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2018년 상반기 에티오피아에서 지내면서 겪은 극심한 정치 혼란 탓에 늘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굳이 ‘국가란 무엇인가?’와 같이 어려운 질문은 일상적으로 할 이유가 없다. (물론 2016년 이와 비슷하게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오긴 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마주하는 상당수의 문제가 정부의 실패와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이게 대다수 시민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여기서 직면하는 국가 시스템의 부재 혹은 붕괴가 자연스럽게 '국가란 무엇인가?'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여태껏 개발도상국을 여행으로만 다녀보고 실제로 거주하면서 생활한 것은 처음이라, 이러한 혼란은 너무나 낯설었고 불편했다. 그 실상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2018년 2월 12일부터 14일 3일 동안 에티오피아 종족 구성의 약 70%를 차지하는 오로모 지역과 암하라 지역에서 3일간의 총파업이 벌어졌다. 그리고 시위가 끝난 직후 15일 당시 총리 Hailemariam Desalegn은 국가 전역의 정치 혼란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당시 3일간의 총파업으로 활동 지역인 Assela도 모든 상점이 철시했다. 그리고 시위대는 수도로 연결되는 유일한 도로를 막았다. 더불어 시위대는 상점의 간판을 뜯어내는 등의 약한 폭력성을 보였다. 외국에서 경험한 첫 시위대에 대한 인상은 ‘공포’였다. 시위대의 폭력성이 더 악화할지 여부도 예측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를 진압하기 위한 경찰과 군인이 유혈 진압을 가능성도 상존했다. 게다가 시위 첫째 날 저녁부터 지역 전기 당국은 단전 조처를 내렸고 나흘 넘게 전기를 공급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처음이었고 겁이 났다. 3일간의 시위 뒤 시위가 잠잠해지고 도로가 복구되자 KOICA 에티오피아 사무소는 안전을 위해 당시 시위가 없는 수도로 시위 지역에 활동하는 단원들을 비상 대피시켰다. 그렇게 2주를 대피했다.
2월의 시위는 결과론적으로 시위대의 승리였다. 예상 밖으로 국가수반인 총리가 사임하고 정치범을 석방하겠다고 밝히는 등 시위대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시위로 인해 선포된 국가 비상사태는 모든 집회 및 시위에 대한 금지가 있었고 이를 어길 시 발포할 수 있다는 근거가 마련되어 있었다. 게다가 시위가 잠잠해진 뒤로 대부분의 시위 지역에 군대가 투입되면서 이에 국가 비상사태 선포가 형식상 조치가 아님을 분명히 대중들에게 보여줬다. 지방의 경우 당시 스마트폰의 3G 통신을 정부 당국에서 제한을 걸어둬 작동이 안 됐었다. 더 최악인 것은 3월부터는 지방의 모든 인터넷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총리가 사임했어도 권위주의 정권은 지속하고 있었다. 그 탓에 통신에 제약을 가해 관련 정보의 확산을 막음과 동시에 대중에 대한 압박을 가한 것이었다.
당시 2주간의 비상 대피 후 임지로 복귀했지만, 일련의 정치 불안정성이 지속하면서 1주일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비상 대피를 했다. 당시 시위는 재발하지 않았지만, 정치적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긴장감이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특히 시위가 발생할 경우 도로가 막히는 시위 문화상 사무소는 선제적 대피 필요성을 인지했고 실행했다. 특히 후임 총리가 누가 선출되는지에 따라 국가적 혼란이 재기될 가능성이 있었기에, 사무소에서는 위험 지역 단원 임지 변경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정말 당시 에티오피아의 상황은 내일을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오늘이 불안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당시 2번의 비상 대피로 1달 넘게 수도에서 지냈어야 했다. 그리고 비상 대피가 끝나고 나서도 후임 총리 선발이 되지 않아서 일을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통신은 전화와 SMS 말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이 4월 2일 현 Abiy Ahmed가 총리로 선출될 때까지 지속됐다.
다행히 새로 선출된 Abiy Ahmed는 시위대의 주축인 오로미아 지역 출신이었기에 시위대 및 대중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다. 그 덕에 정국은 빠르게 안정이 됐다. 4월 중순부터 제한된 인터넷과 3G 통신이 복구되었다. 스마트폰에서 3G 데이터 신호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한 순간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더불어 현 총리는 과거 정권에서 벌어진 여러 피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는 내용이 담긴 취임 연설부터 화제를 모으는 등 에티오피아 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러한 개혁 조치는 현재 에티오피아는 남녀 동수 내각, 실권이 없는 대통령이지만 의회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 Shale-Work Zewde 및 최초의 여성 대법원장 Meaza Ashenfi를 선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임 1년 차도 되지 않은 정권에서 상당히 가시적인 개혁 결과물을 보였으나, 이게 실질적인 국가 개혁 그리고 경제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 여부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2018년 상반기에 겪은 지난한 정치 불안정성과 그로 인한 여러 일상의 불편함은 다시 마주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2016년 촛불 시위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대통령 탄핵까지 끌어낸 국가의 시민으로서 시위에 대해 큰 반감이 있지는 않다. 그런데 이곳에서 직면한 시위는 새삼 평화 시위가 얼마나 이상적인 시위이고 그 과정과 마무리까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해주는 계기였다. 시위대의 행동이 예상되지 않고 또한 시위에 대처하는 경찰 및 군인의 법 집행 기관의 대응이 예상되지 않기에 시위 자체가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는 위협 요인이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외국인은 너무나 쉽게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이 나라는 비교적 최근의 사건 사고로 증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종족 문제에 기반하고 있기에 시위대에 대한 정치 정당성이 다수에게 확보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확인했다. 시위가 격화된 지역은 타 종족에 대한 반감으로 시위대가 타 종족을 살해하거나 소유 재산을 강탈, 방화하는 등의 폭력성이 있었다. 독재 정권에 대한 항거라는 측면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분명한 정당성을 지니지만, 그 동기에는 자기 종족의 정치 세력화 및 집권이라는 배타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목격했다. 정말 에티오피아에서 마주한 시위는 말 그대로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혼란은 정부가 각 종족의 연합보다는 갈등과 대립을 격화시키는데 일조하거나 방조한 결과물이었다.
내일이 예측되지 않는 상황이 오늘을 얼마나 불안정하게 만드는지 에티오피아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특히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일상이 아닌, 정부 시스템과 연관이 있다면 그 폐해가 엄청남을 직접 확인했다. 다행히 지금 정권은 안정되어 있다. 하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다양한 갈등들이 표출되고 있고, 그것이 시위로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이 나라는 아직도 시위가 나면 국민들이 경찰이나 군인들로부터 총상을 입어 죽는다. 정말, 이 비극적 현실이 빨리 개선되길 희망한다. 2020년 에티오피아에 총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일당 독재 위주로 치러진 지난 선거와는 달리 현 총리는 다당제 바탕의 공정한 선거를 약속하고 있다. 부디 에티오피아의 한층 더 성숙한 민주주의 결과물이 나오길 희망해본다. 에티오피아도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 정치 체계를 가질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