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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Jun 02. 2023

112. 뇌전증

비상 문자 사태에 대한 소고.

감정을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하다가 어느 순간, 아 이 사람들은 그냥 간질에 걸렸구나 라며 모든 상황과 마음을 정리했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고 너무나도 잘 지내고 싶어서 이해가지 않은 현실이 슬프고 괴로웠다. 우리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모두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바뀌면 다 바뀔 것이라는 안이 하면서도 건방진 생각을 했었다. 내가 잘나면 내가 예쁘면 내가 싹싹하고 몸매가 좋고 좋은 학교를 나오고 멋진 직장에 다니며 돈을 많이 벌고 어딜 가도 대접받는 사람이 되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면 그 관계들이 다 잘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세상이 그리 만만하나. 나는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낭비했다. 내가 언젠가 내가 시간을 함부로 낭비하여 살았다고 한 적이 있다는 건 이런 뜻이다.  


세상에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왜 이 상황에서 나에게 저런 말을 하고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저런 행동을 하는지, 정말이지 이해하고 싶어서 심리적 의학적 종교적 철학적으로 열심히 공부도 해 봤다. 아부도 떨고 애교도 부리고, 상대방에게 무작정 맞추어주기도 했다. 같이 소리도 지르고 읍소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수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쓰고 나서야 알았다. 아 이건 내 탓이 아니구나. 그리고 간질에 걸린 당신들 탓도 아니구나. 발작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건 당신들 탓이 아니지. 그러니 나는 더 이상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나를 증명할 필요도 없고.



같은 500미리 생수가 어디서는 250원, 어디서는 1000원, 어디서는 3000원에 팔린다. 물이 문제가 아니었다. 장소가 문제였지.







아 뜬금없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나마 저런 시절을 겪어서 좋은 점도 있다는 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어제 비상 문자에 난리 난 사람들을 보면서 - 그래도 저런 시간들이 있다 보니 좋은 점으로 희한한 쪽으로 멘탈이 강해지는 부작용(?)이 생겨서, 비상사태에 다른 사람들처럼 패닉 상태에 빠지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런 비슷한 비상사태에서 난 항상 다치지도 않고 잘 살아남았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피해 잘 대피했고, 그래, 항상 그랬다. 머리가 아주 차분해진다. 



시간과 돈과 에너지 낭비인 일은 없다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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