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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피셜
거짓말해도 지옥 안 가는 법

보편적 윤리와 거짓말의 극적 화해, <윤리형이상학정초>


만우절(萬愚節)


모두가 거짓말을 하는 날. 가벼운 장난이나 유쾌한 거짓말로 서로 즐기는 날이다. 그날이면 캠퍼스에는 대학생들이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돌아다 니고, 반대로 고등학생들은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학교에 가기도 한다. 많은 기업이나 단체들, 심지어 정부 기관까지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을 일부러 SNS에 올리면서, 흥겨운 하루를 보내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왜 만우절에 거짓말을 하면서 ‘즐거움’를 느끼는 것일까? 이상하지 않은가, 아직 근거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양심은 언제나 ‘거짓말은 악 한 행동’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악한 행동을 할 때, 쾌를 느끼는 비도덕적 존재인 것인가? 이 야릇한 쾌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에디터는 이 정체 모를 즐거움의 정체를 ‘배덕감’으로 밝혀보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단어 ‘배덕’은 도덕에 어그러지는 일을 말한다. 이때, 우리가 도덕에 어그러짐으로 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 우리가 악인이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법과 도덕의 지배 아래, 365일 - 사실 364일 - 내내 놓여있다. 그러니 어느 날 하루 정도는 도덕의 지 배로부터 다 같이 벗어나보는 것이다. 마치 하루 종일 꽉 끼는 옷을 입고 있다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벗어 버리면 느껴지는 상쾌함처럼, 일 년에 하루 정도는 ‘보편적 도덕 원칙’의 지배를 거부하고, 나쁜 짓 한번 저질러 보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거짓말이 ‘보편적’ 도덕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하는 것은 논쟁적이다. 보편적이라는 것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언제나, 또 어디서나 그러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거 짓말이 ‘보편적’으로 악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직관에 어긋난다. 예컨대 당신의 집에 숨은 절친한 친구를 죽이러 살인자가 당신의 문 앞에 찾아왔을 때, 우리는 그가 우 리 집에 오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분명한 양심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를 허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역사상 가 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인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어떤 경우에도, 언제든, 어디서든 거짓말을 절대로 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칸트가 살아 돌아온다면 아무리 만우절이라도, 오늘 당신이 거짓말을 했다면, 당신은 의무를 위반한 범죄자라는 비난을 듣게 될 것이다!


이러한 칸트의 도발적인 비난의 근거는 무엇일까? 칸트는 인간이 따라야 할 보편적 도덕 원리로써 ‘정언 명령’을 제시하였다. 칸트의 정언 명령은 아래 두 가지 형식에 따라 구체화되는데, 정언 명령의 형식을 줄여서 정식이라고 부르며, 각각 보편화 정식과 인간성 정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보편성 정식은 아래와 같다.

네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으레 철학자들이 그러하듯 어렵고 난해한 말투이지만, 그 의미는 외려 단순하다. 보편화 정식은 나의 의지, 즉 내가 행동하고자 하는 바가, 보편적 원리,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어도 괜찮겠는지 검토해 보라는 의미이다. 가령, 내가 살인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마음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사회를 생각했을 때, 이를 용인할 수 없다 면, 살인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인간성 정식은 아래와 같다.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을 항상 동시에 모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인간성 정식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인간성 정식은 사람을 단순히 수단으로만 대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조종해서 이익을 취하려 하는 것은 그 사람을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대우하는 것이지, 그 사람 자체를 목적으로 대우하는 일이 아니다. 이런 행위는 칸트 윤리학에서 절대 허용될 수 없다.


우선, 보편화 정식에 따라, 모든 사람이 언제나 마음대로 거짓말을 하는 세상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아무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며, 아무런 계약도 약속도 지켜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인간성 정식을 적용해 보자.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상대가 사실과 관계없이, 나의 의도대로 생각하고, 움직이도록 상대를 조종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두 가지 논거에 의하여, 거짓말은 보편적 도덕 원리에 어긋난다고 칸트는 주장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앞서 우리가 예로 든 살인자의 사례를 검토해 보면 흥미롭다.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내 친구를 죽이려는 살인자가 내 집 앞에 찾아왔을 때에도 나는 절대 거짓말을 해선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윤리학자인 칸트가 친구를 그냥 죽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일까? 사실 조금 깊게 생각해 보면, 내가 살인자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내 친구가 무조건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내가 살인자를 상대하며 시간을 끄는 동안 내 친구가 뒷문으로 도망쳤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만일 이때 진실을 말해서, 내가 집에 숨겨두었다고 말하면, 친구는 이미 도망쳤기 때문에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거짓말을 해서 살인자가 빠르게 길을 떠나버리면, 이미 도망친 내 친구를 따라잡아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칸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친구의 생존을 100퍼센트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라면, 도덕 원칙을 어겨가면서까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에게는 꺼림칙한 마음이 한 켠에 남아 있다. 정말 우리에게는 보편 윤리를 어기지 않으면서, 친구의 생존에도 도움을 줄 방법이 없는 것일까? 칸트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거짓말만 안 하면 된다! 칸트라면 집 앞에 찾아온 살인자에게 “10분 전에 우리 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살인자는 10 분 전에 집 앞을 지나 도망쳤다고 오해하고, 집을 지나쳐 바쁘게 뛰어갈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난 거짓말은 안 했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생각하나? 실제로 칸트는 이런 식으로 곤란한 상황을 빠져나간 적이 있다. 칸트 당시의 국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사상을 검열하면 서 칸트의 종교철학 출판을 금지하자,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맹세했다: ‘폐하의 신하 된 백성으로서, 더 이상의 책을 출판하지 않겠다.’ 그리고 몇 년 뒤, 황제가 사망하자 칸트는 곧바로 책을 출판하면서, 종교를 검열했던 당시 황제가 죽었으니 이제 그의 신민인 한 해당 내용을 출판하지 않겠다는 맘에 안 드는 맹세는 깨도 되는 거 아니냐는 내용을 담아 두었다. 잘 생각해 보라. 칸트는 거짓말은 안 했다.


Editor. 류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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