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이 곳에서 3박 4일동안 같은 찜질방에서 잤는데 꿈을 꾼 건 첫 날 하루뿐이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7시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5시 넘어 일을 끝내면 밥을 먹고 찜질방 안에 들어와 씻고 바로 잠에 들었다. 내가 평소 관심이 많았던 유적지가 산재해 있는 곳이라 따로 관광이나 여행을 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었다. 물똥을 싸도 건강한 일로 싸게 되서인지 자고 일어나면 바로 몸이 회복되었다.
찜질방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1박을 하는 유일한 손님인 내가 3일 연속으로 자자 이 곳 농사일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양파밭, 감자밭, 마늘밭, 옥수수밭. 당신들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농사 일이 고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날씨에는 최대한 일을 안하신단다. 현재 “도시”에 나가 일하는 자녀분들이나 며느리, 사위, 조카들이 모두 이삼십대인데 (심지어 그 중 하나는 체대를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쉬는 날 놀러와서 농사일 하루 하더니 당신들보다 먼저 지쳤다며 웃으셨다. 농사일은 젊음의 체력과 운동 능력과는 또 다르다고. 맞다. 동의한다. 나는 우리 엄마보다 10살 젊지만 30살 더 나이 들어보이는 이 곳 어머님이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고 일하시는 걸 지난 3일(그리고 오늘 마지막 4일) 내내 보았다. 언제까지 일하냐는 말에 오늘까지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래도 배운 게 많지 않냐고 하셨다. 배운 게 많았다. 직장 정치와는 또다른 차원의 근성, 성실함, 체력, 그리고 그에 따른 자기반성과 묘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씀드렸다. 미소를 지으셨다. 어제 비누로 대충 빨아 놓은 내 작업복들에 손수 옷걸이와 말릴 곳을 마련해 주신 분들이다. 아직 다 마르지 않은 것 같다며, 꿉꿉해서 어쩌냐며 걱정하시길래 괜찮아요 날이 더워서 가면서 다 말라요 라며 웃었다. 그러자 웃으시면서 그래 날이 더워서 금방 마를거야 그럼 밥 먹고 12시에서 2시까지는 쉬겠네? 요즘 땡볕이라 힘들지? 라고 하셨다. 그래서 사실대로 아뇨 밥 먹고 바로 일 나가는데요 라고 했더니 인상을 찌푸리셨다. 그러면 안된다고 하셨다. 요즘은 해가 길어져서 밤 8시도 환하니 적어도 밥 먹고 1시간은 쉬고 나가야 안 아픈데라고 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날이라며. 밝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4일, 마지막 날.
마지막 날이라 마음이 가벼웠다.
오늘 끝나면 돈 받겠구나.
오늘 일하는 사람은 9명.
나, (농협 중개로 온) 남자, (농협 중개로 온) 커플, (이 곳 현지 분이자 정신지체2급이라는) 어머님,
그리고 어제와 그저께와 마찬가지로 근처 대학에서 단 하루만 일하러 온 21살 남학생들 4명,
이렇게 9명이었다.
농협 중개로 온 커플도 오늘이 마지막 날이고, 어머님도 오늘까지만 여기서 일한다고 하셨다.
농협 중개로 온 남자는 기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데다가 성격도 좋아서 농가주가 하루만 더 일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오늘까지만 할지, 아니면 내일 하루만 더 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이 날 농가주가 대대적으로 남자들에게 쌍욕+쌍욕+쌍욕을 퍼붓는 사건이 발생해서 결국 처음으로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그 남자도 오늘까지만 일하기로 결정하고 떠났다.
농가주는 아침부터 늦었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것도 운전하고 있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중에는 감자밭에 도착한 나에게.
우리는 의아했다. 무언가 커뮤니케이션의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 일하는 곳은 첫 날 일했던 감자밭이었다.
터미널 근처 장례식장 옆에 있는 감자밭이었다.
그 장례식장에서 10m 떨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찜질방은 터미널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지난 이틀동안 찜질방 앞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를 픽업했던 농가주는 오늘은 남학생들이 4명이나 오기 때문에 자리가 없어서 픽업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오늘 일하는 감자밭은 첫날 일했던, 터미널 근처 장례식장과 가깝다는 걸 알고 위치도 이제는 알기 때문에 그냥 아침에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 어차피 기본 요금 나오는 거리니 상관없다고. 그러자 분명 농가주는 나처럼 농협을 통해 일하러 온 남자에게 자신이 교통비를 줄테니 나를 포함해 이 곳 어머님을 함께 픽업해 아침에 오라고 했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남자는 자연스럽게 나를 찜질방 앞에서 픽업하라는 건 줄 알았다. 왜냐하면 감자밭은 장례식장에서 100m도 아닌 고작 10m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굳이 터미널 근처 장례식장에서 이 남자가 나를 차로 픽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걸어가도 되는 거리를, 게다가 어디 있는지도 아는 곳인데 고작 10m를 위해 차를 탄다?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됐든 늦었다고 우리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일을 못하고 있다고 (응? 그냥 각자 감자를 줍기만 하는 건데 왜 우리가 안와서 일을 못한다는거지?) 소리지르는 농가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 술 먹기 전에 한 말과 술 마시고 한 말이 이렇게 달라진 건가. “000씨가 어제 분명히 택시 타고 온다고 했잖아!!!!” “네 그렇게 말했는데 그 다음에 사장님이 저 남자분 보고 저 픽업하라고 하셨는데요” “장례식장까지 택시 타고 오면 그 다음에 데려오라는거지!” “네? 여기 장례식장에서 10m밖에 안 떨어져 있는데요?” 그러더니 몰라몰라 000씨가 분명 그랬어라며 손사래를 치며 내 말을 막았다. 나는 어제와 그제에 이은 화풀이겠거니 하고 그냥 빈 박스를 들고 감자를 캐러 갔다. 나때문에 공연히 아침부터 재수없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남자에게 미안했다.
날이 무더웠다.
아. 오늘도 물똥 싸겠네.
쉬는 시간에 나온건 또 2리터짜리 얼음물과 편의점 얼음컵과 편의점 커피였다. 어머님은 커피를 버리셨다. 얼음물을 마시면서 또 농가주의 '소리를 지르고 맞아야 그제서야 일한다는 공무원들과 젊은 남자들과 군인들 이야기, 귀농귀촌 이야기와 공산주의와 정부 귀농 프로그램 썰'이 이어졌다. 더 쉬고 싶어서 우리는 돌아가면서 농가주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한 20분 쉴 수 있었다.
다시 일하러 들어갔다.
기계가 트랙터 외에 하나가 더 들어왔다. 이름은 모르겠다.
기계가 밭 웅덩이에 빠졌다.
농가주를 포함해 감자밭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기계에 달려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쌍욕 쌍욕 쌍욕.
쌍욕 쌍욕 쌍욕.
쌍욕 쌍욕 쌍욕.
쌍욕 쌍욕 쌍욕.
쌍욕 쌍욕 쌍욕.
아이들 표정은 굳어지더니 나중에는 차가워졌다.
남자의 표정은 처음으로 불쾌하고 썩은 티가 나기 시작했다.
커플로 온 남자는 이미 첫 날 경찰까지 불러 농가주와 한바탕해서인지 이제는 그저 포기 내색이 역력했다.
점심 시간은 최악의 침묵 속에서 이어졌다.
남학생 4명은 모두 핸드폰을 보며 농가주의 말을 듣지 않았다. 우리도 밥만 먹었다. 농가주는 말을 시작하다가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냉우동을 빠른 속도로 삼켰다. 점심 시간은 또 15분만에 끝났다.
“이런 식이면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도 일하러 올 것 같지 않아요”라고 커플 여자가 말했다.
나도 동의했다. 최저 시급과 고작 1,000원 차이. 유일한 장점이라면 하루만 일할 수 있다는 점이고 끝나면 바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폭염주의와 폭염경고 속에서 15분만에 끝나는 점심과 간식과 휴식 시간도 제대로 배정되어 있지 않고 탈수만 일으키는 음료에다가 그늘막 하나 없는 상황에서 7~8시간을 내리 일해야 한다면, 결국 이런 식의 환경에서 일할 사람은 환율 차이로 한국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밖에 없다. 농촌에 일손이 없다면서 요즘 젊은 애들을 욕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사람 일 시키면 당연히 아무도 안와요.
그나마 위안이라면 현지 찜질방 아주머니들을 통해서 들은 농촌 일들 대부분은 이 농가주처럼 하는게 아니라는 사실뿐이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는 분명했다. 햇볕 속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위한 그늘막 제공. 점심 먹고 1~2시간의 분명한 휴식. 탈수를 방지하는 적절한 음료와 새참. 사실 이렇게 기본적인 것만 제대로 갖추고 있어도 사줄 필요 없는 저녁을 사주면서 자신은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농가주의 말에 의의를 달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에휴.
그래도 어쨌든 시간은 흘러 마칠 시간이 되었다.
멀리서 농가주가 오전까지만 해도 멀쩡했지만 지금은 찌그러진 소형차를 몰고 왔다. 앞 좌석 문이 안 열렸다. 뒤에 탄 우리를 두고 농가주는 어딘가로부터 오는 전화를 받았다. 스피커폰인지 볼륨이 높은 건지 그도 아니면 상대방이 소리를 질러서인지, 농가주 밭에서 일하다가 발목을 다쳐 걸을 수 없으니 보상하라고 했다. 농가주는 소리를 지르며 고소하라고 했다. 내가 그런거 무서워할 줄 아냐며, 나 무서운 사람이라며, 검찰 부르라며, 법원 가자며. 싸움 소리를 들으면서 앞 좌석 문이 어디 부딪힌게 아니라 농가주 스스로 발로 찬 게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묻지 않았다.
일렬로 서서 돈을 받았다.
4일치 돈을 다 받았다.
농가주는 교통비를 따로 주겠다던 남자에게 결국 교통비를 따로 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찜질방비를 다 주겠다고 하다가 첫날 찜질방비만 주겠다고 말을 바꾼 농가주는 그 찜질방비도 제외하고 나에게 4일치 임금을 주었다. 나는 다음 사람에게 넘어가려는 농가주에게 양손을 만화처럼 접어 올려 “찜질방비 만원 주세용”이라고 말했다. 농가주는 내가 늦었다느니 어쨌더니 하더니 결국 찜질방비 만원을 줬다.
커플도 약속한 3일치 임금을 다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농가주는 농기계를 빌려주는 농협인가 농협관련 기관인가 어딘가에 전화를 해 또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대화가 안되는지 거기 누구 바꾸라고 정확하게 이름과 직책까지 말하더니 그 사람에게 오늘까지 농기계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시장을 찾아가겠다고 협박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냐는, 메마른 상대방의 목소리에서 분명 이런 대화가 농가주와 처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농가주는 정말 시장을 찾아갔을까?
어쨌든 안녕. 농가주 바이바이.
위장이 좋지 않았다.
오늘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간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받은 돈을 가방에 넣고 사람들에게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정말 장 문제만 아니면 여기서 같이 일한 사람들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란하게 저녁을 먹고 싶었지만 당시 내 위장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바지에 똥을 지리기 바로 직전에 겨우 터미널 화장실에 도착했다. 거기서 40분을 내리 물똥을 쌌다.
큰일날 뻔 했다.
진짜, 진짜 큰일날 뻔 했다.
진짜로, 진짜로 큰일날 뻔 했다.
하마터면 바지에 똥 싼 여자가 될 뻔 했다.
땀 냄새가 없고 퇴비 냄새가 안나는 티셔츠와 첫 날 입고 온 청바지로 갈아 입고 고속버스를 탔다.
그 3명과 저녁을 먹지 못하고 헤어진 게 못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