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화 드린 주문자입니다. 쿠팡이츠 쪽에서는 시스템상 취소번복 되지 않는다고 해요. 방법이 없다고.. 배달미스로 불편은 있었으나 마크업 노력해주셨는데, 이렇게 되는 줄 몰랐네요. 본 주문취소로 인한 지불비용 생기시면 보존해 드리고 싶습니다. 연락주세요.'
여차저차 알아낸 연락처로 문자를 보내고 입이 말라 꺼내 놓은 와인을 마셨다. 좀 전엔 매력으로 느껴지던 마구간 냄새가 너무 지독했다. 입 안에 퍼지던 벨벳처럼 부드러운 감촉도 느낄 수 없었다. 우아하고 섬세하다 여겨졌던 여러 향과 맛들도 덜 익은 자두의 떫은 맛에 모두 묻혔다. 불편하고 역한 맛. 나는 더 이상 따라 둔 와인을 마실 수가 없었다.
옵션은 둘이었다. 취소 또는 재 주문. 그런데 재 주문은 아니잖아, 난 일단 밥이 왔다. 밥이 더는 필요하지 않고, 중요한 건 못 먹을 것도 아니었다. 배달을 보낸 음식점 주인이 말한 대로 옵션에 쿠폰 같은 중간이 있었다면 나는 피해갈 수 있었을 거다. 오늘 같이 내 바닥을 보는 그런 일을 마주하지 않았어도 될 일이다. 하지만 상황은 갑작스럽게 다가왔고, 내게 질문을 들이밀었다. 손바닥 양면처럼 네 양심과 바닥 중 어느 것을 볼 것인지를 물었다.
내 바닥은 공짜 밥을 선택했다. ‘취소해주세요.’ 아직도 공짜에 이렇게 흔들리나? 다 큰 어른이 마인드가 진상 아닌가. 순간적으로 한,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태도가 아니었다고 덮어 놓기엔 그 사고의 흐름과 선택은 나를 증명하고 있었다. 비양심적. 도덕적 패배감을 삼키기도 전에, ‘그런데 내 공짜 밥, 누가 지불하지?’ 아마 기업이었다면 난 은근슬쩍 짐을 덜었겠지만, 열심히 초록 창을 검색 해 본 결과 라이더가 100프로 진단다. 크게 힘도 없는, 알지도 못하는 어느 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사는 밥을 내가 먹는다니. 사 만원, 배달일 몇 건을 해야 버는 값일 텐데. 아까 들은 목소리, 물건을 전해 받으며 헬멧 사이로 본 눈동자. 난 밥이 안 먹혔다. 설레는 마음으로 거하게 시켰던 음식이 소태 같이 꺼끌거렸다. 손톱만한 양심이 남아 있다면 이런 바닥 같은 나에게 무엇도 먹이기 싫었을 테지.
왜 그랬지? 화가 나서? 잠시의 불편을 보상 받고 싶어서? 나는 그저 기회가 생기면 공짜 밥을 탐하는 양심에 털 난 대머리인가? 그렇다면 이 거지근성을 어떻게 하지?
나는 일상에서 무엇을 누구로부터 착취하고 있을까. 오늘의 내가 진짜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