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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Apr 06. 2023

폭식도 폭력이다.

영화 <더웨일> ★★★★


미리 고백하건대, 나는 폭식주의자다. 그리고 지금까지 폭식이 근사한 자기 위안이자 미식이라고만 생각한 폭식주의자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불법도 아니잖아.



나에게 폭식의 문제는 그래서 늘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였다. 인스턴트나 술, 과자같은 독성 가득한 음식이 아닌, 건강한 음식만 먹는다면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중도, 절제, 그게 무슨 상관이야? 이미 좋은 음식만 먹는다는 것 자체가 중도와 절제의 증거 아냐?



씹어 으깨서 오는 스트레스 해소, 채워지는 따뜻함과 그로 인해 움직이는 힘을 주는, 육체적 심리적 정신적으로 나를 응원해 주는 3박자가 고루 갖춰지는 것이 음식 아니면 또 무어가 있을까. 게다가 나는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는 사람이잖아. 그러니 좀 많이 먹으면 어때 싶었다.



그런데 결국 폭식은 폭력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자살과 같은 행위라는 것도.




<더웨일>을 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구원을 주구장창 외치는 <블랙 스완>과 <마더> 감독의 신작이라는 것. 또 하나는 오랜 시간 보이지 않았던 배우 브렌든 프레이저의 출연작이라는 것.



사실 나는 그동안 브렌든 프레이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모험과 탐험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미이라> 시리즈는 몇 번이고 본 영화였고, 21세기 인디아나 존스처럼 보였던 브렌든 프레이저를 이름도 모른채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영화관에서 보이지 않길래 수많은 잘생긴 헐리우드 배우들이 그렇듯 외모는 쇠하는데 연기는 받쳐주지 않아 그냥 그렇게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어떻게 <미이라>같은 영화만 찍던 배우가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지 하고 알아봤는데, 슬펐다. 지난 20년간 이 배우에게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이런 연기가 가능했구나. 라고 말하기에는 이 배우가 경험한 일들이 억울하다고 느껴졌다.  



영화 시작 5분만에 울었다.


그리고 내내 울었다.


사랑을 안해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기분이 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슬픔 끝에 자신에 대한 폭력으로 음식을 거부했다면, 나라도 그 반대로 나에게 음식을 쑤셔 넣었을 거라고 이해했다.


둘 모두 폭력이자 자살이다.



그러나 늘 구원을 이야기하는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답게, 죽음은 구원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1.

모비 딕 이야기가 좋았다.



나는 늘 고래를 쫓는 선장의 아집과 집착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작가가 길게 고래에 대한 설명을 늘어 놓았을 때 지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부분을, 영화에서는 늘 한탄만 하는 저자의 마음을 독자가 짜증나거나 귀찮아할까봐 미안해서 일부러 감정이 배제된 고래 설명으로 길게 이야기한 거라는 걸 말하자 마음이 누그러졌다.



2.

용서를 구하는 장면도 좋았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 아닌가. 오죽하면 이동진 평론가는 죄책감은 고귀한 인간만 느끼는 거라고 했을까. 물론 모든 일들은 양쪽 모두에게 들어봐야 한다고 하지만, 분명히 가해자의 퍼센테지가 더 높은 일들이 있지 않나. 주관적으로 상대적으로 보지 않아도 객관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있지 않나. 돌이켜보면, 나는 내 인생에서 나에게 돌아와 미안하다고 말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자신의 딸에게 미안해. 그때 너를 두고 가는 게 아니었는데. 그때 너를 버리는 게 아니었는데. 정말 미안해. 라고 말하는 장면이 좋았다. 대신 사과받은 기분이었다.


...문득. '브렌든, 당신에게 그런 일들이 있었으니 지금 이런 연기도 할 수 있고 오스카 남우주연상도 타는 배우가 될 수 있었잖아요'라는 말을 하고 싶다가-  만약 신이 나타나 지금의 연기력과 지난 20년간 있었던 일을 바꿀 수 있다면 바꿀래, 라고 묻는다면 브렌든 프레이저가 무슨 말을 할까 상상해 봤다.  



3.

역시 이번 작품도 구원이 있었다.



폭식을 통한 죽음으로 인한 구원. <블랙 스완> 때도, <마더> 때도 친절하지 않았지만 이 작품 역시 구원을 말한다. 늘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나의 구원은 오직 나만 이룰 수 있다. 아무도 오지 않아.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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