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일1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인 Apr 13. 2023

33. 소원

내 소원은 하와이 호놀룰루 마라톤.

* 이 글은 2020년 11월 1일날 쓴 글입니다.


그런데 난 아직도, 여전히, 무섭다. 

마라톤을 하겠다고 결심한 3년 전부터 내 소원은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뛰는 거였다. 




그 이유는 바로 이 대회는 완주 제한 시간이 없기 때문. 10초 이상 뛰지 못하는 내게 이보다 더 매력적이고 응원이 되는 마라톤은 없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비록 천천히라도 이제는 쉬지 않고 1시간을 뛸 수 있는 체력을 가지게 된 나는 여전히 호놀룰루 마라톤을 뛰지 못했고 나아가 42.195km 풀코스를 완주하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체력과 지구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달 국내 마라톤도 결국 돈만 내고 못 (혹은 안) 나갔던 걸 생각해보면 역시 이 모든 건 - 물론 근력 문제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마음과 정신의 문제가 컸다. 나는 너무나도 무섭다.




...글쎄. 




여전히 사람이 두려운 걸까. 스스로에게 계속 혼자 화이팅을 외치는데 이제는 지친걸까. 내 성실함이 누군가에게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반복에 결국 그냥 무너진걸까. 




기록을 보면 나는 이미 충분히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자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나는 시험 치르기 싫은 아이마냥 대회 당일날 뜬금없이 아프고 곧이어 바로 괜찮아지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화가 나기보다는 이제는 슬프고, 그리고 속상하다. 왜 내 곁에는 이렇게 아무도 없을까. 왜 내 곁에는 시간 남아 도니까 운동이나 한다는 사람들과, 러너스 하이를 언급하며 성적 쾌락을 묻는 사람들과, 마라톤을 뛰면 남자들이 싫어한다는 소리만 하는 사람들만 있는 걸까. 왜 나는 이런 기운빠지기만 하는, 성장이라고는 전혀없는 마모되고 소진되는 싸움을 계속 반복해야만 하는 걸까. 






호놀룰루 마라톤을 갈 수 있을까. 




책은 3년 전, 결심을 하던 그 때 이미 사 놓았다. 따뜻하고 바다가 보이고 긍정적이고 성실한 사람들과 42.195를 뛰고 싶다. 10시간 후에 들어와도, 하루가 지나 들어와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나를 웃으며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과 살고 싶다. 





사진은 접수하고 돈을 입금하고 나서도 뛰지 않았던, 못했던 많은 마라톤들의 일부분. 

매거진의 이전글 32. 나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