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매일 만지는 사물 - 색연필
4년 전 가을에 읽은 도서의 저가가 '하루에 이것만은 꼭 하기 다섯 가지'를 정하여 실천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그중 한 가지 그림일기 쓰기가 있다.
그래? 나도 이것은 할 수 있겠다 하고,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오늘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쓰고 있다.
물론 오늘 내가 무얼 했는지, 지금 나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를 그림으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남에게 보일 것도 아니요, 평가받을 것도 아니기에 그냥 내 식으로, 애쓰지 않고 쓱쓱 그려 왔다. 하다 보니 그려야 할 사물과 상황에 관찰력이 늘어가고 날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A5 크기 일기장은 현재 NO-11까지 숫자를 매긴 기록물로서 나의 소중한 재산이다.
친근하고 익숙한 그림 도구로는 색연필이 가장 만만하였다.
두 딸이 학교 다닐 적에 사용하던 연필을 찾아 칼로 깎아가며 요래 요래 끼적이 하듯 그리기 시작하였다. 만 3년이라는 날들을 거치면서 색연필도 진화하였다.
이제는 딸들이 쓰던 것이 아닌, ‘내 것’이라는 어엿한 타이틀을 가진 질 좋은 색연필이 내 책상에 떡하니 놓여있다. 작은 딸이 매일 색연필을 쓰는 엄마를 위해 120개짜리 색연필을 깜짝 선물해 주었다. 거기다 나도 나에게 선물하고 싶어 150개짜리 색연필을 마련하였다.
또한, 종이 깔고 대충 칼로 깎으니 울퉁불퉁한 몸뚱이에다 이리저리 튄 제 살들로 민망해하던 색연필 녀석들이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선물한 자동 연필깎이 등장에 매끈해진 몸매로 변신하여 자신 있게 뽐내듯 ‘톡’ 맵시 좋게 올라오니 신문물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모두 270개의 색연필이 오뚝 서서 날마다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어떤 색깔을 써볼까? 내 감성을 따라 색연필을 고르는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음. 좀 더 딱 맞게 표현하고 싶은데 색감이 없구먼. 뭔가 아쉽고 부족해. 색연필이 더 있어야 하나?’
한편으로는 ‘아니야 욕심내지 마. 실력이 부족하니 장비를 탓하는 거지’ 하는 두 마음이 매일 실랑이를 하고 있다.
어디, 어떤 마음이 더 큰 소리를 내는지 지켜보는 재미를 누려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