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사람들, 코미디언 김동하 인터뷰
*1편에서 계속됩니다
동하 님이 했던 첫 전국 투어 서울 공연이 1,000석짜리 공연이었잖아요. YES24홀에 1,000명 들어왔던 공연보다 더 떨렸어요?
그 때보다 더. 그래도 1,000석 때는 내가 검증했던 농담들이라 많이 안 떨렸죠. 그런데 <커넥트> 때는 짜여있는 게 없으니까 심장 박동이 정말… 올라가기 직전에도 ‘어떻게 하지? 무슨 말 먼저 할까? 누구 공격할까? 대답 안 하면 어떡하지? 안 웃으면 어떡하지?’ 오만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올라가기 직전에는 ‘야 이거 어쩔 수 없다. 나 믿자. 나 10년 넘게 했잖아’ 마음 잡고 딱 올라갔죠.
무대 올라가서 처음에 멋있는 척 하는데 속으로는 ‘누구 공격하지’ 계속 둘러봤지(웃음). 그런데 앞에 20대 남자 두 명이 검은색 옷 입고 있길래 ‘너네다’. 그들에게 멘트 던졌는데 빵 터졌어. 문제가 뭐냐. 평소 공연이면 그동안 검증됐던 조크를 이어가면 되는데 이번엔 그게 아닌 거예요. 멘트를 치면서도 다음 던질 멘트 때문에 머리를 계속 굴려야 되는 거야. 정말, 정말 다행히도 처음 이후로 너무 잘 된 거예요. 처음 40분동안 종주마 달리듯이 멘트를 땅, 땅, 땅, 관객들도 빵, 빵, 빵 이렇게.
공연장에 시간 확인용 전등이 있어요. 시작한지 30분 지나면 불 한 번 켰다 꺼주고, 그리고 10분 또 지나면 다시 켜달라고 했거든요? 어느새 불이 켜져있는 거예요. ‘벌써 지났다고?’ 싶어서 그 뒤로는 완급조절하면서 쭉 진행하다보니 공연이 끝났어. 심지어 그 날 공연 두 번 했거든요. ‘되는구나’ 싶어서 기분이 정말 좋았죠.
공연 끝나고 나서 회사 직원들한테 개인적으로 카톡이 오더라고요. ‘정말 멋진 작품을 옆에서 봐서 너무 영광이었고, 오랜만에 회사 다니면서 동기부여가 생긴다’ 이렇게. 이 친구들은 내 공연 정말 많이 본 사람들인데도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아예 처음 시도하는 거라 저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불확실함에 불안해했는데, 이걸 무대에서 깨뜨려버리니까 정말 보람찼죠.
동하 님한테는 <커넥트> 공연이 새로운 발돋움이었네요.
완전 새로운 스텝. 대한민국에 없던 거니까. 어딜 가도 자신감 있게 나만큼 할 수 있는 사람 없다고 말 할 수 있죠. 한국 모든 코미디언 중에 나밖에 없다.
앞으로 100% 크라우드 워크 공연을 또 할 의향이 있어요?
이거는 고민을 좀 해봐야 돼요. 너무 빡세서? 빡세고, 성공적으로 해냈지만 결국 또 데이터가 없는 거라. 진짜 운 좋게 된 거고, 내가 그동안 스탠드업 경험치가 쌓여서 잘 풀렸다고 생각해요. 영준이 형이 또 해보자길래, 너무 스트레스가 커서 고민 좀 해본다고 했죠. 쉽지 않아.
그냥 어떻게 해냈다는 느낌이에요?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이런 기억도 없고?
없어. 없어. 그냥 한 거야. 물론 나만의 패턴이 있긴 있는데, 그 패턴을 다음 공연에 또 하면 진부함을 줄 수 있으니 고민이 되죠. 주제 하나 정해서 사람들이랑 얘기하는 식의 공연도 있긴 한데, 결정이 쉽게 내려지진 않아요.
외국에서는 아예 관중한테 질문도 던지잖아요. 지미 카(Jimmy Carr, 독한 농담으로 유명한 영국 코미디언)는 관중이랑 거의 싸우듯이 공연하던데요. 아예 헤클링을 받잖아요.
헤클링(Heckling)은 스탠드업 공연 중간에 관객이 끼어들거나 야유하는 행위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관객이 헤클링을 한다면 퇴장조치를 내릴 정도로 금기된 행동이지만, 스탠드업이 대중적인 외국에서는 이를 활용하는 공연도 있다. 그야말로 맞받아치는 애드리브로만 이루어지는 스탠드업이다.
헤클링이 있으면 웬만해선 공연 질이 엄청 떨어지기 때문에 쉬운 일은 또 아니에요. 지미 카는 10대 청소년한테 ‘너희 엄마 따먹었다’ 이런 말도 해버리니까. 대단한 놈이지. 악마지 악마.
그러면 공연할 때 수위를 체크하는 레이더는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편인가요. 미국마저도 요즘 스탠드업 수위로 논란이 많더라고요. 농담 수위가 너무 세다고 나락 가는, 이른바 ‘캔슬 컬처’가 미국에서도 얘기가 많던데요. 그보다 더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 스탠드업하려면 선타기가 정말 어려워보이거든요. 수위나 ‘선’에 대한 고민은 없어요?
일단 내 철학은 웃기기만 하면 어떤 소재던 수위던 상관이 없다. 민감한 소재를 건드리는데 못 웃긴다? 그럼 너 잘못이고, 욕을 먹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어떤 농담이던 처음부터 완벽하게 익힐 수는 없으니, 시도하는 걸 누구도 말려서는 안 된다. 그런 시도가 없으면 그런 농담이 나오지 않고, 누군가의 손가락질에 굴복하면 늘 봐왔던 비슷한 코미디 형태밖에 못 보는 거예요.
동하 님은 민감한 주제를 많이 안 다루는 편 아니에요?
민감한 쪽 별로 없죠. 해봤자 뭐 정치인, 대통령 얘기 정도? 요즘 새롭게 짜고 있는 농담 중에 장애인 관련 농담도 시도해 보고 있긴 해요. 뭐 누군가가 불편해할 수는 있으나, 어쨌든 웃기기만 하면 상관이 없는 거지.
이 주제도 물어보면 다 똑같아요. 상관없고, ‘웃기면 된다’.
스탠드업 말고 다른 장르는 센 거 안 하잖아. 그 차이는 있죠. 코미디언들 사석에서 얼마나 세요. 알잖아. 그런데 우리 스탠드업하는 사람들은 무대 문법에서 그걸 그대로 해버리죠.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지점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물론 누군가는 ‘저 새끼 개념 없네’, ‘못 배웠네’ 하지만 뭐 상관 없어요.
뭐 그런 댓글들은 아예 신경 쓸 필요가 없죠. 몇 년 동안 봐온 댓글이잖아요.
너~무 많죠. 지금도 달리고 있을 걸? DM도 많이 와요. 간결하게 ‘야 이 병신아’. ‘씨발놈아 죽어라’ 이렇게 온다? 그럼 나는 ‘왜 죽어야 되지? 이게 죽을 만한 사유가 되나?’ 이러고 넘기지. 다행히도 악플에는 전혀 타격이 없어요.
그러면 이제 다시 스페셜 쇼를 위해 농담을 짜고 있는 시기인가요?
세트 짜는 거는 스탠드업하는 사람들이 평생 해야 되는 거니까, 시기라는 건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죠. 공연으로 보면 소위 우리가 말하는 ‘스페셜’, 단독 공연하는 건 계속 준비하는 거죠. 지금 스페셜 공연을 영상으로 1시간 버전 노출을 하고 있으니, 또 다른 1시간 짜리 조크가 필요하잖아요. 이미 전국 투어 돌고 있을 때 새로운 1시간을 준비하고 있었죠.
쇼를 하면서 다음 쇼를 같이 준비하는 거군요?
공연하면서 계속 병행하는 거죠. 저 때 40분 분량 정도 짰다고 치면, 지금은 남은 40분을 더 짜고 있는 상황이죠. 지난 전국 투어 피날레 공연 영상에 노출되지 않은 조크들이 코미디 클럽들에서 하고 있는 단독쇼에 섞여 있기도 해요. 완전히 갈아엎는다기 보다는 공연을 하면서 조금씩 다듬어가는 느낌?
이제 어느 정도 패턴이 생기겠네요. 1년 정도 준비한 피날레 공연을 풀면서, 그 사이에 준비하고, 또 새 농담을 짜고.
그게 이상적이라고 보는데, 조크라는 게 제조업처럼 딱 나오는 게 아니니까. 부품 넣고 나오는 완성품이 아니다 보니 패턴이 정착되지는 않아요. 가수들도 노래 만들 때 한 달 걸릴 때도 있고 10분 걸릴 때도 있듯이, 조크도 마찬가지. 어제 새로운 농담 지나가듯 해봤는데 반응이 좋으면 오늘도 해보고, 이게 또 괜찮으면 살을 붙이고, 3분짜리를 4분, 5분으로 늘리고 하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죠.
그 과정이 작년까지는 어떻게 잘 됐네요.
잘 나온 건 맞지만, 작년까지의 피날레 공연은 내가 스탠드업을 시작한 첫 시점부터 나왔던 농담의 집합체였죠. 6,7년 동안 내가 만들어 온 세트 중에 견고한 것들만 쓴 거니까. 그래서 보통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은 첫 스페셜이 제일 재밌어요. 몇 년 동안 다듬었으니 조크들이 얼마나 섬세하겠어요. 보통 두, 세 번째 이후로는 좀 재미가 떨어지긴 하는데.
이제 떨어질 일만 남았다?(웃음)
그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죠. 떨어지면 슬프긴 하겠지만. 영상이 엄청 퍼지면 정말 다 바꿔야 되는데, 이것도 완급 조절이 필요한 부분이죠.
하긴 미국에서는 넷플릭스로 스페셜 영상을 풀어버리고, 공연도 만 명씩 와서 보고 그러니까 싹 바꿔야 되겠네요.
뭐 우리가 올리는 스페셜 풀 버전 영상을 몇 만 명이 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바꿔야죠. 왜냐면 코미디언으로서 자존심 상하니까. 사람들은 모를 수 있어도 똑같은 거 또 하면 내 스스로가 납득이 안 되니까. 자존심의 문제였군요. 그러면 멋있지가 않잖아. 또 팬들이 오실 텐데 했던 거 또 하면 다시 안 오시겠죠. 매력을 떨어뜨리면 안 되죠.
부담은 없어요? 얘기한 대로 몇 년간 쌓아온 것들을 다 풀었고, 이제 새로운 농담들로 쇼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텐데.
부담감이라기 보다는, 내 스스로가 나에게 내주는 숙제? 숙제는 계속 해야 하는 거니까 부담은 없어요. 평생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재밌죠. 새로운 조크 짜고 무대에서 터졌을 때의 느낌은 어디서도 못 구하는 희열감이니까.
지난 2, 3년 동안 김동하라는 사람이 그야말로 승승장구했잖아요. 1,000석을 가득 메우기도 했고. 그런데 스탠드업이라는 씬이 딱 부흥기를 찍고 지금은 하입이 예전같지 않다는 느낌이 있기는 해요.
맞아요. 우리도 느끼고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느끼기엔 23년부터 해서 최근까지 성장세가 엄청 가파랐다면, 지금은 우상향 각도가 좀 내려갔달까.
우리 직업이 항상 상승과 유지의 반복이긴 한데, 잘 보긴 했어요. 2023년을 기점으로 해서 스탠드업 인기가 미친 듯이 빡 올라갔죠. 그때 ‘서울코미디클럽’ 공연도 한달 일정이 3분 만에 매진되고 이랬으니까.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었지. 그때에 비하면 확실히 하입이 좀 떨어졌죠.
그럼 현업에 있는 사람이 느끼기에 지금은 어때요?
물론 지금도 금요일이랑 주말은 무조건 매진이고, 평일에도 많이 와요. 뭐 김동하 개인 쇼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고, 아직도 날 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긴 해요. 그런데 전에는 150명 전부 다 김동하 보러 왔다 느낌이었다면 요새는 한 5~60명 정도? 김동하같은 사람이 또 나와줘야 하는데, 그게 없는 거죠.
결국 사람이 나와야 되는군요.
스타가 나와야죠. (정)재형이 형이랑 똑같이 얘기하네요. 스타론. 우리가 말하는 스타는 티켓 셀러예요. 어떻게 떴던 간에 그 사람을 보고 현장 표를 사게 되는 구매력이 있는 스타. 그런데 요새는 그런 스타가 좀 안 나와요. 향후 3~4년은 스탠드업만으로 스타가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라는 게 우리의 주된 의견.
인재 풀이 없어요? 예전에 비하면 요새 스탠드업한다는 사람들 많이 늘어나지 않았어요?
훨씬 많이 늘었죠. 5~6년 동안 한다는 인원보다 최근 1년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정도니까. 물론 이제 그들이 바로 메인 클럽에 서기는 어렵고, ‘오픈 마이크(각 5분 정도 짧게 무대에 올라 본인을 검증하는 공연)’에서 다들 시작하고 있죠. 요즘은 성수나 강남에 독자적으로 크루를 만들어서 공연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렇더라고요. 인스타그램에 광고도 많이 하던데.
그런 사람들이 생겼다는 거 자체가 긍정적이죠. 예전에는 정말 우리끼리 몇 명밖에 없었으니까. 다양한 곳에서 실력자가 많이 나오면 좋겠는데, 아직까지는 스타가 나올 거 같진 않다.
그리고 콘텐츠로는 스타가 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스탠드업으로 스타가 나오는 건 다른 문제거든요. 콘텐츠 스타는 콘텐츠를 보면 되는 거고, 현장에 오는 건 별개의 얘기잖아요. 스탠드업 스타는 이 사람을 보기 위해 코미디 클럽에 사람이 올 거란 말이지.
PD 입장에서 봤을 때, 스탠드업이 새로운 장르여서 부흥을 했던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예 없었던 장르는 아니지만, 팍팍 노출돼서 부흥기가 됐을 때 사람들이 신선하다고 느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말인데 이제 ‘매스 미디어의 도움이 있어야 되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 미국의 스탠드업 부흥은 넷플릭스가 한몫한 것도 있지 않나 싶거든요.
어쨌든 미국은 스탠드업 코미디가 넷플릭스 전부터 오래 됐으니까. 근데 그들도 예전에 SNL이라는 큰 무대에 나가서 5분 정도 기회를 받고 스타가 되는 시대가 있었단 말이에요. 어쩔 수 없이 소위 말하는 레거시 미디어, TV의 힘을 빌린 거죠.
지금이야 우리나라에서 유튜브나 틱톡같은 플랫폼에서 콘텐츠로만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여기서 한 단계 올라가기 위해서는 더 큰 힘이 필요해 보여요.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방송국이 스탠드업의 감성을 담기는 또 힘들다고 보고. 스탠드업을 아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다는 것도 문제고. 이제부터 사실 시작이라고 봐요 저는.
*3편에서 계속됩니다.