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교 적응기

담임수당은 못 받지만 전담이 좋아

by 당신과지금여기에

#과학전담


새 학교로 옮기고 5학년 과학전담을 맡았다. 그동안 전담을 하고 싶었지만 부장을 해야만 전담을 할 수 있는 학교만 다녔기 때문에, 과연 말로만 듣던 전담이 어떤 것일지 기대가 컸었더랬다. (첫 발령을 받은 시골학교에서의 3, 4학년 과학전담 1년은 제외하자 -_-) 내가 생각했던 과학 전담은 과학실에 상주하며 여유롭게 수업준비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곳은 학급수가 많은 학교라 과학전담만 4명이었다. 따라서 일주일에 3번 있는 과학 수업을 교실과 과학실에서 번갈아 가며 사용해야 했다. 그렇다면 내가 상주할 곳은 어디란 말인가?


그곳은 4층 전담실이라고 했다. 원래는 다른 용도의 넓은 교실인데 지금은 전담 5명과 보결전담 1명, 그리고 돌봄 겸용 교실을 사용하시는 1학년 선생님들이 수업 끝나고 올라와 계신다고 했다. 교실의 가운데에는 전담선생님들과 1학년 선생님들 사이를 구분하는 느낌으로 큰 장롱? 이 가로놓여져 있었다. 그런데 6명이 모여 일하는 책상에 파티션은 없었다.


5학년 과학을 맡았고 7반을 들어간다. 자고로 주당 21시간 수업. 업무가 하나도 없다면 진짜 괜찮은데 업무가 조금 있어서 약간 신경 쓰이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일주일에 3시간만 수업준비해도 되니까 : ) 한번 수업 준비한걸 7번이나 써먹을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다! 그리고 첫 수업은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뭔가 어설프지만 갈수록 수업이 매끈해지고 시간이 남는다. 나 같은 경우에는 끝반이라고 항상 수업이 제일 좋은 건 아니었다. 7번까지 똑같은 수업을 하니 나도 지겨워져서 마지막 반은 감흥이 살짝 떨어진다. 딱 4번째 반복했을 때까지 수업의 질이 올라가다가 다시 하락한다. 따라서 첫반은 항상 실험의 대상이 됨으로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선생님의 첫 수업의 떨림을 공유한다는 장점도 있다.


다행히 5학년 아이들은 착하고 귀여웠다. (하... 아직 3월인걸... 입조심해야지. 항상 3월에는 천사였지.) 3,4학년때는 과학실에 와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비커에 물만 담아도 좋아서 입이 벌어지고, 알코올램프에 불이라도 붙일라 치면 "역시 과학선생님!"이라며 엄지 척을 해주는 귀여운 녀석들.


(딴소리 : 라떼는 알코올램프 끌 때 검은색 뚜껑으로 덮었는데 요즘은 아래 사진과 같은 종모양 메탈스틱을 쓰고 있었다. 진짜 종소리가 나서 계속 흔들고 싶게 생겼기에 불을 끌 때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교사책상에 두는 게 이롭다.)

촛불소화기.png



# 파티션 투쟁


업무분장표를 여기다 올릴 수는 없겠지만 62 학급의 대형 학교에서 담임들에게 업무를 무배정하기 위해서 부장들과 전담교사들이 업무를 다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학교 사정이니 넘어가지만 교무실과 행정실에는 떡하니 있는 파티션이 전담실에 존재하지 않기에 의문이 들었다. 왜 파티션이 없지? 그 자리가 영원히 내 자리도 아니고 파티션이 있든 없든 휴지통이 있든 없든 1년 동안 잘 버티다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자의로 각성한(?) 나는 요구해 보기로 했다.

전담실에 파티션을 설치해 달라.



누구에게 말해야 할까?


돈 쓰는 건 행정실이다.


행정실장님에게 말해야 한다.


새 학교 오자마자, 학기도 시작하기 전인 2월 말.

쭈뼛쭈뼛. 하지만 워크숍 때 무려 사행시를 낭송한 깡으로 행정실 문을 힘차게 열였다.

안녕하세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


그런데 행정실장님이 안 계시단다.


그럴 줄 알고 포스트잇에 적어왔지요. 파티션이랑, 냉난방기 바람막이, 큰 쓰레기통까지 야심 차게 주문해 봤는데 주무관님이 보시더니 이런 거 행정실장님이 안 좋아하신단다. 허허. 안 좋아하다니. 아.. 네 하고 돌아서려는데 불쌍해 보였는지 자기가 전달해 주겠다며 포스트잇을 전해받았다. 나는 얼른 인사하고 나왔지만 한번 더 와서 직접 말해야 한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며칠 뒤 봄 치고는 썰렁했던 어느 날, 행정실 문을 열자마자 실장님으로 추측되는 분이 열심히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긴장도가 max로 치닫고 다시 한번 "안녕하세요~"로 시작되는 파티션 타령을 시작했다. (이전의 나라면 절대로 누가 시켜도 못할 일이지만, 말했다.) 행정실장님은 잘생겼는데 불친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관이 100% 개입됨 : )) 교장선생님께 허락받았냐고 하길래 나도 모르게 네라고 거짓말이 튀어나왔다. (이제 교장선생님께 바로 가서 얘기하면 되니까,,,, 안 그래도 얘기할랬는데 나도 교장선생님도 너무 바빠서 만날 시간이 없었는걸 ㅠ) 하지만 돌아오면서 직감했다.


'아... 파티션 안 해주려나보다... 괜히 아침부터 기분만 나빠졌네. 나만 좋자고 파티션 얘기한 거 아닌데 괜히 유난 떠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실망감을 느꼈다. 하지만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스스로 어떤 시도를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나를 들뜨게 했다. 파티션은 세워지지 않았지만 옆 동료에게 내가 이런저런 노력을 해봤다는 무용담을 이야기할 수 있었고 이런 이야기들이 모여 다음번에는 좀 더 성공에 가까운 시도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파티션 이야기 나올 때마다 그날의 일을 복기하였지만 ^^)



그런데 어. 느. 날

주무관님으로 추정되는 어떤 분이 전담실에 찾아오셨다. 무슨 일이시냐고 물으니



파티션 실측하러 오셨단다!!!!!!!!!!!



꺄!!!! 소리 질러

sticker sticker

갑자기 행정실장님이 츤데레로 바뀌고 우리끼리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파티션이 생겼다.

(물론 기안올리고 설치까지 한 달여의 시간이 걸렸지만^^)





이럴 땐 잊지 말고 감사의 메시지를 날리자.

"감사합니다! 덕분에 업무효율이 200% 상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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