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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티 내음

미술관 소풍 - 1

by 허브티

예술의 전당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23년 봄날, 친구와 전철을 타고 남부터미널역으로 향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 가기 위하여서다.

뮤지컬과 오케스트라공연을 관람하러 간 적은 있지만 그림 전시를 보러 가기는 처음이다. 동행한 친구는 교회에서 만나 친하게 교제하며 우정을 쌓았고 몇 년 전부터 나의 문화생활 단짝이 되었다. 연극, 영화를 보러 가고 서점, 박물관, 작품 전시장에 함께 다닌다. 도서관 프로그램, 평생학습관 프로그램 정보도 공유하여 함께 수강하는 사이다.

집사님, 권사님으로 부르던 만남이 지금은 직분도 이름도 아니라 서로가 원하는 특별한 애칭으로 부르고 있다. 나는 허브차를 좋아하여 ‘허브’, 친구는 코스모스를 좋아하여 ‘코모’다.


1년 전 봄.

시립 도서관에서 문화 행사로 ‘그림책이 좋아서: 내가 만드는 그림책’ 1관 1단 사업을 진행하였다. 내가 그림책에 대하여 잘 알거나 살갑게 가까이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그림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여 단순하고도 용감하게 수강 신청을 하였다. 10명의 수강 동기와 예비 작가가 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완성해 내었다.

무시로 그리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창작의 고뇌를 맛보며 봄부터 가을까지 나름 작가의 삶을 살아 보았다.

그런 계기로 그림책이란, 그림과 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전 세대가 공감하고 감동을 누릴 수 있는 매력적인 매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림책의 무궁무진한 세계에 대하여 더 많이 알고 싶고 점점 더 애착이 생겨났다.

때마침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22’를 발견하였다. 전 세계 출판사와 멀티미디어 업체가 참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도서전이고 56회를 맞는 역사 깊은 전시회다. 우리나라 작가도 10점의 작품이 선정되었단다.


남부터미널역에 내려서 버스 환승도 좋으나 상큼 초록 봄이 예쁘니 걸어서 가기로 하였다. 예술의 전당이 대한민국 예술 1번지라는 이름에 맞게 큰 규모에 시원시원한 동선이 눈에 들었다. 거기다 선비의 갓을 본뜬 오페라 하우스와 부채를 형상화했다는 음악당은 한국적인 미를 보여 준다고 한다. 건물의 외형미도 멋지지만, 예술적 감흥과 감상을 충족하기 위하여 모여든 각양각색 사람들의 여유로운 표정이 더 좋아 보였다. 가족끼리 문화적인 시간을 함께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에도 웃음 지어졌다.


드디어 입장.

한 작품, 한 작품 나에게 다가오는 첫 느낌을 즐기고 나서 작가의 작품 이야기를 읽었다. 아하! 작가의 의도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독창적이고도 일상적인 소재를 기발하게 이야기를 담아 풀어낸 작가에게 감탄하였다. 물론, 무슨 뜻일까?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였다.

색채가 강렬하여 눈에 번쩍 드는 그림, 단순 명료한 그림, 아기자기한 그림들이 있다.

환경 문제를 다룬 내용, 정감 있는 따스한 내용, 가슴 찡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코모와 나는 감탄의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에 푹 빠졌다.

이곳에서 내가 앞으로 주욱 좋아할 작가를 만났다. 바로 ‘조안 리우’.

원화로는 ‘잠자는 무지개’라는 작품을 전시하였고 그림책으로는 ‘나의 도시’가 비치되어 있다. 내가 닮고 싶은 그림체를 가진 분이다. 그림 선을 생략할 것은 생략하고 단순하면서도 담을 것은 다 담고 밝은 색감으로 호감이 가서 한참을 보고 또 보게 만든다. 샅샅이 전시장을 돌고 그래도 아쉬워서 빠르게 또 돌아보고 나왔다.

기념품 판매장에서도 내 눈에 얼른 드는 ‘조안 리우’의 수첩과 파일 표지를 사고 다른 작가의 귀여운 책갈피도 샀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으나 다른 전시물도 보고 싶은 마음에 배고픔을 꾹 눌러 참았다. 서예 대전, 한국화 전, 보타닉 전, 빌라다르 전까지 싹 관람하였다.

이만하면 오늘의 예술의 전당 소풍을 충분히 누렸으니 흡족하다.


장시간을 서고 걸었더니 진짜 허기가 져서 식당을 찾으러 갔다.

어떤 메뉴로 어느 식당으로 갈까 찾는 중에 거의 저녁과 가까운 시간이다 보니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는 식당과 불을 밝힌 맥줏집과 주점들이 늘어 갔다. 부대찌개 집이 적당해 보여 그리 들어갔다. 하지만 실망하고 말았다. 냄비에 국물이 너무 많아서 한강이다. 역시 깊은 맛이 나지 않는다. 더 끓인다고 해도 짜기만 할 것 같다. 휘휘 건더기만 건져 먹은 셈이다. 아쉽게도 오늘의 식사 선택은 실패다.


다시 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 나와 코모는 눈과 가슴에 가득히 담아 온 서정적 여운에 감사하며 다음에 꼭 또 가자며 헤어졌다.

매일 쓰는 그림 일기장을 꺼내 펼쳤다.

마음에 남은 그림과 기록해야 할 장면이 하도 많아 뭘 그릴지 고르느라 시간이 걸렸다. 역시 인상 깊은 ‘조안 리우’의 그림을 어쭙잖게 그려보고 비슷하게 색칠하였다.

‘알찬 전시, 알찬 감상, 알찬 오늘’. 이렇게 쓰고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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