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허브티 내음

미술관 소풍 - 2

by 허브티

더현대서울: ART. 1 – 라울 뒤피전

2023년 더운 날 ‘문화생활 단짝’ 코모와 여의나루역으로 향했다.

이번엔 더현대서울: ART. 1 미술관에 가려고.

지난번 예술의 전당 안 상점에서 눈여겨보았던 ‘그림이 있어 괜찮은 하루’라는 도서가 계속 궁금하고 아른거려 결국 구입하였다. 그림 에세이라고 할까 내겐 처음 접하는 장르라서 흥미진진하여 읽는데 ‘라울 뒤피’라는 화가의 그림을 소개한다.

오! 색감이 무척 밝고 화사하여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날로 마음에 저장.

무심히 그림 전시회 정보를 검색하는데 어라! 라울 뒤피전을 한단다. 그것도 동시에 두 곳에서. 어느 전시장으로 갈까 즐거운 고민을 하다가 예술의 전당은 최근에 다녀왔으니 다른 곳으로 가리라 마음먹었다. 쾌재를 부르며 성인 2명 예매를 하였다. 당연히 내 단짝도 좋아하리라 믿으며.


“어제는 퇴근한 아들이 힘들었다는 얘기 들어주느라 내 할 일을 못 했어.”

“마트에서 하필 양파랑 두부랑 계란이랑 무거운 것만 사느라 어휴 팔 아팠어.”

“고양이 털 때문에 집 안 청소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오히려 더 하기 싫어.”

“시댁 결혼식이 있어 멀리 다녀와야 해.”

코모와 전철 안에서 시시콜콜 살아가는 일상을 나누다 보니 그만 여의나루역을 지나치고 말았다. 이런 해프닝을 겪으며 전시장이 있는 더현대 백화점에 도착하였다.

‘볼로냐 일러스트’ 전시회 때 장시간 감상에 몰두하여 허기지도록 배고팠던 기억을 떠올리며 입장 전에 편의점 커피를 사서 마시며 우선 카페인으로 에너지를 충전하였다.


첫 작품으로 라울 뒤피의 자화상이 우릴 맞아 주었다. 젊은 날 자화상이라 그런지 볼살이 없고 얼굴선이 날렵하니 살짝 까칠해 보이는 인상이다.

“자, 이곳 벽을 따라 죽 죽 가시오. 나의 다양한 작품이 있으니 어서 나를 느끼고 감탄해 보시오”.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다.

뒤피는 1877년 프랑스 태생으로 독특하게 여러 미술 장르를 넘나드는 영감과 재능을 가진 예술가다. 인상주의, 야수파, 입체주의 그림들로 그의 예술세계가 광대하다.

거기다 패션, 섬유 직물, 벽지, 타일, 도예, 장식물 작품까지 있다니 놀랍다. 한 사람에게 이리 많은 재능을 몰아주어도 되는가요? 묻고 싶다. 그리고 뒤피 손 한번 잡아보고 싶다.

자세히 작품을 들여다보면 사람이든 나무든 동물이든 윤곽이 고정되거나 정확하지 않다. 흐늘흐늘해 보이는 선들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자유롭게 리드미컬하게 느껴지고 특유의 생동감에 쏙 빠져든다. 색채는 또 어떤가. 일단 내 눈에 든 초록, 파랑, 주황, 옥색들이 어찌나 경쾌한지 마음도 맑아지고 온화해진다.

여기에서도 나를 뭉클하게 하는 작품을 만났다.

‘에스타크의 아치’(1908 입체파 시기)

완만한 아치 곡선에 편안해지고 왼편 초록 물감의 갈라짐이 내 안의 무언가를 툭 건드려 주어 눈물까지 핑 돌았다.

전시장 마지막 작품으로 ‘전기 요정’ 벽화가 있다. 부분 부분 따로 그려 이은 대형 벽화로 최고의 걸작이라고 한다. 이렇게 완성하기 전 뒤피가 습작으로 그린 것까지 함께 전시하니 얼마나 애썼을까? 정감이 든다. 이곳에서만 촬영이 허락되어 사람들이 너도나도 카메라로 휴대전화로 촬영하느라 북적인다. 나도 찰칵찰칵.

오늘도 감상 충만함을 안고 더현대서울: ART. 1 소풍을 즐겁게 잘 다녀왔다.


나이 들면서 나만의 시간과 관심사가 늘어간다.

나에게 집중하며 취미를 즐길 수 있고 함께 할 친구가 있어서 감사하다.

성숙한 내면을 지닌 풍성한 노년을 살아가는 행복한 ‘더 나이 든 나’를 상상해 본다.

다음엔 어떤 전시를 보러 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허브티 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