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직장인 영화 리뷰 Vol.1
‘영화의 재미 대신 해석의 희열을 담아낸 박찬욱의 집념체’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나오면서 든 생각이다. 영화감독을 포함해 관계자들은 관객이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게 우선적인 목표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박찬욱 감독은 대중과는 결이 다른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다 보니 그의 작품이 흥행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 않나 추측해본다. 2025년 가을에 개봉한 ‘어쩔수가없다’도 박찬욱 감독은 대중적 흥행을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하지만, 분분한 관객 별점을 봤을 때 재미의 추구 방향이 다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비록 ‘어쩔수가없다’는 대중이 기대하는 영화의 재미와는 거리감이 있는 영화지만 뚜렷한 주제 의식 속에 인간의 본성을 밀도 있게 담아낸 덕에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였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로 촉발된 파업에서 유명해진 ‘해고는 살인이다’를 영화로 풀어내면 ‘어쩔수가없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유만수(이병헌 扮)는 영화 오프닝에서 완벽한 가을을 예찬하며 회사서 선물한 ‘장어구이’를 구우며 행복감을 만끽한다. 다음 장면에서 유만수는 선의를 가지고 회사를 인수한 외국계 임원들과 대화를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선물 받은 장어가 해고 대상자에게 전달됐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연이어서 형식적이지만 희망적인 채취업 프로그램에 임하는 유만수와 동료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이상향을 제시하고 그런 완벽한 하루가 ‘정리해고’를 통해서 어떤 위기로 연결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장어’, ‘재취업 교육’ 등을 통해 자본의 위선을 비꼬았다.
정리해고자 신분으로 재취업을 알아보다가 유만수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경쟁사의 최선출(박희순 扮)을 팔로우한다. 소셜미디어 정보를 바탕으로 실제로 그를 추적하면서 유만수는 이 사람을 제거한다면 경쟁자는 누가 될 수 있는지 상상하게 된다. 유만수의 이런 발칙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어쩔수가없다’의 핵심 플롯이다. 경쟁자 제거 계획을 실현에 옮긴 유만수는 페이퍼컴퍼니를 차리고 그럴듯한 홍보문구로 위장 구인에 나서 경쟁자 정보를 취합한다. 이 함정에 구범모(이상민 扮)와 고시조(차승원 扮)가 걸려들고 유만수는 이들을 제거한다. 25년을 제지 공장에서 일한 유만수의 킬러 변신은 어설픔과 세밀함을 동시에 보여줘 설득력을 높인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어설픔이 우연을 가장해 연결되면서 궁극적으로는 경쟁자 제거가 성공했다는 점이다. 부차적으로는 AI 시대에 연명하고 있는 아날로그가 효과적인 범죄 기술이 될 수 있음을 영화는 암시해 준다.
유만수의 계획과 실천 속에서 영화는 구범모와 고시조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새로운 등장 인물 과 새로운 갈등이 그려진다. 그렇지만 영화는 갈등의 전개에 변주를 주면서도 결국 이들의 근원에는 해고자 문제가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들 모두가 아름다운 과거와 추억을 이야기하며 현재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동시에 박찬욱 감독은 집요한 미장센 배치를 통해 변주의 이야기지만 보는 재미로서의 영화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집 전체에 CCTV로 감시 체계가 철저한 구범모는 마당에서 배나무가 썩어도 방치하며 사각지대로 외부인이 들어오는 통로를 만드는 요소가 된다.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의 메타포로서 나름의 의미가 있는 장치여서 재미있는 요소다.
고시조 이야기도 자본주의 풍자에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유만수와 마찬가지의 해고자 신분인 고시조는 구두 매장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려간다. 까탈스러운 고객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영화의 등장이자 유만수와의 첫 만남이다. 그리고 유만수는 딸의 첼로 이야기를 통해 고시조의 환심을 삼과 동시에 자본과 예술의 유착 관계서 고통받는 서민의 넋두리를 그려낸다. 나아가서 유만수는 결국 이런 고시조의 환심과 친절을 활용한다. 이때 유만수는 고시조의 눈을 가리거나 토악질로 자신의 역겨움을 스스로 내뿜는다. 이처럼 ‘어쩔수가없다’는 장면마다 박찬욱의 은유와 직유가 넘쳐나 해석의 재미를 관객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한다.
하지만 영화는 장면마다 관객이 연출의 의도를 발견하고 해석하는 요소가 많다보니 흥미는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영화 전개의 긴장감은 높으나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이 극적이거나 흥미로운 요소가 눈에 띄지 않는 점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많은 관객은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감정적인 공감대 형성에 익숙하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은 소품 하나도 특정한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요소가 되는 형국이니 영화를 본다는 느낌보다 영화를 공부하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자연스레 쉬운 영화가 아니니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배우가 주연 조연 그리고 특별 출연에 나서며 최고의 연기를 보여줌에도 상대적으로 별점이 낫지 않나 예상해 본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박찬욱은 인간의 추함이 ‘어쩔수가 없다’는 핑계로 쉽게 합리화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특히 영화 결론에 유만수의 딸 리원(최소율 扮)이 연주하는 ‘Marin Marias’의 ‘Le Badinage’는 이러한 추함의 포장지로서 예술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보여줌과 동시에 중의적 결말에 대한 암시로 보여 인상 깊었다. 이 영화로 우리는 인간이 ‘어쩔 수가 없다’는 핑계로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영화에서 드러나는 추함 속에서 성장하는 ‘사과나무’의 존재도 의미심장해 보였다. 더불어 영화 엔딩에 등장하는 벌목되는 나무에 대한 해석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지 호기심도 들었다. 영화 한 편으로 참 많은 사유를 하게 된 작품이었다. 하지만 영화적 재미가 없어서 또 보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