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길, 집 인근 얕은 산에서 아이와 가을 산책을 하고 왔다. 형형색색 물드는 풍경을 보고, 낙엽 부서지는 냄새도 맡으며 천천히 움직이는 가을 볕 아래에서 아이와 나는 도토리를 주웠다. 아이는 여기 저기 신나게 뛰어 다니며 도토리를 주웠고 금세 우리 두 손에 도토리가 가득했다. “다람쥐가 먹어야 된대요. 이거 어디에 다시 둘까?” 아이가 반짝이며 말했다. 돌아오는 길 아이에게 내 할머니 이야기를 해줬다. 할머니의 찐빵, 만두, 그리고 도토리묵 이야기도.
외할머니는 맛깔 난 손맛을 지닌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입 짧은 나는 할머니댁에만 가면 매 끼니 커다란 어른 숟가락으로 입 안 가득 밥과 반찬을 넣어 먹었다고 했다. 대학교 근처 하숙집 밥맛이니 맛 없을 리 없겠지만 이미 엄마 고향에부터 소문난 솜씨였다 했다. 게다가 할머니는 그 재주 난 손이 크기도 하여 늘 커다란 양푼 한 두어 개를 꽉 채울 만큼 음식을 했다. 특히나 만두, 찐빵 등은 우리 집 냉동실 두 세 칸을 채울 만큼 가져와 식사로도 먹고 간식으로도 먹었다. 할머니에겐 음식 가져다 먹는 자식이 셋이고, 할머니 집은 이웃들의 사랑방이자, 그 많은 친척들이 자주 찾는 큰집이고 쉼터였으니 할머니의 넉넉한 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매콤한 할머니 김치만두는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야식이었는데, 여름이고 겨울이고 배 출출한 밤이면 한 뜻으로 모여 기름에 지진 할머니표 김치만두를 먹었다.
그리고 도토리묵. 그건 이 계절의 특식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손톱만한 도토리를 몇 날 며칠 주워 모아 직접 씻고 말리고 가루를 내어 물에 개고, 끓이는 내내 눌어붙지 않게 튼실한 팔로 천천히 저어 만들었다. 나는 그 당시 할머니표 도토리묵을 큰 숟가락으로 퍼 먹었는데, 만드는 법을 지금만큼 알았다면 그렇게 헤프게 먹지 못했을 거다.
이젠 도토리를 줍는 일이 사유지 문제나 동물보호 문제로 할 수조차 없게 되었지만 세월의 근력이 두툼히 붙어있던 그 팔뚝 역시 이젠 탄력을 잃고 근육의 힘도 부서졌다. 작고 가벼운 도토리를 주워담기도 그러기 위해 외출을 하는 일조차 어렵게 되었다. 무엇보다 몇 십 분씩 커다란 냄비의 되직한 도토리 죽을 젓는 것은 할머니에게 더 이상 가능한 일이 아니게 됐다. 할머니 찐빵보다 진화한 건강빵을 엄마가 만들어 주고, 할머니 손맛만큼 맛난 시판 김치만두가 우리 집 냉동실에 있지만 오늘 도토리묵 이야기에 할머니 음식이 오래도록 그립다. 할머니의 튼튼하고 힘있는 팔뚝이 연실 냄비 바닥을 젓던 모습이 그립다. 부엌에 선 할머니가 나무로 된 두툼한 문지방에 발을 딛고 총총거리는 날 돌아보며 '추워, 방에 들어가 있어.' 하는 그 소리, 그 얼굴이 몹시 그리워졌다.
집에 돌아와 주머니에 남겨 온 도토리 세 알을 가지고 노는 아이를 보며 오렌지 와인을 잔에 따른다. 살구처럼 달큰하고 좋은 홍차만큼 여운이 긴 향, 그치만 씁쓸하고 떫은 맛을 지닌 짙은 호박색 액체. 잔 안의 와인은 풍성하고 쓸쓸한 오늘의 한낮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