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 장편소설
『순수의 시대』를 읽으며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타인과 365일 24시간을 함께한다 해도 그 속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상은 실제의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덧칠한 이미지와 환상일지도 모른다.
뉴랜드 아처 역시 그 환상의 굴레 안에 있었다. 약혼녀 메이에 대한 그의 감정은 익숙함과 안정이 설계한 예측 가능한 집 같았다. 그는 메이를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존재, 자신이 가르치고 일깨워야 할 종속적인 여성으로 규정했다. 스스로를 유럽의 지성과 예술을 이해하는 깨어 있는 지식인이라 자부하며 관습에 갇힌 메이를 연민했지만, 이것은 아처의 거대한 착각이었다.
실상 메이는 이 시스템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체화하고 활용할 줄 아는 존재였다. 아처가 추상적인 자유와 이론적인 고뇌 속에서 흔들리는 동안, 메이는 침묵이라는 전략적 무기로 판을 짜고 있었다. 남편의 흔들림을 진작에 읽었으면서도 결코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대신 가문의 어른들을 움직이고 임신이라는 결정적 카드를 던져 엘렌을 축출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냈다. 아처가 메이를 순진한 꽃으로 얕잡아보는 사이, 그 꽃은 시스템이라는 비료를 먹고 자란 가장 단단한 뿌리로 아처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엘렌 올렌스카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이었다. 1870년대 뉴욕 상류사회가 선망하던 유럽의 지성과 자유를 몸소 체화한 인물인 데다, 당대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탁월한 감각까지 갖추고 있었다. 깊이 있는 전통과 끊임없이 변하는 현재를 완벽하게 조화시킨, 그 자체로 완성된 현대 여성이었다.
그런 엘렌이 이 사회에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순히 출신이 달라서가 아니었다. 당시 미국 상류사회는 혈통 중심의 올드 머니가 자본을 앞세운 뉴 머니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성벽을 쌓던 시기였다. 그들은 오페라에 일부러 늦게 도착하거나 이탈리아어 가사만을 고집하는 등 인위적인 규범을 순수이자 전통이라 믿으며 신흥 부자들과 자신들을 구분 지으려 했다. 엘렌은 그 규범을 내면화하는 대신 그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었고, 바로 그 점이 이 사회가 그녀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였다.
그 규범의 민낯은 계급의 경계가 아니라 인간의 불행 앞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소설 속 사랑은 주로 엘렌과 아처의 로맨스에 집중되지만, 엘렌이 보여준 사랑은 이성 간의 애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편의 파산으로 사교계에서 철저히 매장당한 보퍼트 부인을 모두가 외면할 때, 엘렌은 주위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그녀의 곁을 지켰다. 타인의 불행을 자신의 평판보다 소중히 여긴 그녀의 태도는, 위선적인 규범으로 무장한 뉴욕 사교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진정한 순수함이었다.
그리고 이 순수함은 단지 시대를 앞선 것이 아니라, 시대가 한참 지난 뒤에야 비로소 제대로 읽히는 종류의 것이었다. 아들 댈러스는 부모 세대를 향해 말한다. 두 분은 서로에게 부탁 같은 건 안 하셨죠, 가만히 앉아서 속마음을 짐작하기만 했어요, 벙어리 귀머거리 수용소였다니까요. 구세대가 고상함이라 포장했던 침묵이 사실은 서로의 영혼을 가둔 감옥이었음을 아들 세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기 마음조차 잘 모른다고 고백하면서도 솔직하게 대화하려는 그들은, 부모 세대가 끝내 하지 못했던 것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엘렌은 그 길의 가장 앞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침묵의 감옥을 가장 먼저 탈출한 이방인이자, 다음 세대가 지향할 솔직한 자아의 원형으로서.
세상이 변하고 아들이 아버지와 엘렌의 관계를 인정함에도, 아처는 끝내 그 세계로 진입하지 못한다. 파리에서 엘렌의 집 앞 벤치에 앉은 그는 엘렌이 창문을 내다보며 먼저 자신을 알아봐 주기를 기다리는 구시대적 떠보기에 머문다. 원작 소설에서 아처는 창문 안에서 새어 나오는 따스한 불빛을 보며 발길을 돌리지만,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에서는 훨씬 더 강렬한 장면이 연출된다. 무심하게 닫히는 유리창에 반사된 차가운 햇빛이 아처의 눈을 정면으로 쏘는 것이다.
그 눈부신 햇빛은 너는 결국 낡은 관습의 일부로 남는구나라는 선고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정직한 빛은 어둠 속에서 환상만을 탐닉하던 아처의 비겁함을 타격하며 가짜 순수의 종말을 고한다. 창문이 닫히는 행위는 엘렌이 선언한 구시대적 소통 방식과의 결별이자, 아처라는 과거와의 단절이다.
많은 고전이 사회와 충돌한 개인의 파멸을 다룬다. 『이방인』에서 사회와 끝내 조화되지 못한 개인이 고립되거나, 『1984』에서 개인의 내면까지 철저하게 통제되거나, 『변신』에서 개인이 점점 사회에서 배제되고 사라지는 것처럼. 그러나 『순수의 시대』는 조금 다른 방향을 보여준다. 개인과 사회의 충돌을 다루면서도 그 결말은 단순한 개인의 패배로 귀결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뒤 남는 것은 거창한 사회적 규범이 아니라, 개인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태도라는 것을 이 소설은 말한다. 가짜 순수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은 진짜 순수의 시대, 즉 엘렌의 시대는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해 보였다. 진정한 순수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모든 것이 변해도 끝내 훼손되지 않는 영혼의 정직함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