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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티 내음

초라한 거짓말

by 허브티

남편이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고, 내 월급으로만 빡빡하게 살던 오래시절.


가깝게 지내는 직장 동료가 있었다.

그녀는 살림만 하다가 애들이 어느 정도 커가니 시간이 남아 일을 하는 여유로운 사람이다. 예쁜 옷 입고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며 월급으로 가족들과 여행 가고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려고 직장 다니는, 나와는 목적이 완전 다른 직장인이다.


전 직원 여름휴가 중이었다.

그녀는 나랑 당일 여행을 하고 싶다며 날은 서로 정하지 않았지만, 자기가 장소를 정하여 연락할 테니 우리 집 앞으로 차를 가져오마 하였다.

집에 가만히 있어도 너무 더운 날.

땀을 줄줄 흘리며 정말 연락이 올까? 아니야. 그냥 하는 소리겠지? 이생각저생각 하는 차에 진짜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같이 가고는 싶지만 그녀가 운전하는 차량에 편하게 가는데 기름값은 내가 내야 면이 서고, 먹는 음식 비용도 만만치 않을 텐데 형편에 척척 기분 내며 돈 쓸 처지가 아니잖아... 연이어 울려대는 벨소리에 더해지는 나의 갈등. 결국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날 일부러 내 딸의 휴대폰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하였다.

" 나 지금 애들이랑 친정에 와 있어. 글쎄 너무 더워서 정신이 없었는지 휴대폰을 그만 집에 두고 나왔지 뭐야. 어젯밤 남편이 늦게 퇴근해서 내 휴대폰을 발견하고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있다고 알려줘서 우리 딸 휴대폰으로 전화하는 거야. 어제는 너무 늦은 밤이라 전화 못했고 오늘에야 하네. 그리고 친정엄마가 이왕에 왔으니 더 있으라고 해서 아무래도 이번 휴가는 여기서 다 보낼 것 같아. 정말 미안해. "

초라한 거짓말을 하였다.


그녀와는 지금까지도 서로 안부를 묻고 친분을 계속 잘 유지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현재는 내 상황이 그 시절과 많이 달라졌으니 언제든 마음 편하게 만나고 그녀와 맛난 것 먹고, 구경도 다니곤 한다.

이제는 연락을 피하거나 거짓말할 일 없으니 지금이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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