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사거리. 나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버스 정류장이 하나 보였다. 버스 한 대가 이미 정류장에 정차해 있었고, 신호가 바뀌면 곧 출발할 기세였다. 언제부턴가 내게 버스는 정류장을 위해 달리는 차로 느껴지지 않았다. 정류장을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출발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도로에 멈춰서 있는 버스를 볼 때면 마치 장전된 총알처럼 긴장한 채 서 있는 경주마처럼 느껴졌다.
그때, 한 중년여성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정류장에서 약 10m 떨어진 곳에서 그녀는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느껴지는 불편해 보이는 걸음걸이. 그녀는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듯 보였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녀의 몸은 오른쪽으로 쏠리며 무너질 듯 휘청거렸다. 거동이 불편한 그녀는 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를 향해 쫓기듯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무엇이 그녀의 걸음을 그토록 재촉하고 있었을까?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그녀의 조급함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마음은 어디서부터 온 걸까? 그녀의 조급함의 이면엔 단순히 시간문제가 아닌 더 깊은 불안이 들어있었을 수도 있다. 이대로 뒤처지면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회의 속도에 무조 맞춰가야만 한다는 불안감.
문득 난 정류장 바로 앞에서 버스를 놓쳤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사람의 마음은 참 묘해서 당연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는 일을 못 하게 되면 쉽게 자신을 탓하게 된다. ‘한참을 기다려야 하네.’ ‘시간 낭비야, 조금만 서둘렀으면...’ ‘카페에서 일찍 나올걸’ ‘아까 건널목 신호에 걸리지만 않았으면’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면, 어느새 자기 비하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특히나 마음이 물을 머금고 오래된 종이컵처럼 같을 때, 흐물흐물 해져서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마음일 땐 더욱 그렇다.
취준생 시절, 마치 난 버스를 놓친 사람처럼, 늘 조급했고, 자책했다. 남들 다 하는 취업을 왜 못할까. 다들 토익 800점이 기본이라는데 나는 왜 안 되는 걸까. 왜 면접조차 가지 못하는 걸까. 나에게 기회가 안 오는 걸까? 아니면 애당초 주어지지 않는 걸까?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자책은 깊어졌다. ‘조금만 더 열심히 했다면..’ ‘좀 더 서둘렀다면,‘ 이 모든 책망 들은 나를 한없이 작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우리 사회는 마치 거대한 버스와도 같다. 정해진 경로대로 움직이며, 지정된 시간에 도착해서,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려야만 탈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는 세계. 누군가는 손쉽게 올라타고, 누군가는 아슬아슬 간신히 타기도 한다. 한발 늦은 누군가 들은 문을 닫고 출발하는 버스를 보며 망연자실하게 서 있기도 한다. 조금만 늦었다는 이유로, 조금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탈 자격이 없다는 듯 문을 닫아버리는 세계. 그 안엔 ‘느린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 좌절 대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건 어떨까. 조금 늦어도 괜찮아. 버스를 놓쳐도 괜찮아. ‘되는 게 하나도 없어.’라고 생각이 들 때는 다음 버스가 그저 조금 늦게 올뿐이라는 걸 떠올려보자. 그리고 주변에 바라본다. 버스를 대신 잡아주는 사람, 문을 열고 기다려주시는 기사님. 이런 따뜻한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다음번엔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버스를 타러 갈 수 있지 않을까.
이윽고 내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다. 난 서둘러 출발했다. 결국 그녀가 그 버스를 탔는지는 확인하지 못한 채 사거리를 벗어났다. 집으로 오는 길. 난 그녀를 떠올리며, 조용히 상상해 봤다. 어렵게 버스에 올라탄 그녀가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삑’ 하고 찍는 순간, 마음씨 좋은 기사님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그렇게 달려오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오시는 거 보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손님 두고 가는 일은 없어요.” 그 한마디 말이 그녀의 오늘 하루를, 아니면 지난 나날들과 앞으로의 나날들을 조금은 덜 무겁게 해 주기를.
사람을 귀히 여기는 사회, 누구 하나 두고 가지 않는 사회. ‘느린 사람들’을 기다려주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함께 타야 할 진짜 버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