짜 밥을 선택했다. ‘취소해주세요.’ 아직도 공짜에 이렇게 흔들리나?   어른이 마인드가 진상 아닌가. 순간적으로 ,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태도가 아니었다고 덮어 놓기엔  사고의 흐름과 선택은 나를 증명하고 있었다. 비양심적. 도덕적 패배감을 삼키기도 전에, ‘그런데  공짜 , 누가 지불하지?’ 아마 기업이었다면  은근슬쩍 짐을 덜었겠지만, 열심히 초록 창을 검색   결과 라이더가 100프로 진단다. 크게 힘도 없는, 알지도 못하는 어느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사는 밥을 내가 먹는다니.  만원, 배달일  건을 해야 버는 값일 텐데. 아까 들은 목소리, 물건을 전해 받으며 헬멧 사이로  눈동자.  밥이  먹혔다. 설레는 마음으로 거하게 시켰던 음식이 소태 같이 꺼끌거렸다. 손톱만한 양심이 남아 있다면 이런 바닥 같은 나에게 무엇도 먹이기 싫었을 테지.


왜 그랬지? 화가 나서? 잠시의 불편을 보상 받고 싶어서? 나는 그저 기회가 생기면 공짜 밥을 탐하는 양심에 털 난 대머리인가? 그렇다면 이 거지근성을 어떻게 하지?


나는 일상에서 무엇을 누구로부터 착취하고 있을까. 오늘의 내가 진짜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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