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와 오사카
여러 가지 이유로 2023년부터 2025년 3년 동안 일본, 인도네시아, 베트남에 다녀왔다. 일본은 도쿄. 혼자만의 여행을 위해, 오사카는 친구들을 만나러, 베트남은 친구와 함께 여행을 위해, 인도네시아는 오래 사귀었던 친구들을 방문했다. 외국에 살면서 일하다 지쳐서 떠난 여행도 아니었고, 유학시절 그래도 외국에 있는데 이 나라는 가봐야 하지 않겠어라며 떠났던 여행도 아니었고, 출장 갔다가 들른 여행도 아니었고, 여행을 위한 여행은 대학생 때 친구들과 같이 아르바이트해서 다녀왔던 대만과 인도가 마지막이었는데, 10년 만에 여행을 위한 여행이라는 자유를 얻었다. 20대 초반만큼 설레지도 새롭지도 않았던 여행이었고 여행하는 동안 한국에 가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라는 동기부여가 되는 여행도 아니었다.
나의 성격은 여행으로 인해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내 인생에 대한 동기부여나 큰 전환점은 아니었지만, 소소하게 즐거웠던, 지나고 보니 하나씩 하나씩 순간처럼 기억에 남는, 그리고 외국에서 알고 지냈던 친구들이 나의 한국생활에 스쳐 지나가도 혹은 겹쳐져도 전혀 이질적이지 않는 내 삶의 일부로서의 여행을 한 느낌이었다. 20대와 30대의 차이일까? 아니면, 난 이제 변화는 싫은 걸까, 어쩌면 누군가의 말처럼 나의 성장은 이제 멈춘 걸 지도 모른다.
도쿄에 혼자 간 건 처음이었다. 2024년 3월. 일본 하면 개인주의와 독립성의 국가 아닌가. 일본에 혼자 간다는 건 나에게 일종의 성인 경험으로 여겨졌다. 가족들과의 일본 여행은 늘 따뜻했고 먹을 것이 많았고 다채로웠다. 내가 일본 하면 떠올리는 것들은 맛있는 편의점 간식들과 정성 어린 식당과 가지런히 정리된 숙소들. 나는 2023년 연말부터는 이상하게 한국이 지겨웠고 혼자가 되고 싶었다 (사실 혼자 있어도 뭘 하는 것도 아니고 자유를 더 느끼지도 않지만, 몇 년에 한 번씩 내 안에서 밀려오는 “혼자”에 대한 갈망이 있다, 참고로 나는 2021년에 한국에 왔다). 내가 해오던 모든 것에서 지겨움을 느꼈고 관성적인 일이나 운동, 활동, 만남 등에서 싫증을 느낀 지 오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를 만나도 즐겁지 않았고, 일상적인 것들에 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변화를 어떻게 줄지도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도쿄에 가기로 결정하고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호텔에서 잠자기였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베딩이 훌륭한 숙소에서 하루 종일 아니, 한 3-4일만 잘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즈미술관
대학생들이 입을 것 같은 옷을 많이 파는 곳에 들어가서 비행기에서 입을 바지와 도쿄관광에 입을 헐렁한 바지 두 개를 샀다. 평소에는 입지도 않는 핑크색 운동복도 샀고 옷차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삼삼오오 신나게 친구들과의 여행을 기다리고 있는 대학생 무리, 가족들의 수다 소리가 들린다. 난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으면서 (아무런 감정 없이) 도쿄에 도착했다. 도쿄 지하철에 탑승하니 도쿄에서 일하던 (지금은 오사카에서 살지만) 친구가 인사차 카카오톡이 왔다. 도착했어? 숙소는 어때? 그녀와의 만남은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 여행은 도쿄에만 있겠다고 말하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예약한 숙소가 괜찮아 보인다고 한다. 편의점에 족욕제가 있으니 몇 개 사서 관광 이후에 목욕을 하라고 시즈널 맥주도 몇 개 알려준다.
도쿄 한조몬 9번 라인에 있는 네스트 호텔에 도착했다. 나는 호텔 주변을 가만히 살폈다. 호텔 맞은편에 있는 자그마한 중식당, 왼쪽 편에 있는 패밀리 마트, 그 건너편에 있는 오니기리 도시락 전문점. 주요 시설을 확인하고 호텔 로비에 있는 커피머신에서 커피 한잔을 들고 체크인을 했다. (그나저나 커피머신이 너무 훌륭했다.) 일본 호텔답게 사이즈는 크지 않았지만, 방 안에 있는 TV, 침대 두 개, 갈색 소파, 그럼에도 필요한 건 다 있는, 일본다운 호텔이었다. 나는 짐을 풀고 몇 시간 낮잠을 잤다. 그리고 일어나니 이상하게 파스타가 먹고 싶었다. 5분 거리 안에 식당이 있는 걸 확인하고 찾아가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목요일이어서 회식이 많은지 직장인들의 모임이 많이 보였다. 꿋꿋하게 자리를 잡고 화이트 와인, 샐러드, 바질 파스타를 주문하고 식전빵을 먹고 있으니 지나다니는 직원들이 왜 저렇게 잘 먹지? 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족욕을 하고 친구와 친구 남편이 새로 이사한 집을 영상통화로 보고 그들의 새 출발을 응원하고, 나도 맥주를 마시며 영화 한 편을 봤다. 내가 그리워하던 “혼자임”이 이런 것이었나? 약간은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