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인 Apr 13. 2023

SF 작가가 되고 싶어?

책 <SF 작가입니다>

이동진 평론가의 추천 도서 500권 중 배명훈 작가의 <신의 궤도>가 있어서 읽다가 그만 반해버려서- 시중에 구할 수 있는 책들은 다 찾아 읽었다. 평소 SF를 좋아하는데다가 이동진이 추천하는 한국 SF는 처음이고 (그리고 민망하고 부끄럽고 신기하게도 태어나서 단 한번도) 한국 SF 작품은 읽은 적이 없어서 찾아 읽다가 - 팬이 되고 말았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역시 <신의 궤도>.

그 다음은 <은닉>.

세 번째는 <타워>.

네 번째는 <고고심령학자>,

다섯번째는 <첫숨>.



가장 좋았던 단편은 <초록 연필>.

그 다음은 <수요 곡선의 수호자>.

세 번째는 <총통각하>.



작가는 자신의 단편 중 <안녕, 인공 존재!>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데 나의 최고 단편은 <초록 연필>이었다. 평소 그냥 마구 사라지는 필기구들의 최종 종착지가 결국 그 조직의 최고 권력자라는 아이디어가 신선했다. 게다가 그렇게 의미없어 보이는 방식으로 한 곳에 모인 초록 연필들로 세상을 구하고 나아가 세상을 지키게 된다는 이야기가 뭐랄까.. 아름다웠어. 응. 더군다나 그러한 특성의 초록 연필들을 만든 사람이 처음에는 천재 중의 천재라며 메시아라고 칭송받아지다가 소년의 단 하나 아주 작은 실수로 사람들에게 외면 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죽을 때까지 겸허하게 세상을 구할 초록 연필들을 만들고 사라졌다는 설정도 좋았고.



아 그리고 사진에는 안 나오지만 배명훈 작가가 참여한 앤솔로지는 다섯 권 읽었다. 

그 중 배명훈 작가 외 두번째로 관심이 가는 한국 SF 작가는 정소연이었다.



사족이지만 조금 난감(?)했던 작품은 최신작 <빙글빙글 우주군>이었다. 80페이지까지 읽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덮었는데, 작가가 기존의 집필 방식을 바꾼 첫 작품이라고 하더라. 게다가 이러한 집필 방식을 습득하기 위해 2년을 투자했다고 하는데... 우웅.



<SF 작가입니다>는 배명훈 작가의 유일 에세이집이다. 

2020년에 나왔다. 


...작가를 만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이 책과 <신의 궤도>에 사인을 받고 싶다.



나는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를 종종 소리꾼과 고수의 관계로 비유한다. (...)
좋은 편집자가 품질의 최저선을 보장해주기 때문. 


나에 대한 나의 월권이다.


작가란 다음 글을 쓸 계기가 충분히 모여 있는 사람이다.


작가에게는 작은 무대라도 독자와 교감하고 한 주기를 완성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 아예 돈이 오가지 않는 곳이 나을지도 모른다.


위선은 생각보다 비효율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잘 단련된 소설가는 이걸 어디다 쓰나 싶은 이상한 자원도 어떻게든 돈으로 바꿀 수 있다. 보통은 폐기 비용을 들여서 처리해야 할 나쁜 경험을 가지고도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공부를 그만두고 <타워>를 쓰기 전까지 2년 정도 회사에 다녔다. 어느 날 상사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 말은 나에게 아무 상처도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벌어지는 동안, 나는 그 장면을 언젠가 소설에 집어 넣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서술자 시점에서 구경하게 된 셈이다. 그날 나는 내가 전업 작가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일종의 특수 능력이다.  삶을 온전히 살아가지 않고, 어느 순간 한발 물러나서 삶의 한 겹을 살짝 떠내는 일.  


작가에게 환금은 위로다.

별 이상한 데서 위로를 받네 싶겠지만, 실제로 좋지 않은 일을 겪고 있는 동료 작가들을 위로하다가 "나중에 돈으로 바꾸세요"하는 말을 건넸을 때 그들이 보여 준 반응을 보면, 역시 작가들은 별 이상한 데서 위로를 받는 게 분명하다. 

농담처럼 가볍게 던진 말에 너무나 깊은 안도의 반응이 돌아온 것이다. 우리가 우리 삶으로부터 분리되어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위안거리다.


어떤 고난은 살아가며 극복해야 하고, 
어떤 괴로움은 삶으로부터 분리해서 뇌관을 제거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보다 더 나를 믿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