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때깔을 찾아서
'20년, 콘텐츠 사업은 호황을 누렸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집에 갇힌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자기 계발? 아니죠, TV를 봅니다. 스마트폰, 태블릿으로 OTT를 이용합니다. 플랫폼마다 제공하는 콘텐츠가 달라 두 개 이상의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넷플릭스를 포함해 2개 이상의 플랫폼을 이용해보셨다면 이런 질문을 해 보신 적이 없으신가요?
왜 넷플릭스 포스터는 때깔부터 다를까?
<문제>
Q. 넷플릭스의 포스터가 더 좋아 보이는 이유는?
다음 중 정답을 말한 사람을 모두 고르시오.
현진: 넷플릭스는 돈이 많으니까 포스터를 많이 만들어서 제일 좋은 걸로 뿌렸을 것 같은데?
연수: 넷플릭스 하면 기술력이잖아. 신기술을 사용해서 포스터를 멋지게 만들었을 것 같아.
병순: 넷플릭스의 디자이너들이 감각이 좋은가 봐. 포스터를 리디자인할 때 디자이너들이 열일한듯.
수진: 포스터가 자주 업데이트돼서 좋아 보이는 거 같아. 여러 버전의 포스터를 미리 만든 거지.
예나: 다른 플랫폼은 포스터가 다 똑같던데? 맨 처음 받은 것만 쓰니까 별로지.
1. 현진, 연수
2. 현진, 병순
3. 병순, 수진
4. 현진, 병순, 예나
5. 모두 다
<해설>
정답은 5번, 모두였습니다.
넷플릭스는 뛰어난 기술력과 방대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사용자 맞춤형 포스터 추천"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것이 바로 "때깔"의 원천이었죠. 학생들이 말한 내용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1) 현진: 넷플릭스는 돈이 많으니까 포스터를 많이 만들어서 제일 좋은 걸로 뿌렸을 것 같은데?
네, 맞습니다. 돈이 많은 회사만 여러 버전의 포스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모든 콘텐츠에 3개의 포스터를 제작한다고 생각해볼까요. 포스터 제작과 운영 비용, 그리고 이미지 저장 스토리지 비용까지 세 배가 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신규 서비스를 개발하고 테스트하기 위한 R&D 비용을 지원할 의사와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2) 연수: 넷플릭스 하면 기술력이잖아. 신기술을 사용해서 포스터를 멋지게 만들었을 것 같아.
영상 인식 기술이 최고의 썸네일을 뽑아줍니다. 조명, 밝기부터 연기자와 그들의 행동까지 고려하여 썸네일을 캡처하면 그 이미지를 바탕으로 디자이너들이 포스터를 만듭니다. 썸네일 추출 시 고려하는 요소에는 시각, 맥락, 구성 정보가 있습니다.
시각 정보 : 밝기, 선명도, 색상
맥락 정보 : 연기자의 의미 있는 움직임 (얼굴 감지, 모션 추정)
구성 정보 : 심도, 대칭 정보
3) 병순: 넷플릭스의 디자이너들이 감각이 좋은가 봐. 포스터를 리디자인할 때 디자이너들이 열일한듯.
네, 디자이너들이 추출한 썸네일 중 적절한 이미지들을 골라 편집합니다. 그리고 포스터를 여러 버전으로 만듭니다. 사용자의 취향은 다양하니까요.
4) 수진: 포스터가 자주 업데이트돼서 좋아 보이는 거 같아. 여러 버전의 포스터를 미리 만든 거지.
알고 계셨군요? 넷플릭스는 간간히 포스터를 업데이트합니다. 그 유명한 넷플릭스의 추천 시스템이 포스터에도 적용된 것이죠.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추천되는 포스터가 다릅니다. 사용자의 시청 기록이 쌓이고 취향이 변했다고 인지되면 보이는 포스터가 바뀔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제 넷플릭스 화면에 뜨는 포스터들은 이렇습니다. 몇 개 콘텐츠는 다른 분에게 보이는 포스터 이미지와 다를 것입니다.
5) 예나: 다른 플랫폼은 포스터가 다 똑같던데? 맨 처음 받은 것만 쓰니까 별로지.
정곡을 찔렀습니다. 그래서 넷플릭스가 "비교적" 더 좋아 보이죠.
넷플릭스의 사용자 맞춤형 포스터
정리하자면 넷플릭스는,
1) 추출: 콘텐츠에서 인상적인 썸네일을 여러 장 추출하고,
2) 편집: 디자이너들이 포스터를 다양하고 예쁘게 여러 장 제작하고,
3) 추천: 사용자 취향에 맞는 포스터를 노출하며,
4) 업데이트: 시간이 지나면 경우에 따라 업데이트합니다.
아래 "기묘한 이야기" 예시에서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커플이 있는 포스터를, 밝은 성장 스토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이들이 보이는 포스터를,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분위기의 어두운 포스터를 추천하는 방식입니다. 포스터를 사용자별로 다르게 추천하면 시청건수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동일한 화면에 쉽게 질리는 현대인들에게 추가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는 이점이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콘텐츠 별로 정확히 몇 개의 포스터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서비스 사용자로서 예측해보자면, 영미권 콘텐츠는 최소 3개의 포스터를 가지고 있고, 콘텐츠가 얼마나 잘 나가느냐에 따라 추가적으로 제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넷플릭스가 포스터를 개인화하기까지
어떤 이슈가 있었나
넷플릭스는 그들의 테크 블로그에 사용자 맞춤형 포스터를 개발하기까지 당면했던 과제들을 정리했습니다. 일부를 번역했습니다. 맞춤형 포스터 서비스를 개발할 때 고려할 사항으로 유용한 정보입니다.
과제 1) 한 콘텐츠에 하나의 포스터만 내보낼 수 있어서 사용자의 선호도를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넷플릭스는 사용자 개개인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맞춤 서비스는 "홈페이지에서 선택하는 블록(행)"부터 각 블록에 있는 콘텐츠, 보여주는 이미지들, 텍스트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요소 하나하나를 개인화할 때마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생깁니다. 고객 맞춤 포스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문제점은, 콘텐츠마다 한 가지 이미지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에게 여러 선택지를 제공하고 사용자가 어떤 선택지를 고르냐에 따라 학습해나갑니다. 그런데 포스터 추천은 사용자가 시청한 콘텐츠의 포스터 이미지만 알 수 있죠.
과제 2) 포스터를 바꾸는 것이 사용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해해야 합니다.
포스터를 바꾸면 콘텐츠에 대한 인지도를 떨어뜨려 콘텐츠를 찾기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사용자가 원래 보려고 했던 콘텐츠인데 아직 안 본 거였다면? 아니면 포스터를 바꾸는 것 자체가 사용자가 콘텐츠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선택할 확률이 높아지게 할까요? 당연히 더 좋은 포스터를 찾으면 사용자에게 보여주겠지만 계속 바꾸는 것은 사용자를 헷갈리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미지를 계속 바꾸면 어떤 이미지가 사용자의 관심을 끌었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집니다.
배운 것: 포스터 업데이트의 기준과 주기를 적절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해결과제 3) 함께 배치된 다른 포스터를 고려해야 합니다.
주요 인물을 클로즈업한 포스터가 사용자에게 먹힌 것은 다른 포스터에 비해 눈에 띄어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콘텐츠들도 인물 클로즈업샷을 썼다면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겠죠. 각각의 포스터를 따로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포스터 이미지의 영향도는 시놉시스, 예고편 등 다른 요소들에 의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포스터 하나만 고려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포스터는 화면에 함께 배치된 다른 정보들과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과제 4) 좋은 포스터 이미지 풀을 확보해야 합니다.
낚시성 포스터를 피하기 위해 호감이 가고, 정보를 제공하며, 콘텐츠를 대표하는 포스터를 여러 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취향이 서로 다른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다양한 포스터 이미지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어떤 포스터가 호감이 가고 정보를 제공하느냐는 그 이미지를 보는 개인에게 달려있으니까요. 따라서 우리는 콘텐츠의 다양한 테마뿐만 아니라 다른 심미성까지도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넷플릭스의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는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제작합니다. 그들은 이미지 제작 과정에서 추후 이미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사용자 맞춤형 알고리즘을 고려해야 합니다.
"다른 심미성"까지 고려하는 것은 사용자가 선호하는 이미지 스타일까지 반영한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색감이 쨍하고 밝은 이미지를 좋아하냐, 채도가 낮고 감성적인 이미지를 좋아하냐도 고려한다는 것이죠.
과제 5) 마지막으로, 개발 이슈가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영상 서비스 특성상 많은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각 요소에 대한 개인화는 1초에 최고 2,000만 건이 넘는 요구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스템이 튼튼해야 합니다: 오류가 발생하여 포스터 이미지나 UI를 가져오는 데 실패하면 서비스 퀄리티가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우리의 개인화 알고리즘은 콘텐츠가 뜰 때마다 빠르게 반응해야 하며 아무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부터 개인화를 빠르게 배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콘텐츠의 생애 주기와 시청자의 취향 변화에 따라 포스터 이미지의 효과가 변할 수 있고, 알고리즘은 지속적으로 맞춰 가야 합니다.
부록: 좋은 포스터의 조건
사용자 맞춤형 포스터를 기획한다면 적절한 썸네일을 추출하고 포스터로 편집하는 과정부터 거쳐야 합니다. 어떤 썸네일이 적절한 썸네일인지 알기 위해 유튜브에 각 콘텐츠 하이라이트 클립을 캡처해 포스터를 직접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알게 된 좋은 포스터의 조건을 정리했습니다.
넷플릭스에는 없는 펜트하우스와 철인왕후의 기존 포스터와 사용자 맞춤형 포스터를 비교했습니다.
펜트하우스의 기존 포스터는 드라마의 "매운맛" 분위기를 반영했지만, 이 이미지만으로는 콘텐츠에 대한 정보를 더 알기 어렵습니다. 펜트하우스의 일부 장면을 포스터로 만든다면 어떨까요? 중간에 있는 포스터는 로맨스, 치정물이 취향인 사람에게, 오른쪽에 있는 포스터는 추리, 작전물이 취향인 사람들에게 추천해줄 수 있습니다. 포스터에 있는 이벤트(키스, 귓속말)가 인물의 관계성과 스토리를 담아 콘텐츠에 대해 더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철인왕후 예시입니다. 원본 포스터도 귀엽지만 주인공들의 얼굴이 잘 안 보인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새로운 회차가 들어올 때마다 회차별 하이라이트 장면을 포스터에 담아 업데이트한다면 그 콘텐츠를 볼 계기가 더 생기지 않을까요?
포스터를 직접 만들어보니 어떤 포스터가 좋은 것이냐에 대한 기준을 어느 정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지금까지 제가 정리한 좋은 포스터의 기준입니다. 자동화가 가능한 부분은 최대한 자동화하더라도 최종 디자인과 검수는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에 포스터 제작을 위한 운영 인력이 많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주인공 얼굴 or event 장면이 포스터 중앙에 위치
- 주인공 얼굴 or event 장면이 포스터 비율로 꽉 차야 함 (잘리는 검은 화면/자막 없게)
- 방송/영화 타이틀 이미지(로고)가 들어갈 여유 공간이 있어야 함
- 방송/영화 타이틀 이미지(로고)가 주인공 얼굴 or event를 가리지 않게 적절한 곳에 배치해야 함
- 방송/영화를 알고 있는 사람이 편집하는 것이 좋음 어떤 장면이 관심을 끌 수 있는지 혹은 스포는 없는지 알 수 있음
넷플릭스가 R&D에 투자하는 만큼 "때깔" 좋은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때깔만 좋은 게 아닙니다. 사용자의 시청을 끌어올리는 실속까지 챙겼습니다. 넷플릭스 테크 블로그에 "사용자 맞춤형 포스터" 글에 적힌 연도, "2017년"이 넷플릭스가 얼마나 기술 선도적인 기업인지 새삼 다시 깨닫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