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직장인 영화 리뷰 Vol.8
낯선 미학 앞에서
일본 재외국민 출신의 이상일 감독의 영화 <국보>가 일본에서 1,000만이 넘는 관객을 유치한 흥행을 거두어 한국에서 화제가 됐다. 소셜미디어에서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및 시사회를 통해 먼저 본 관객의 반응이 호평 일색이라 극장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에도 평이 좋기에 기대치가 높은 영화였으나, 개인적으로는 영화 핵심 주제인 '가부키'를 포함한 일본 '전통문화'에 대한 생경함이 영화의 난해함을 높이는 요소로 다가왔다. 감독의 의도대로 일본 관객은 영화 속 일본 문화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었기에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일본 전통문화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관객에게는 영화 속 예술이 '아름다운가?'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문이 들 정도로 낯선 문화였기에 영화 해석의 난이도를 높이는 장치가 됐다.
이 영화는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가부키'에 대한 고찰과 고증을 담아냈다. 주인공 '키쿠오'는 내부 세력의 반란으로 몰락한 이후 유명 가부키 배우 '하나이 한지로'의 눈에 들어 본격적으로 '가부키'를 배우게 된다. '한지로'는 또래 아들 '슌스케'를 '키쿠오'와 동일하게 '가부키'를 전수하면서 부인 '사치코'와 함께 가업을 잇게 하는 게 영화 초반의 이야기다. 갑작스레 '야쿠자' 가문의 장자에서 '가부키' 견습생이 된 주인공 '키쿠오'는 다행히 타고난 실력이 있어 스승 '한지로'와 '사치코'에게 인정을 받으며 성인으로 자라나고 이들이 주연을 맡은 공연도 흥행에 성공하게 된다. 모두가 행복한 과정 속에서 가부키 공연 주최 관계자는 '키쿠오'에게 '가부키'의 혈연과 가문 중심주의를 환기시키며 결국에는 주인공이 불행해질 거라는 경고를 남기며 갈등의 초석을 다진다.
그렇지만 영화는 중반 이후 '키쿠오'의 성공 가도를 집중 조명하고 동시에 경쟁자 '슌스케'가 경쟁을 포기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결국 스승 '한지로'는 자신의 부인의 반대에도 자신의 가업을 자신의 아들이 아닌 '키쿠오'에게 물려주기로 결정하고 계승식까지 치른다. 하지만 영화는 이 계승식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한지로'의 모습으로 영화 갈등이 심화됨을 암시하며 이야기가 전환된다. 경쟁에서 도망간 '슌스케'는 '키쿠오'의 소꿉친구 '하루에'와 전국을 돌며 어렵게 배우 생활을 이어나가다가 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다시 자신의 가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자연스레 다시 한번 가문의 암투가 벌어지고 혈통을 중요시 여기는 '가부키' 문화 탓에 '키쿠오'는 곧바로 '한지로' 가업 계승 관련 악성 루머에 휩싸이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영화의 두 주인공이 시간의 차이를 두고 밑바닥을 경험한 것이다.
영화는 다시 한번 두 주인공 '키쿠오'와 '슌스케'의 합동 공연으로 이들의 화해를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행복은 잠깐이었다. '슌스케'는 당뇨 합병증을 방치해 괴사가 발생, 우측 다리를 절단한다. 절치부심으로 재활한 '슌스케'는 마지막 합동 공연을 '키쿠오'에게 부탁하고 이를 수락한다. 이 공연에서 남은 발도 온전치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슌스케'의 운명을 관객은 예측하게 된다. 자연스레 '키쿠오'가 자신의 옛 명성을 되찾게 되고 결국에는 가장 이른 나이에 일본의 '국보'로 등극하게 된다. '국보' 등극 이후 '키쿠오'가 자신이 버린 게이샤 '후지코마'의 딸인 사진 기자 '아야노'와 나누는 인터뷰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다. '키쿠오'가 '국보'가 되기 위해 '버려야 했던 것', 특히 영화 중반에 등장한 '악마와의 거래'가 단순한 비유가 아님을 상기하면서 영화의 주제 의식을 던진다.
이 영화는 '예술'에 대한 탐닉과 추구에서 마주하는 인간의 모순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키쿠오'는 가부키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기에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됐음에도 삶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그 재능과 가능성을 믿은 '한지로'가 있었기에 '키쿠오'의 예술성의 토대가 가능했다. 영화 주인공은 최고의 예술을 위해 노력하지만, '혈통'에 대한 인간의 또 다른 근원적 감정이 빚어내는 모순이 영화 <국보>의 핵심 갈등 요소로 부상한다. '키쿠오'는 이 혈통에 대한 '피해자'로 영화 전반에 그려지지만, 영화 종반부에서는 또 다른 '가해자'의 모습을 띠고 있음을 자신의 사생아 딸 '아야노'와의 인터뷰로 담아냈다. 이 같은 영화 스토리가 영화의 가치를 올려주는 부분이 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매우 어려웠다. 가장 큰 이유는 일본 전통문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영화 내내 등장하는 '가부키'에 대한 낯섦이 적응되지 않아서다. 감독과 배우는 가부키의 최고의 아름다움을 영화로 담아내고 표현했다. 그렇지만 아무런 지식이 없는 한국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 전통 음악에 맞춰 섬세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가부키 예술 자체가 낯설게만 다가왔다. 일단 진한 '쿠마도리' 화장을 한 탓에 주인공 '키쿠오'와 '슌스케'가 합동 공연을 펼칠 때는 구분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가부키 춤을 추기 위해 연주되는 일본 전통음악은 낯섦과 비호감의 경계에 걸쳐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느꼈다. 결국 이 영화가 전달해주고자 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쉽게 되지 않아 영화 <국보>가 어려웠다.
그 덕분에 영화 <국보>를 보는 내내 오랜만에 '아름다움'과 '미학'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새삼스레 '미(美)'가 상대적 기준임을 이 영화로 환기했다. 분명 쉽지 않은 영화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가 가진 스토리의 짜임새와 낯선 예술임에도 열연을 펼치는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이 영화는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극장을 나오면서 우리나라 전통 예술에 관심을 좀 더 가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무용 공연을 예매하기도 했다. 더불어 이상일 감독님의 차기작도 기대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