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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May 26. 2023

디즈니의 게으름이 부른 외모와 인종차별 주장들.

영화 <인어공주>

싫다고 말하면 왜 외모 비하에 인종 차별 주의자가 되는 건가요



만약 심청이를 백인이나 히스패닉, 흑인 배우가 연기한다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을까. 그 사람들의 주장을 모두 배우의 외모를 비하하는 외모지상주의자나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심청이가 살던 시절에 외국인도 조선에 있었다는 역사적 기록을 들이밀며 그래서 심청이가 혼혈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동양인이 아닌 다른 인종의 배우가 연기한다면 - 그리고 그게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모두 외모 비하에 인종 차별주의라는 레이블을 붙인다면 - 그게 과연 타당한 일일까.



작품 배역이 안 어울린다는 주장은 반드시 배우의 외모나 인종이 아닌, 오직 그 역할의 이미지와 관련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예시로 들 수 있다. 2005년 출판되어 전 세계적 메가 히트를 친 소설 <트와일라잇>이 영화화된다고 했을 때 뱀파이어 에드워드 역할로 로버트 패티슨이 언급되자 원작 팬들은 들고 일어섰다. 자신들이 상상한 에드워드와 패티슨이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 불만은 (다행히) 영화가 2008년에 개봉해 초대박을 치면서 사라졌지만, 배우가 원작과 같은 백인이고 잘생긴 외모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싫다고 말했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건 나쁜 것도 외모 비하도 인종 차별과도 관련 없다.



게으른 디즈니



'단순 인종 바꾸기'는 그냥 게으른거다. 정치적 올바름이나 인권 보호와 평등, 소수자 권익 보호와 아무 상관없다. 이번 <인어공주> 애리얼 배역은 주인공을 다른 인종으로 바꾸면 시대상을 반영하고 건강한 사회상과 사상을 만들어간다는, 더 이상 "남자의 구원을 기다리지 않는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을 보여주는 메시지와도 일치한다는 디즈니의 주장에 안타깝게도 부합하지 않는다. 디즈니는 시대상, 사회상, 다양성을 포용한다는 다소 어그러진 일념 하에 최근 게으른 결정을 계속 보여줬다. 내년에 개봉 예정인 <백설공주>도 분명 "흰 눈처럼 하얗고"라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백인이 아닌 히스패닉 배우를 백설공주로 캐스팅했다. 이쯤 되면 게으름이 도가 지나치다. 



만약 디즈니가 주장하는 것처럼 진정 다양성과 시대상을 반영하고 싶었다면 흑인들의 동화와 신화를 연구해 흑인 공주 이야기를 재창조하는 게 옳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게르만 혈통의 백인이라 받아들여진 고유의 캐릭터를 흑인으로 억지로 바꾸지 말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흑인들의 이야기를 연구해 디즈니 공주 중 하나인 <모아나>처럼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모아나>는 대성공을 하지 않았나! 만약 <모아나> 역에 동양인이나 백인이 나왔다면 어울렸을까? 




 돈이 아깝지 않은 마녀, 그리고 인어공주의 아빠


이 영화에서 돈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부분은 바로 마녀를 연기한 울슐라 멜리사 멕카시와 인어공주의 아빠 트라이튼 역의 하비에르 바르뎀이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던 시절에도 너무 많이 들어서 외워버린 "poor unfortunate souls"를 부르는 멕카시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전율이 흐르고, 사랑하는 딸을 인간으로 만들어 담담히 보내주는 아버지의 눈물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딸과 이별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괜히 대배우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DROLq73Bfc

https://www.youtube.com/watch?v=Gi58pN8W3hY



원작보다는 설득력 있는 인어공주와 왕자의 반하는 포인트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 하나를 더 덧붙이자면 바로 인어공주와 왕자가 서로에게 반하는 포인트가 원작보다(안데르센의 원작과 1989년도 디즈니의 원작 애니메이션 모두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다. 두 남녀의 이전 '반함 포인트'는 아무리 좋게 봐도 예쁘고 잘 생긴 외모와 불끈거리는 10대와 20대의 호르몬 작용 그 이상 그 이하로 보기 힘들었는데, 이번 영화는 그렇지 않다. 



2023년의 <인어공주>에서는 둘 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 한 명은 육지, 한 명은 바다 -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둘 다 세상을 구경하고 싶고, 더 많은 것을 공부하고 경험하고 싶고, 부모님이 반대하는 타문화와의 대화와 협력 관계에 반대를 외친다. 





그러나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할 말이 더 남아 있다. 이해가 안가고 설득력이 부족한 설정들이 몇 가지 변경되고 추가되었는데다가 세계적인 기업인 디즈니가 만들었다기에는 다소 아쉬운 미장센이 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하나. 바다 미장센

처음에는 심해라는 설정과 파도가 몰아치는 태풍 때문에 화면이 어두운 거라 생각했는데, 그 유명한 밝은 심해 장면의 "Under the Sea"가 나오자마자 <아바타 2>의 바다가 진실로 대단하고 디즈니 기술력과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게 보였다. 아무리 그 대단한 롭 마샬 감독이다 하더라도 그는 심해 장면을 촬영해 본 적 없다. 뮤지컬 영화 연출에 뛰어나도 바다 연출은 다른 분야더라. 



둘. 마녀 울슐라와 인어들의 왕 트라이튼의 남매 설정

영화에서는 마녀와 왕이 알고 보니 남매 사이였는데 권력전에서 몰아내져서 유배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울슐라가 에리얼에게 자꾸 난 네 고모란다~ 아빠가 고모에 대해서 좋은 말을 했을 리 없지~라고 하는데, 영화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꾀엥?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셋. 인어공주의 목소리가 사이렌의 저주? 

여기서는 신기하게도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사이렌이라고 정확하게 명명하며 '사이렌이 바다에서 노래를 불러 인간을 유혹해 죽인다'라는 신화 배경을 초반부터 언급한다. 이렇게 설정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인어공주의 목소리는 그리스 로마나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의 저주와는 다른, 오직 노래를 잘해서 인간뿐만 아니라 같은 인어들도 좋아하는 것으로 설정된 걸로 아는데... 왜 갑자기 사이렌으로 정체성을 규정해버린거지? 인간들이 인어에 대해 오해가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건가? 



넷. 마녀의 저주 변경 - 기억 안나게 하는 건 또 뭡니까

이해가 어려웠던 부분은 또 하나. 바로 3일 안에 왕자와 "그냥 키스도 아니고 진정한 사랑의 키스"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 마법의 계약을 잊게 만든다. 다행히(!) 마법이 걸리는 자리에 세바스찬과 플라운더가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을 말해주려고 하지만, 세바스찬이 "공주님 공주님, 기억하시죠 키스 3일 안에 키스 해야한다는 거????"라고 말하려고 하면 에리얼은 갑자기 하픔을 하고 자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세바스찬은 바로(????) 에리얼이 계약을 잊는 마법까지 함께 걸렸다는 걸 알게 된다. ...뭐지.



다섯. 흑인 여왕과 입양된 왕자,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

...설마 백인 왕자가 입양아였을 줄이야. 그리고 어머니가 흑인일 줄이야 그리고 아버지가 안 계실 줄이야. 어머니가 없는 에리얼, 너무나도 좋은 어머니가 계시지만 아버지와 친부모는 없는 왕자. 비슷한 상처를 지닌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치유한다는데, 설마 이 설정이 그 용도로 이용될 줄이야. 



다섯. 안데르센이 언급했던 인어의 눈물 대사 인용 - 대체 왜..?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안데르센이 인어의 눈물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을 활자로 진하게 표기한다. "인어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때문에 더 고통받는단다". 그리고 마지막에 유일하게 눈물을 흘리는 인어로는 에리얼의 아버지 트라이튼이 나온다. (영화 초반 저 문장때문에 에리얼이 언제 우는지 유심하게 봤는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없었다. 혹 있으면 알려주세요) ...대체 저 문장이 왜 인용된 건지 모르겠다. 



여섯. 불쾌한 골짜기의 늪 -생선 플라운더, 게 세바스찬, 새 스커틀

이건 예전 <라이언킹> 실사화 때도 느꼈던 건데 - 플라운더와 세바스찬, 스커틀이 귀엽고 친구하고 싶은 게 아니라 무섭고 (조금은) 징그럽다. 애니메이션만이 주는 풍부한 표정이 연출되지 않아서 보는 내내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그 반대가 되니 그 흥겹다는 "Under the Sea"를 불러도 관객은 괴로울 뿐이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왕자와 모험을 떠나는 인어공주


                                                                                                                 

2023년 <인어공주>의 마지막은 1837년처럼 물거품이 되지도, 1989년처럼 결혼식으로 끝을 맺지 않는다. 사랑과 모험심에 가득한 두 사람은 바로 부모가 그토록 반대했지만 이제는 이해하고 지지하는, '다른 세계를 만나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맺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이 부분은 분명 트라이튼의 7대양의 인어공주 딸들보다, 다인종 인어들과 인간들의 모습보다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크고, 긍정적인 시대 반영이라 생각된다. 



아울러 공주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경청은 사랑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라 하지 않는가. 여기는 복종의 뜻이 아닌 관심과 애정, 응원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아쉽다. 이런 메세지를 가지고 2023년의 인어공주를 보여주고 싶었더라면 굳이 에리얼을 흑인으로 바꾸거나 입양된 왕자에 흑인 여왕을 내세울 필요는 더더욱 없을 것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2024년의 백설공주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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