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한국이 가진 국제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잘 믿지 못하는 편이었다. 2000년대가 시작하면서 가까운 일본 및 중국에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2010년대 이후엔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아시아 전역으로 퍼지다가 현재는 전 세계까지 한류 콘텐츠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뉴스는 자주 접했다. 10년 전에는 일본의 오리콘 차트에 한국 가수가 상위권에 랭크되는 것이 뉴스거리였다면 지금은 빌보드 차트에 한국 가수가 상위권에 랭크되는 뉴스를 본다. 그렇지만 그런 뉴스를 볼 때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막상 아프리카에서 2년간 한국어를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 되자 막막해졌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러한 우려는 기우였음을 곧바로 깨달았다. 코이카 단원은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임지에 부임하는 것이 아니라 2개월간 수도에서 ‘현지적응교육’이라는 적응 과정을 거친다. 이 기간을 통해 현지어를 집중적으로 습득하고 현지 생활과 관련된 전반적 교육을 받는다. 이 교육을 도와주는 현지 직원을 계약직으로 에티오피아 코이카 사무소에서 고용하는데,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직원들은 한국어 회화가 가능하다. 즉 에티오피아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어가 가능한 현지인 통역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들 중 대다수는 한국어를 KBS월드 및 한국어 콘텐츠를 통해 혼자 익힌 이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우는 공식 기관이나 사설 한국어 교육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어 교육 수요는 최근 3년 사이에 팽창했다. 코이카가 에티오피아에 단원을 파견해 봉사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5년으로 20년이 넘었다. 그러나 한국어 교육 단원이 여기에서 활동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15년부터 시작됐다. 2018년 현재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어 교육 단원으로 파견된 숫자는 10여 명 정도이다. 에티오피아에 코이카 봉사 단원으로 파견된 이들이 40여 명이니 약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역시 이 나라에서 한국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 원인에는 TV 영향이 크다고 본다.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위성 TV 방송 채널에서 황금 시간대에 방송되는 드라마는 터키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 전후로 한국 드라마가 편성되어 있다. 이 채널에서는 에티오피아 현지어 중 하나인 암하라어 더빙을 해서 방영을 한다. 그러나 더빙 드라마일지라도 한국 드라마이기에 이를 통해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갖는 시청자들이 은근히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 콘텐츠에 관심이 커진 시청자는 KBS WORLD 시청을 통해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한다. KBS WORLD는 영어 자막을 제공하기에 영리한 젊은이들은 KBS WORLD를 통해서 한국어를 접하고 익힌다. 더 나아가 페이스북과 같은 SNS나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한국어를 스스로 배우는 학습자로 성장한다. 결국 한류가 자발적인 한국어 학습자들을 양성해줬고 그 덕에 코이카 단원들이 활동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은 한국어 교육 시장의 관점에서 봤을 때 걸음마 단계이다. 한국어 단원이 10여 명이나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 기관에서 한국어 교육 과정이 정규 과정으로 인정받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 또한 단원이 활동이 2년에 그치고 단원 수급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2년 이상 한국어 교육이 유지되고 있는 기관도 적은 편이다. 그리고 이런 불안정성이 한국어 교육을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데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더불어서 이제 막 한류가 자리를 잡은 상황이기에 한류 콘텐츠가 인기가 사라진다면 자연스럽게 한국어 교육 수요도 급감할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 즉 시스템은 아직 자리 잡지 못하고 있고, 한국어 수요는 고정적이지 않은 상황이 현재의 에티오피아 한국어 교육의 현실이다.
그렇지만 한국어 수요는 당분간은 꾸준한 증가세를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우선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대학을 재학하거나 마친 이들을 중심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즉 이들은 단순히 한국어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한국어를 활용해 자신들의 커리어를 개발하거나 또 다른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방향에 집중할 역량이 있는 수요자들이다. 이러한 수요가 아직은 선순환 구조까지 만들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이 나라에 직접 투자를 늘려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러한 수요가 지속하는 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 기업의 에티오피아 투자가 가시적으로 늘 것으로 보이긴 어렵지만, 긍정적으로 볼 여지는 있다. 더불어 한국으로 유학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 역시 학습자들에게 충분한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적지 않은 숫자의 대학 교원들이 한국 유학 경험이 있는 상황이다. 즉 학부생들이 석사 이후의 과정을 한국에서 밟을 기회를 늘릴 수 있다면 이 역시 한국어 수요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의 성장을 돕는 부모의 역할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러한 걸음마가 안전하게 성숙할 수 있도록 한국어 교육 단원들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더욱 이 활동에 매진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 활동의 결과물이 학습자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쉽지 않겠지만,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어 교육의 내일은 긍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