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에 오기 전까지 1년 12월이 있는 달력이 세계 유일한 표준이자 공용인 줄 알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용되는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 이외의 달력은 역사책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는 완전히 다른 시간 개념을 사용하고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하루 24시간제가 아니다. 그리고 고유의 에티오피아력(Ethiopian Calendar)을 사용하고 있어서 평균적으로 그레고리력보다 약 7년 정도 느리다. 2019년 2월 기준으로 에티오피아는 2011년 6월이다. 게다가 연도만 느린 것뿐만 아니라 월도 완전히 다르다. 일주일이 7일인 요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 개념이 국제 표준과 다른 나라이다. 이 시간과 날짜들은 외국인에게는 답답하게 보이지만, 1억이 넘는 현지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잘 사용하고 있다.
먼저 에티오피아력은 1년이 365일인 점은 매달이 균등하게 30일이다. 나머지 5일(윤년에는 6일)은 13월로 보낸다. 에티오피아의 관광 슬로건 중 하나인 '13월의 태양이 뜨는 나라(13 months of sunshine)'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하지만 13월이라고 해서 직장인의 경우 따로 월급이 나오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새해의 시작이 그레고리력으로 9월이다. 그리고 매월은 그레고리력으로 보통은 11일에 시작한다. 즉 에티오피아의 새해는 매년 9월 11일이다. 바꿔 말하자면 대부분 국가의 연말인 12월을 에티오피아에서 보내면 여기서는 현지 달력 기준으로 3월이나 4월을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살아보면 굉장히 기분이 묘하다. 여기 기준으로 연말인 9월에는 현지 연말 분위기에 뜬금없이 한 해가 빨리 마무리되는 느낌이고, 12월에는 혼자 쓸쓸히 한 해를 마무리하는 느낌이다.
에티오피아는 세계에서 드문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국가 중 하나이다. 2007년 통계 기준으로 기독교 계열인 에티오피아 정교회(Ethiopian Orthodoxy)가 43.5%, 이슬람(Islam)이 33%이다. 급속도로 신도 수가 늘고 있는 개신교의 경우 18.6%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이 부처님 오신 날과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해서 기념한 것과 마찬가지로 에티오피아는 이슬람 기념일과 기독교 기념일을 동시에 챙긴다. 기독교 기념일의 경우 정교회 교회력인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을 따르기에 그레고리력 기념일과 차이가 발생한다. 즉 대표적으로 이 나라에서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는 러시아를 비롯한 정교회 기반 국가와 마찬가지로 그레고리력으로 1월 7일이다. 이외에 부활절도 공휴일이고 예수님의 세례 받는 일을 기념하는 주현절도 공휴일이다. 이슬람 공휴일은 경우 선지자 모하메드 탄생일과 라마단이 끝나는 것을 기념하는 Eid al-Fiter, 아브라함이 아들의 희생을 각오한 것을 기념하는 Eid al-Adha 등이 있다. 여기 와서 안 사실은 이슬람 공휴일의 경우 달을 기준이라고 한다. 즉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달을 기준으로 기념일이 되기 때문에 지정된 일자에 하루 정도의 오차가 매년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나라는 하루의 개념도 다르다. 에티오피아는 UTC+3, 동부 아프리카 시간대(East Africa Time, EST)에 속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 개념은 여기서는 International Time으로 부르며 그들 고유의 시간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선 이 나라는 24시간제가 아닌 12시간제를 사용한다. 12시간제를 사용한다고 해서 12시간마다 하루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측정 기준이 12시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13시를 오후 1시라고 가리키는 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여기는 24시간제에서 0시가 12시가 아니다. 24시간제의 6시가 12시이고 7시가 1시이다. 즉 12시는 6시이고 13시는 7시 등의 이런 기준이다. 그러기에 현지인과 약속을 잡을 때는 늘 Local Time인지 International Time인지 확인하고, 아예 번거롭지만 두 시간 다 말하기도 한다. 가끔 이 시간의 차이로 인한 오해 및 혼선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시간과 관계된 개념이 이렇게 다른 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크게 불편한 건 아니지만 늘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기에 번거로운 측면이 있다. 가끔은 국제 표준하고 상당한 거리가 있기에 이러한 문화를 고수하는 현지인들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곧 한국도 꿋꿋이 고유의 한국 나이를 고수하는 문화가 있음을 상기했다. 또한 북미와 유럽 국가 중 상당수가 Summer Time과 Winter Time이 있어서 1년에 2번씩 시간의 혼선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떠올랐다. 결국 시간은 문화권에 따라서 다르게 볼 수 있음을 에티오피아에서 체감하고 있다. 문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특정 문화적 행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개념에도 적용될 수 있고 적용돼야 함을 알게 되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