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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티 내음

아파트 단지 테이블

by 허브티

내 직장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가정 어린이집이다.

오후에 버스로 통근하며 도로 사정에 따라 버스에 타고 내리는 시각이 날마다 조금씩 다르다.

더욱이 나의 버스는 노선도 길고 배차 간격이 크다 보니 더 들쑥날쑥하다. 이번 버스를 타면 너무 일찍 도착하고 다음 버스를 타자니 출근 시간이 빠듯하여 마음 졸이는 것이 싫어 늘 앞선 버스를 타곤 한다. 아파트 앞에서 내리면 단지 안의 분수대 주변 동그란 나무 테이블과 의자 있는 곳으로 간다. 남는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서 가지고 다니는 책을 읽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시간 맞춰 어린이집으로 들어간다.

그 테이블들엔 누군가가 앉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을 때가 허다하다.

아이스크림을 먹다 녹아 흘린 자국, 컵라면 먹다 튄 국물 자국, 과자 부스러기 등 음식물 내용을 훤히 알 수 있다. 하교 후 학원 차를 기다리며 거기서 초등학생들이 틈새 간식을 먹는 장면을 익히 보아 온지라 좀 흘리지 말고, 조심하여 먹으면 좋을 텐데 하며 가방을 올려놓고 책을 펼칠 깨끗한 곳을 찾아 앉는다.


지난여름부터 어린이집 퇴근 직후 운동할 요량으로 어린이집과 제일 가까운 운동 시설에 다니고 있다.

오늘은 오전에 별다른 일정이 없어 출근 전 시간으로 운동 예약을 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어린이집 단지를 통과하여 걸어가는데, 새로운 풍경을 목격하였다.

나무 테이블마다 장년 남성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점심을 드시는 것이다.

아, 요새 한창 단지 내 수목 조경공사가 진행 중이더니 바로 공사 담당자들이시구나.

"밥 더 드실 분 계셔요? 아니, 밥은 됐고 국물 더 있어요?"

두런두런 이야기가 오가며 참 맛있게도 드신다.


그렇구나. 이 테이블들이 남는 시간을 보내러, 그늘이 필요하여, 군것질거리를 먹으려고, 책을 읽거나 휴대전화를 하기 위하여 쓰이기도 하지만, 땀 흘리는 노동 중에 식사하시는 가장들의 끼니를 위하여서도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구나.

그래. 이제부턴 뭐가 묻어 있다고 투덜대고 불평하지 말아야겠다.

하루치 노동 중의 배부름과 잠깐의 쉼에 기여하는 테이블들에 고마워하는 이용자가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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